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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훈희 Oct 24. 2023

고집스런 책씨 영감님의 화려한 컴백 무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되는 책의 의미와 역할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서 집에는 파란색 칼라 테레비가 들어왔다.


오색찬란하게 볼록한 브라운관을 통해 오륜기가 펄럭였고 

한 소년이 종합운동장에서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가는 장면은 선명하게 잊을 수 없는 신기한 기억이었다.


몇 년이 지난 1992년 어느 날,

테레비에 어떤 남자 3명이 나와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옷을 입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장면은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였다.


.


'난 알아요' 다음부터 라디오를 통해 듣던 노래는 재미가 없었다. 

노래 가사처럼 난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 한명의 변화는 아니었나보다. 

이제는 그냥 노래만 잘하는 가수들이 줄어들고 있었다.


티브이에 나오는 가수들은 더 이쁘고, 더 멋지고, 더 어려졌다.

신나는 노래, 박력있고 매혹적인 춤선에 총천연색 의상을 입고 

묘기에 가까운 개인기까지 보여줬다.


그렇게 귀로 듣는 음악의 시대에서 

눈으로 보는 시대로 바뀌었다.


.


책도 음악처럼 바뀌어 간다.


책은 읽기 전부터 두껍고 고루한 표지일수록

내용이 어려워 보여서 손이 잘 안가는것이 사실이다.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도

철판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책장을 넘기며

종이에 인쇄된 검은 활자를 한자한자 읽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생각만해도 몹시 피곤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어렵사리 책을 읽지 않고 

간단히 오디오 북으로 듣고 있었다.

보는 책을 듣는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책을 펴지도 않고 

이쁘게 진열해놓은 채, 사진으로 책을 찍고 있었다.

책 자체를 펴지 않으니 어려운 책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책 사진을 찍고 저장하면 

내 머리속에 책 내용이 저장 된다고 착각을 하는 것인지

오래되고 두꺼운 영어책을 좋아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은 본인이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매우 유식한 사람이라는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렇게 두껍고 재미없어 보이는 책들이 

SNS를 통해 다시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위한 서재는 점점 더 멋지고 화려해졌다.


.


책은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의 배경이 되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

접근하는 방법과 방식이 바뀔뿐이다.


과거의 방식이 맞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맞춰 

두꺼운 고집 따위는 과감히 버리고 대응법을 바꿔야 

사진 속 주인공은 커녕 배경으로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고집을 버리지 못한 책들을 꺼내와

새로운 삶은 불어넣어준 곳이 '별마당 도서관'이다.

어떤 사람들은 숭고한 지식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숭고한 지식보다 우선적인건 치열하게라도 벌어 먹고 살아야하는 생존의 문제다.

양반도 3일 굶으면 거지꼴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렇게 바뀐 

고집스런 책씨 영감의 귀환을 환영하고 이해했으며

조심스레 다가가서 지갑을 열었다.


모든 상품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기존의 것들을 결합시키고 분리하거나

사람들의 욕구에 맞춰 순서나 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가면 된다.


그것이 핫플레이스의 비법 아닌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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