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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그거 어떻게 되었어?

우리 모두는 우물 속 개구리지. 회사 속 개구리지

by 조훈희

"내가 저번에 알아보라고 한 것 어떻게 되었어?"


상무님은 왠지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 자리로 다가오셨다.

"안 그래도 곧 보고드릴 예정이었습니다. 지금 막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알아보라고 한지가 언젠데? 당신 뭐하느라 그렇게 바빠?"


분명 상무님은 대강 알아보라고 했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보고하라고는 안 하셨다. 그냥 농담처럼 지나가는 말처럼 하시고는 항상 본인이 시킨 것을 제일 먼저 해야 흡족해하셨다.

"네? 죄송합니다. 빨리 보고 드리겠습니다."

"괜히 딴 일이나 하고 있지 말고 내가 시킨 거나 빨리 알아보라고"


상무님은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크게 하시더니 본인의 자리로 가시면서 깊게 한숨을 쉬셨다. 사실 제일 급한 건 상무님이 알아보라고 한 일 보다 거래처인 '갑'님들이 요청한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더욱이 상무님이 알아보라고 한 일은 삼척동자가 보아도 지극히 개인적인 일처럼 보였다.


"이거 그냥 상무님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그러신 거잖아요. 이런 일은 집에 가셔서 직접 하세요."

라는 이야기가 목젖 끝까지 올라왔지만 이 말을 입 밖에 꺼냈다가는 대역죄인이 되어서 인사평가 시기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고, 결국 난 회사에서 낙오되어 빈털터리 신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보고가 늦었는지 답변을 해야 하는데 다른 업무가 있어서 늦었다고 이야기하면 돌아올 레퍼토리는 세 가지다.


"왜 그걸 당신이 하고 있어?"

"내가 일 같지 않은 일은 빨리 드롭시키고 하지 말라고 했지?"

"당신 어제 몇 시에 들어갔어? 일찍 가지 않았어?"


이렇게 예측 가능한 사자후가 되어서 돌아올 것이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어떠한 변명을 해서 그 어떠한 대답을 듣더라도 내 마음은 최악으로 치닫기 때문에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입을 닫는 게 상책이다.

답답한 마음을 뒤로하고 상무님이 명령하신 일을 마무리하면 결국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한다. 상무님이 시킨 일을 안 하면 내 눈앞에 한 분께만 혼나면 되지만 거래처가 시킨 일을 안 하면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료들까지 힘들어지고, 결국 회사 전체의 신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무님은 보고서를 한번 보시고는 휙 하고 덮어버리신다. 보고를 드리고 방에서 나오는 내 발걸음이 무겁다.


내 자리로 오기까지 날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매일 혼자 남아서 야근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녀석은 상무한테 잘 보이려고 저런 일까지 하네.'라고 흉보는 것 같다.


"자꾸 그런 일 하는 사람으로 찍혀서 어떻게 해?" 라며 위로해주는 동료들도 있지만 이제는 이런 위로의 말도 힘들다.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이런 일이 거듭될수록

'나는 정말 회사에서 이런 일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어린아이는 장난으로 개울에 돌을 던지지만 그 안에 사는 개구리는 그 돌에 맞아 죽는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개구리일수록 장난처럼 다른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지 말고, 어린 개구리 시절을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회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어차피 개구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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