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고생해서 번 돈으로 나를 위한 어떤 선물을 해줄까?
소중한 나는 뭐를 좋아하지? 소고기를 좋아했나?‘
오늘은 즐거운 월급날, 퇴근길이 특별히 더 즐겁다. 설레는 마음으로 남들이 볼까 봐 한 손으로 가리고 만원 지하철에서 조심스럽게 휴대폰 속 통장의 잔고를 확인했다.
"어? 아침에 분명 월급 들어왔을 텐데 돈이 어디로 갔지?"
오늘도 슬픈 회사원의 통장에는 월급이 스쳐 지나갔다.
자동차 할부금, 핸드폰 요금, 아파트 월세와 관리비, 그리고 충동적으로 지른 6개월 무이자 할부금까지. 그들은 몽골의 칭기즈칸 기마부대처럼 통장에 조금이라도 뜯어먹을 것이 생기면 잠시도 기다리지 않고 재빠르게 침투해서 남김없이 약탈해 갔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도 나를 위한 커피 한잔을 사기 위해서 다시 신용카드를 꺼냈다. 다시는 돈을 쓰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어제 월급날의 결의는 이미 산산이 부서진 상태다. 결국 돈을 적게 쓰기보다는 월급이 언제 오를지 기약 없는 기대를 안고 오늘도 그날을 기다린다.
“오늘은 내가 쏜다. 가자 친구들이여!”
과거 대학생 시절에는 한 달에 삼십만 원 정도만 있어도 친구들 사이에서 신처럼 지낼 수 있었다. 만 원짜리 한 장이면 그날 하루는 정체 모를 부침개와 몇 번을 튀겼는지 모를 법한 튀김, 그리고 서비스로 나오는 컵라면 한 그릇에 소주 네댓 병을 마시고, 선후배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소고기를 사 먹을 수 있다니”
신입사원 시절 첫 월급을 받은 그 당시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내가 번 돈으로 나에게 소고기를 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원래 고기는 학교에서 일찍 대기업에 취업해서 잘 나가는 선배가 정장 입고 와서 사주는 메뉴, 아니면 부모님이 사주시는 메뉴였다.
이제는 나도 돈을 벌어서 선배나 부모님처럼 멋있게 돈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동했다. 이렇게 계속 성장한다면 나란 녀석은 ‘30대 정도 되면 한강이 보이는 멋진 아파트에 살면서 밤에는 야경을 안주삼아 와인을 한잔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비현실적인 상상도 했었다.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구나”
오랜 회사 생활 끝에 이제 일도 손에 익고 직급도 많이 올랐다. 대학생 때보다 신입사원 때보다 몇 백을 더 벌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그때의 나보다 빈궁하다. 빈궁한 것이 끝이 아니라 돈이 주는 행복감도 점차 줄어들었고, 실제로 잘 모이지도 않았다.
월급이 매월 부족하다고 느껴서, 어디 괜찮은 투잡이나 재테크가 없을지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나도 퇴근길에 대리운전이나 할까 라고 잠깐 고민했다가 괜히 인터넷을 켜서 친구네 회사의 연봉이 나보다 더 높은지 비교하고, 풀 죽은 표정으로 신세 한탄을 한다.
돈이 적고 많음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보면, 돈의 적음은 “0원”이라는 숫자로 명확히 표현이 가능하지만, 돈이 많음을 표현할 수 있는 숫자는 명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숫자의 커짐은 끝은 없고, 사람마다 많음의 기준은 상대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음 보다 적음을 쉽게 보고 느끼기 쉽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돈의 숫자에 대해서 기준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풍요로움을 느끼기 어렵다. “0원”에 가까울수록 없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커지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져도 숫자의 끝은 없기 때문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내가 통장에서 쉽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0원”이 주는 고통과 빈궁함뿐이었다.
실제로 일을 하면서 만난 부자들은 자신은 절대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 부자들은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자라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몇 십억 원을 가지고 있는 부자는 몇 백억 원을 가진 부자를 부러워했고, 몇 백억 원을 가진 부자는 몇 천억 원을 가진 부자를 부러워했다. 그 부러움의 먹이사슬의 최정점은 없었다. 심지어 그 부자들 역시 자신이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있으며 겨우겨우 힘들게 돈을 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밥 한 끼를 제대로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고, 난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항상 적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결국 직장인이든 사업가이든 스스로 만족하지 않으면 끝이 없는 숫자와 함께 욕망도 끝이 없어져서 항상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 자신이 편협한 생각에 빠져서 스스로 몸도 마음도 빈궁하게 여기고 있음을 반성하면서, 한정판으로 나온 사고 싶었던 비싼 가방을 사기 위해서 은행에 가서 마이너스 통장을 뚫었다. 신나게 카드를 긁고 통장에 마이너스가 찍히기 시작하자 이제는 적음의 끝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빨간 글씨로 계속 늘어나는 숫자는 나에게 복리의 마법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난 그동안 내 통장에 찍혀 있던 “0원”이 얼마나 풍요롭고 넉넉한 숫자인지 단번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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