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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겨우 이런 일 하러 회사 왔나?

흠흠하게 흠흠하자

by 조훈희

“내가 이 연봉받고, 겨우 이딴 일 하러 왔는 줄 알아?"


신입사원 시절 유난히도 회사 생활을 힘들어하던 한 동료가 탕비실에서 서류뭉치를 제본하면서 푸념하듯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고, 입사 전 경력도 무척이나 화려했다. 여러 가지 외부 활동에 수많은 자격증까지 누가 봐도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 보였다.


그 친구는 멋지게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오면 금방이라도 대단히 멋진 기획안을 만들고, 남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해외 바이어가 감동을 해서 기립 박수를 치고, 악수를 하고 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을 꺼내 MOU를 체결한 후 수 많은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사진을 찍고 비행기를 타는 꿈을 꾸었나 보다. 그러나 현실 속 그 동료의 주된 업무는 담당 임원의 차량 운전과 가방 챙기기 그리고 기획서 복사와 제본 정도였다.


처음 회사에 오면 토익 만점자도 ‘에이포, 커피, 컴퓨터, 워드, 엑셀’ 정도의 영어 단어를 구사한다. HSK 6급 정도 되면 가끔 중국어로 양꼬치 집에서 ‘꿔바로우’와 ‘연태고량주’를 정확한 성조와 발음으로 주문할 수 있다.


'내 능력이 얼마큼인데 나한테 겨우 이런 일을 시켜?' 라고 생각하고 회사를 뛰쳐나가면 ‘에이포, 커피 등등’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땐 우리 모두 거꾸로 생각해보자. 어느 날 갑자기 담당 임원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본다.


"이번 신사업을 당신이 직접 기획하고, 출장 가서 워렌버핏을 만나고 와라. 그리고 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1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해 와라"


신입사원 시절부터 이런 엄청난 업무의 지시를 받는다면 분명 ‘겨우 이런 일’이 아닌 ‘어떻게 이런 일’을 시키냐면서 푸념을 할 것이 분명하다. 현재 당신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꿔서 생각해보자. 회사 밖에서는 운전이나 하고 가방이나 들다가 회사에 돌아와서 파티션에 숨어서 컴퓨터를 보다가 가끔 허리 아프면 복사하는 척하고 복합기 앞에서 서 있는 것도 편하지 않은가?


실제로 어느 회사를 가더라도 이러한 방법으로 딱히 발전 없이 천수를 누리고 계신 분들도 있을지니 너무 죄의식을 갖진 말지어다. 물론 이러한 분들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보이지 않게 만드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노하우는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메주가 발효되듯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전수받기 어렵다.

회사 생활의 자존감이 낮아질 땐 '이번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군'이라고 생각하고 흠흠하고, 어려운 과제로 업무가 과중될 땐 '이번엔 나를 드디어 인정하는 일이군'이라고 생각하고 흠흠해야 한다. 그러면 회사에서 당신에게 시키는 모든 일에 흠흠하며 오래 다닐 수 있다. 회사에서 나에게 시키는 모든 일에 흠흠하며 오래 다닐 수 있다.


(흠흠하다 : 남의 일처럼 모른 체하다.)


'밥벌이의 이로움' 자세한 책 정보 링크 : https://bit.ly/3psf3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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