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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인규 Jan 14. 2022

라면 하나에 대기업 대표 사임, 가혹치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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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가 24년 3월까지인 윤석춘 하림 대표이사가 12월 31일 돌연 사임했다. 이에 대해 하림은 따로 배경 설명 하진 않았지만, 지난해 10월 선보인 '장인라면' 흥행실패 책임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출시 한 달만에 누적 판매량 300만 봉을 돌파했지만, 필수요소인 소비자들의 재구매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실제로 영수증 리워드 앱 '오늘 뭐 샀니'를 운영하는 캐시카우에 따르면 장인라면의 구매 경험도는 11월 5.2%에서 12월 4.1%로 크게 하락했다. 또한 소비자들 역시 가격만 비싸고 차별점 찾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장인라면 출시까지 꼬박 5년이나 걸린 점. 그리고 이에 깊게 관여했던 윤석춘 대표이사의 책임은 분명히 크다. 하지만, 만약 정말 라면 하나로 사임이 된 것이라면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의견도 있을 법한데. 사실 이 실패는 하림에게 향후 도전에 뼈아픈 타격이기에 충분히 정당하다 할 수도 있다. 이 실패가 하림에게 너무도 뼈아픈 이유가 뭘까?  







 아.. 하림은 역시 닭고기나 먹어야지



어찌 보면 가장 무서운 한 줄 인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림은 육계 사업의 성장성 한계치를 실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종합식품 기업으로 진화를 추진 중이었다. 그리고 즉석밥 시장에 이어 두 번째인 도전인 이 장인라면은, 회장까지 직접 나서 5년간 공들인 제품이고, 이정재라는 가장 핫한 광고 모델과 막대한 광고비를 지출했기 때문에 이 실패 여파는 너무도 큰 것이다.



막혀버린 브랜드 인지도 활용


샘표 브랜드 티아시아키친 커리 일명 '전지현 카레'


커피에서 간장 맛이 난다. 1980년대 캔커피 시장에 도전한 샘표는 간장 이미지가 워낙 강하고 커피의 검은색이 간장을 떠올린다는 이유로 커피에서 간장 맛이 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처럼 이미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를 가진 기업들은, 신규 개척에도 이 인지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파 한다. 하지만, 이미 기업 이미지가 너무 굳게 박혀있어서 오히려 감추고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티아시아키친 커리 역시 샘표 브랜드 것인지 아는 소비자는 극소수이다.


하림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장인라면


그렇다면 하림은 어떤가? 장인라면은 하림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적어도 라면 시장은 오뚜기와 농심이 꽉 잡고 있기에, 장인라면을 산 고객들에게 하림은 그다지 설득력 있는 브랜드는 아니지 않았을까. 게다가 그 어떤 라면봉지보다 비싼 2200원. 구매하기까지의 여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위험부담을 떠안고 선택해 실망한 소비자들은 두 번의 기회를 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림 = 라면? 에 호기심을 가졌던 고객들은 이제 하림 = 닭고기 공식을 더 확고하게 다졌을 테니.


그래서 향후 하림의 도전은 첫 시작보다 배로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샘표처럼 브랜드 인지도를 숨기고 시도할 가능성도 크고, 그게 아니라면 혁신적인 라면을 선보이지 않는 이상 고객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독약이 될 자극적인 광고


장인라면 광고 문구


하림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뚜기, 농심 등 라면계의 거장들 사이에 신제품이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강렬한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광고 카피만 봐도 굉장히 자극적이면서 강렬함을 알 수 있다. 출시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 300만 봉을 달성했으니, 이 전략만큼은 성공했다고 봐야겠다.


핵심 광고 카피인 '감히, 라면 주제에.' 분명 장인라면 반응이 좋았다면 이 광고 카피는 성공사례로 알려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제품의 현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고객들의 기대치만 끌어올렸기 때문에 오히려 부정적인 역할이 크다.


자극적인 광고 카피, '장인라면', 하림 회장의 5년간의 결실, 한 봉지에 2200원 등등.. 고객들에게 너무도 기대치를 키워준 덕분에 실패에 대한 각인은 곱절이 된다. 마케팅 덕분에 인지도를 널리 알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마케팅 덕분에 이미지는 나락으로 가고, 이제는 너무나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회수하기까지도 불가능한 것이다.








밤에 먹고 자면 얼굴이 붓고 속이 더부룩하고 칼로리 높아서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인식을 깨고 싶었다.
-조삼래 하림산업 대용식품개발팀  


고객들이 장인라면에 실망하는 대부분은 차별화 없는 '맛'이다. 만약 하림에서 위의 모토를 다른 포인트보다 적극적으로 강조했으면, 지금보다 평가는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결과적인 이야기지만 본질은 재쳐두고 다른 부분들을 더 강조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차라리 닭가슴살 라면을 도전해보는 것이 어땠을까. 하림이 확실히 자신 있는 영역+확실한 목적성으로

맛과 다이어트 그리고 얼굴 붓기 예방을 제시했다면 지금 정도의 실망스런 반응은 없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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