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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muraeyo Aug 03. 2022

마음을 가벼워지게 한 위로

반려견의 위로

  아침 6시 반쯤, 우리 집 강아지 흰둥이가 침대 곁으로 와 멍멍 짖는다. 내가 몸을 살짝 비켜 자리를 조금 내주면 흰둥이는 펄쩍 침대 위로 올라와 몸을 내게 붙이고 앉는다. 올라올 때 하얀 털이 후드득 햇살에 날린다. 내게 찰싹 붙어 있는 조그만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기분 좋다. 잠깐 그 온기를 즐기다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나오면, 녀석도 뛰어 침대를 내려온다. 그리고는 거실 창문 앞에서 멍 하고 짖는다. 창문을 열어 달라는 말이다. 살짝 창문을 열어주면 촉촉해진 갈색 코를 들고 쉴 새 없이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한동안 그렇게 동네 냄새 탐험이 끝나고 나면 창문 앞 좌식 의자에 자리를 잡는다. 그런 녀석이 귀여워 털을 쓰다듬어 본다. 머리에서 꼬리로, 꼬리에서 머리로. 깊숙한 털 속에 감기는 손가락의 느낌이 좋다. 두세 번쯤 쓰다듬으면 녀석은 슬쩍 몸을 돌려 벌러덩 누워 배를 보인다. 왼쪽 앞발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쭉 뻗고, 뒷발은 활짝 벌리고 핑크빛 배를 드러내 는 것이다. 녀석의 바람대로 잔털들이 나 있는 배를 쓰다듬으면 기분이 좋은 듯 실눈이 된다. 뻗은 앞발에 살짝 하이파이브를 해본다. 남편과 딸아이가 슬슬 깨어나는 시간, 우리 집에 조용한 아침 끝자락이 남아 있는 시간을 흰둥이와 함께 하며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코로나가 시작하고, 한참 유행이 계속되던 때, 친정 엄마가 위암을 판정받고 항암 치료가 계속되면서 힘들어하는 엄마 옆에서 나도 조금씩 지쳐가던 시기에 흰둥이는 우리 집에 왔다. 태어난 지 3개월도 안 되었던 아이였는데 친척 집을 돌다가 우리 집이 세 번째였다. 가족 톡방에 강아지 사진 한 장이 올라오고, 우리더러 데려가 키우면 어떠냐는 고모 말에 남편이 대뜸 키우겠다고 하면서 갑작스럽게 우리 집에 오게 된 녀석이었다. 외동인 딸아이에게 반려 동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준비도 없이 맞이할 줄은 몰랐다. 흰둥이는 그렇게 우리와 가족이 되었다.


  흰둥이가 우리에게 오던 그 해, 우리 가족은 많이 힘든 시기였다. 딸아이는 코로나로 바뀐 온라인 학습으로 학교에 처음 갔던 1학년 때보다 더 많은 돌봄이 필요했던 때였고, 나의 엄마는 건강 검진 중 위암을 발견하고 당장은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라, 항암을 하고 있던 때였다. 게다가 한 달 차이로 시아버지까지 담낭암 판정을 받으시고 수술을 하셨더랬다. 혼자 계신 친정엄마의 병간호는 내가 돌봐야 해서, 1~2주마다 몇 번씩 인천에 오가야 했는데, 아직 어린 딸아이는 내가 1박 2일, 혹은 2박 3일로 병원에 가는 날이면 혼자 집에서 기다리거나, 친구 집에 부탁하거나, 남편이 연차를 내고 돌봐야 했던 시기였다. 1년 동안 남편의 연차는 병원 일정에 모두 쓰고도 모자랐고, 아이는 학교에서 집까지 좀 먼 길을 혼자 걸어오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때의 나는 가족 모두의 도움에 기대고서, 집에서는 최소한의 의무만을 했었다. 그리고서 남은 모든 시간과 에너지는 친정 엄마에게 쏟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어느 때부터인지 자꾸 체력이 바닥나고, 별일 아닌 것들도 힘에 부쳤다. 병간호로 인천에 있을 때 빼고는 종일 무기력한 때여서, 딸아이가 그때 자주 나에게 했던 말이 “엄마, 괜찮아?”였다. 딸과 남편에게는 참 못난 엄마, 아내였던 때였다.


  그런 시기에 왔던 흰둥이는 온 지 며칠 뒤부터 여기저기 자주 실수를 하고, 화초들을 물어뜯거나, 테이블의 다리들을 갉아 댔다. 그러다 어느 날은 흰둥이가 바닥에 있던 책의 모서리를 뜯어 놓은 적이 있었다. 그걸 치우는데 갑자기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그렇게 터질 울음도 아니었는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동안 울고 있는 나에게 흰둥이가 조심조심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혀로 핥기 시작했다. 녀석의 조그만 몸을 꼭 안으니 품에 가만히 안겨 있었다. 포근한 털의 감촉에 터진 울음들이 잦아들었다. 무겁기만 했던 마음이 잠깐 가벼워졌다. 


  그때부터였다. 말도 안 통하는 녀석과 자꾸 내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맞춰주니 가만히 내 말을 듣는 것도 같았다. 무기력한 날, 빈백에 누워 있는 내 옆에 슬쩍 다가와, 등을 내게 대고 앉았다. 빈백 의자 밖으로 삐죽 나왔던 내 발등에 녀석의 부드러운 털들의 촉감이 느껴졌다. 집 여기저기 바닥에서 벌러덩 누워,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녀석을 볼 때마다 픽픽 웃음이 났다. 


  하루가 끝나면 가족들이 다들 모여 흰둥이의 털을 빗기고, 양치질을 해주고, 가끔은 항문낭을 짠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앉아’, ‘누워’, ‘굴러’를 가르쳐 주었다. 부모님들의 암에 대한 걱정만 많던 매일의 대화에서, 흰둥이와 산책하며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지면서, 매일 나도 모르게 무겁기만 했던 그때, 흰둥이와 함께 우리는 조금 더 가볍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조금 힘들었던 날도, 많이 바쁜 날에도 그렇게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사계절이 흘러갔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엄마는 수술도 받으시고, 수술 후 그 힘들던 항암도 끝내고, 이제는 엄마 몸속에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져서 6개월마다 정기 검진만 가신다. 시아버지는 두 번의 수술을 마치고, 여전히 약은 드시지만 매일 산책하러 다니실 만큼 나아지셨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이 끝이 나고, 우리 가족에게 먹구름처럼 끼어있던 불행이 서서히 걷혔다. 그리고 나의 무기력함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오늘도 6시만 되면 녀석은 나에게 다가와 멍 하고 짖는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산책을 나선다. 여전히 무기력해지고, 무거워지는 날에도 함께 걷고 나면 조금은 비워지고 가벼워진 하루로 마무리하게 된다. 매일 조금씩 나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주는 흰둥이의 위로가 한없이 고마워지는 요즘이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함께 하자, 흰둥아.  






                          가끔은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견뎌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너무 모든 짐을 지고 가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에 마음의 짐을 부탁해 보세요. 

               가까운 사람, 혹은 반려견에게 받는 작은 위로들이 의외로 큰 힘을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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