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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m Apr 11. 2024

겨울이 갔다

내가 계절을 타는 사람이란 건 7년 전 덴마크에서 알게 됐다. 대부분의 나날을 낮게 깔린 구름 때문에 해를 보지 못하고 보내면서 우울은 습관이 됐다. 대신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해를 좇아 다니고 실내에서의 즐거움을 찾으며 어느 시기보다 충만하게 삶을 누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춥고 해가 잘 안 떠있을 때 가장 약한 내가 되는 건 사실인 듯하다. 지난 늦가을부터 겨울은 특히 그랬다. 특별히 아픈 곳도 없는데 몸이 무겁고 의욕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앞선 봄여름과 비교됐기 때문이다. 


노래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들으면 작년 가장 활기 넘쳤을 때로 돌아간다. 난생 처음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며 그 노래를 듣고,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날이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면서 일상이 둔해졌다. 지루한 터널을 지나는 느낌. 생각보다 기간이 긴 것 같았지만 그냥 내버려뒀다. 언젠가 힘이 채워질 거란 생각이 들었고 기다렸다.


그렇게 겨울이 갔다. 기후위기로 세상이 더욱 불확실해지긴 했지만 다시 새순이 나고 기온은 올라갔다. 나도 한결 움직이기가 편해졌다. 한껏 자연스러워지고 억지 쓰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선거날인 어제, 23시간을 내리 깨어있다가 곯아 떨어진 후 오후에 피쉬타코를 먹으러 나왔다.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 얘기로 마음이 복잡하다가도 봄날 공원을 걸으니 아무렇게나 돼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없다'가 아니라 '좋다'. 아무렴 좋다. 


벤치에 앉았다가 못참고 스르륵 누웠다. 벚나무가 적당히 가려주는 햇살에 헤드폰으로 90년대 가요를 들으면서 40분을 잤다. 가볍고 부드러운 바람이 내내 얼굴을 타고 넘었다. 섭씨 20도. 최고의 나를 만들어주는 날씨였다. 계절이 변하듯 일과 마음과 몸과 사람도 변하니, 나는 그저 받아들이고 순간을 살기로 다시 생각한다. 힘 나면 힘 나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기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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