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1. 할머니들에게 감히 조심스럽게 책 한권을 권해봅니다
"아니~ 어제 김씨, 결국 들어갔잖아. 딸이 데리고 갔어."
"진짜? 결국은... 그렇게 됐구만."
"에이- 오히려 그게 좋을 수도 있어."
오전 11시. 북적거리면서 할머니들이 입장하셨다.
"어서오세요~!"
"우리 4잔!"
"네네."
처음에는 자리 잡고 앉는 것도 어색해하셨던 분들이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지정석을 찾아 자리에 앉으셨다.
나는 다방 커피 4잔을 타서 할머니들 쪽에 가져다 드렸다.
"무슨 얘기를 하고 계셨어요?"
"여 앉아봐. 아니, 김씨라고 여기 한 번 데려 오려했던 할배 한 분 계셔. 평소에 독서를 무지하게 열심히 하셨던 양반이거든."
"네네."
나는 꽃할매 쪽으로 귀를 쫑긋 향하며 할머니들 사이에 앉았다.
"그 김씨가 얼마전에 치매가 심해져서 요양시설로 들어갔어. 자녀들이 다 케어하기 힘드니께. 판단을 해서 결정을 내린 거 같더라고."
"아..."
"새액시는 머리 단단히 챙겨! 지금부터 건강 챙겨야 해. 내가 방송 봤는데... 포스파티?타티? 머시깽이가 뇌에 그렇게 좋대. 챙겨 먹어~ 나는 울 딸이 그렇게 챙겨줘."
이 분은 약을 파는 게 아니다, 딸 자랑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근데 나도 요즘 깜빡깜빡 해. 치매 걸려서 자식들한테 민폐되면 어떻게 해."
"에이- 무슨 그런 말씀하세요~!"
"요즘 우리 나이에 제일 화두가 뭔지 알어? 치매여! 치매."
"에이. 할매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심지어 책에서도 화두가 치매에요. 치매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
"네! 마침,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저희 서점에서 선정한 이번 주 서적이 <녹나무의 여신>인데요."
"뭐? 그게 뭐여?"
나는 할머니들 앞에서 흡사 변사가 되어 소설 <녹나무 여신>의 줄거리를 풀어냈다.
"월향신사에는 거대하고 장엄한 녹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요. 이 녹나무는 영험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뭐냐.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밤마다 이 나무 기둥 속에서 염원을 하면 그 염원이 나무에 남는 거예요. 그렇게 녹나무에 저장된(?) 염원을 혈연 관계가 수렴할 수 있어요. 즉, 내 생각하는 것을 염원하면 우리 엄마나 아빠가 다 읽을 수 있는 거죠. 이토록 영험한 곳, 관리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청년 레이토가 녹나무를 관리하는 파수꾼이됩니다. 원래는 치후네가 파수꾼이었는데, 60살을 넘기고, 경도인지장애를 경험하게 되면서 먼 친척인 레이토에게 파수꾼 타이틀을 넘겨 준 거예요."
할머니들은 어제 놓친 드라마 얘기를 듣듯이 내가 하는 말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 반응이 나쁘지 않아 나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어느 날, 월향신사에 꼬깃꼬깃한 시집을 팔러 한 소녀가 옵니다. 어린 소녀는 소녀 가장으로 돈을 벌기 위해 시집을 파는 거예요. 중간에 이런저런 사건들이 엉키고 엉키는데, 거긴 다 패스! 궁금하신 분들은 살포시 구입하는 것도 좋겠죠? 그리고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어린 나이에 사고로 인해 하루만 기억하는 소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기억이 리셋됩니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스타워즈 전편. 그리고 그림 그리기입니다. 그런 둘은 파수꾼 레이토가 연결합니다. 소녀의 글과 소년의 그림이 만나 <소년과 녹나무>라는 작품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여기에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치후네는 현명한 어른의 모습으로 그들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데요. 어찌보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해요."
"어떻게? 치맨데 어떻게 바른 길로 인도해?"
"치후네는 경도인지장애, 즉 치매 초기 증세부터 천천히 단계를 밟고 있는데요. 자신의 질환을 알게 된 순간부터 자신의 모든 일상을 기록해요. 기억하기 위해서, 또는 기억을 검증하기 위해서. 여기에서 멈추지 않아요. 녹음도 합니다.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고 또 점검해요. 사람들에게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흠... 대단한 양반이시네."
"네. 저, 책읽다가 우는 게 몇 번 없거든요. 근데 책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 때 즈음에 눈물이 펑 터져버렸잖아요. 점점 기억을 잃는 치후네 옆에서 레이토는 방정맞게, 호들갑스럽게 걱정하지 않거든요. 이게 포인트인 거 같아요. 치매 앞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그렇기에 그 삶또한 하나의 흐름으로 지켜볼 뿐이다. 이 책의 저자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느새 일상 속에 침투해버린 '치매'라는 질환에 대해서 두려워 하지도, 어려워하지도 말고 그저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레이토는 옆에서 묵묵히 치후네의 구멍난 기억을 메꿔줍니다. 그리고, 그녀가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그게 바로 <소년과 녹나무> 낭독회에요. 레이토는 매일 기억을 잃는 소년의 그림과 현재의 기억이 고난한 소녀의 글이 하나가 된 <소년과 녹나무>를 기억을 잃어가는 치후네에게 부탁합니다. 그 부분에서 눈물이... 왈칵!"
....
나도 모르게 또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그래서 그 양반은 어떻게 됐어?"
"그르니까. 어떻게 됐어?"
나는 눈물이 흐르지 않게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눈물을 눈알 속으로 흘려보낸 뒤, 다시 할머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직접 구입해서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아. 이상 변사, 더곰이었습니다."
할머니를 상대로 책장사를 하는 건 좀 양심상 아야하긴 하지만... 안사도 그만이니까 농담처럼 가볍게 툭 던져보았다.
꽃할매는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지갑을 꺼냈다.
그런데, 바로 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