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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 모 기자 May 10. 2021

경제부 박 부장의 포럼 협찬 '쓰리쿠션'

"야, 이 개새끼야. 너, 내가 건들지 말랬지. 뭐하자는 거야. 경제부장 우습게 봐? 변명 하지마! 너, 두고 봐 이 새끼야, 넌 내가 모가지 따고 만다. 알겠어?!"


욕설과 협박이 양념된 고함 소리가 독서실 같이 조용하던 보도본부에 울려퍼졌다. 자리에 있던 일부 기자들과 작가, PD들이 고개를 빼고 파티션 너머 소리가 난 곳을 쳐다봤다. 경제부 푯말 아래 앉은 박부장이 씩씩 거리며 전화기를 탁하고 내려놨다. 다들 새로운 것 없다는 얼굴로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하던 일로 돌아갔지만, 박부장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 박부장은 앞자리에서 눈치를 보던 경제부 데스크 오차장을 쏘아봤다. 


"야, 오차장. 광고국에 내 얘기 전달 안했어? 광고국 이차장은 뭐 하는 새끼야?"

"네? 전달 했는데요, 그 광고국장께서..."

"광고국장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니가 그러니까 우리 부가 맨날 물먹고 티미하다는 소리 듣는 거 아냐!"


박부장은 핸드폰을 들고 광고국장 번호를 누르다가 멈췄다. 아무리 보도본부를 떠났다고 해도, 그래도 선배인데 함부로 전화해서 성질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 또 보도본부로 복귀할지도 몰랐다. 그말인 즉슨, 본인이 광고국으로 발령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박부장은 애간장이 탔다. 박부장은 광고국장 대신 공기업인 한국OO공사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님, 접니다. 내가 별로 안녕하지는 못하고, 어떻게 된 겁니까. 아니, 우리 연말 포럼 때문에 그러죠. 그 협찬, 경제부에 해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광고국에서 가져갔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네? 뭐라고? 아니, 그런 게 어딨어. 같은 회사끼리 왜 그러냐고? 같은 회사고 뭐고 간에 당신이 약속을 안 지켰으니까 하는 얘기 아니야! 감히 언론사 부장 상대로 사기를 쳐? 뭐가 거짓말이 아니야! 말 다했어? 두고 봐, 알겠어? 어디 두고 보자고!"


늘 이런 식이었다. 점잖게 얘기하려다가도 지 성질을 못 이겨서 화가 고조되고 폭발하는 게 박부장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소시오패스니 뭐니 주변에서 욕도 많이 먹지만, 소위 '땡겨 온다'고 부르는 '삥 뜯는' 영업력 하나는 최고였으니, 아무도 회사에서 뭐라 그럴 사람이 없었다. 간혹 박부장을 상대로 '언론인이 그래서 되겠냐'는 식으로 비아냥 거리는 기자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박부장은 한 마디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니 특종하라고 주는 월급도 내가 벌어 오는 거다. 알겠냐?"


그런 박부장이니,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박부장이 머리를 한창 굴리는데, 오차장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박부장은 대답 없이 서류도 보지 않고 오차장을 쳐다봤다.


"부장, 포럼 연사 다시 섭외했는데요. 전직 미국 국무부 차관이 갑자기 안 된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으로..."


그제서야 물끄러미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를 본 박부장은 인상부터 구겼다.


"야, 얘 얼굴이 왜 이래"

"네?"

"왜 하필 동남아야"

"지금 경제학 쪽에서 유명한 교수인데요, 얼마 전에 발표한 논문도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돼서"

"오차장아, 백악관 라떼루가 붙던지, 노벨상을 받았던지, 아니면 적어도 안경 쓴 백인이어야 할 거 아냐"

"그래도..."


화를 억누르고 얘기하던 박부장이 오차장의 '그래도' 한 마디에 폭발했다. 


"이거 미친 놈 아냐. 지금 안 그래도 광고국이 협찬 땡겨가서 열 받는데, 너 얘 얼굴 갖고 영업해 올 수 있어? 우리가 이딴 애 섭외했다고 광고국에서 광고 못 받았다고 하면 할 말 있냐고. 너 차장 돈 주고 샀냐? 니가 이러면서 애들 기사 데스크 보고 취재 지시를 할 수 있어? 지금 나 먹이는 거야, 뭐야. 어?"

"죄송합니다"

"오차장, 정치부 오래 했잖아. 외교부나 대사관이나 국회나 어디든 전화 좀 돌려서 누구 좀 내놓으라고 그래봐. 당신 능력이 부족하면 좀 물어보고 섭외가 안 되면 다른 데 총을 쏴서라도..."


한창 쏘아대던 박부장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오차장은 의아한 얼굴로 박부장을 바라봤다. 박부장은 오차장은 상관없이 뭔가 떠올랐다는 얼굴로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선배님, 접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인왕산 공기는 좋습니까. 청와대 들어가시더니 연락도 잘 안 되고, 너무 잘 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네? 에이, 요즘 제대로 보고하는 사람이 선배님 밖에 없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박부장은 보기 힘든 환한 얼굴로 파안대소를 하며 통화를 이었다.


"네, 다른 게 아니고요. 저희 포럼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네, 그 도움의 손길이 좀 필요한데, 시국도 시국이고 요즘 불경기다보니까 쉽지가 않네요. OO공사 연락했죠, 그런데 조금 꼬여서. 아뇨, 새로 해주실 필요 없이 그 OO공사가 꼭 필요한데, 어떻게 산업부 통해서 안 되겠습니까. 제가 김차관한테 다 얘기 해 놨습니다. 네, 네. 그럼 바로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박부장이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산업부 차관이었다.


"차관님,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시지요. 네, 그 포럼 협찬 관련해서, 중간 다리 연할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OO공사에서 예산이 너무 부족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고 오히려 저한테 도와달라고 하는데. 네? 차관님, 저희가 저번에 그 부동산 취재도 더 안 했잖아요. 그렇죠, 그 건은 이제 제 마음 속에만 있는 거로. 네, 네. 제가 BH 황 선배께도 말씀 드려 놨습니다. 네, 네. 그럼요. 믿고 있겠습니다."


청와대와 산업부를 이은 박부장은 다소 누그러진 얼굴로 OO공사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에 욕설을 퍼부은 기억 따위는 박부장의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손해볼 수 있는 기억은 빨리 잊고 뒤덮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본부장님, 접니다. 네, 제가 다 이해합니다. 공기업 입장에서 어쩔 수 없죠. 그래서 말인데, 산업부에 예산 신청을 해 보시죠. 제가 김차관하고, 그리고 BH 황선배님 아시죠? 수석님. 네, 그쪽에 다 말해놨고요. 당연히 예산 남는 거 있으면 또 그거 다른 데 쓰셔도 되죠. 그거 안 되겠습니까, 본부장님이 알아서 하셔야지. 제가 그렇게 팍팍한 사람은 아닙니다, 아시죠? 네, 네. 그렇죠. 그럼 믿고 있겠습니다."


박부장은 뿌듯했다. 순발력으로 OO공사에서 산업부에 예산을 신청하고, 산업부는 청와대의 재가를 받아 돈을 내려주기만 하면 되는 구조가 완성한 셈이었다. 그러면 그 예산 중 일부가 포럼 협찬 비용으로 들어오고, 모두 박부장의 성과가 된다. 하지만 도움을 받았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박부장은 잠시 생각한 다음 OO전자 강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전무, 나요. 주말에 시간 돼요? 다른 게 아니고, 내가 BH 황 수석님하고 산업부 김차관, 그리고 거기 누구야, OO공사 본부장, 응, 그래 거기. 이렇게 필드에 나가려고 헸는데 생각해보니까 기업인들께서도 함께 하시면 좋을 거 같아서. 그렇죠, 공직에 있으면 기업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지. 그러면 날 잡고 연락 주세요. 들어가세요"


박부장은 온화한 얼굴로 의자를 뒤로 재끼고 편안한 자세로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도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 한 건 해낸 박부장이었다.


※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언론사나 기관과 무관합니다.


#구악 #꼰대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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