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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 모 기자 Jun 22. 2021

사회부 장 기자의 '퉁'

왠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었다. 침대에서 뒤척이던 장기자는 핸드폰을 열었다. 게임이나 하려고 했다. 마침 문자 메시지가 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서초경찰서 강력팀 형사였다. 


'강남에서 술 먹으면 꼭 대리 불러. 알겠지?'


강남경찰서에서 뭔가 음주 운전 관련 건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원래 경찰은 자기 팀이나 자기 관할이 아니면 제보하는 데에 큰 거리낌이 없다. 실적 경쟁 관계에 있는 경찰서에 대해선 특히 그랬다. 기자나 상대하며 고생하라는 뜻이었다. 


어차피 잠 자기도 그른 장기자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강남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주차장 구석에선 렉카(견인차) 한 대가 앞 범퍼가 다 날아간 고급 외제차를 내려놓고 있었다. 장기자는 교통과 안으로 들어갔다. 한 남성이 술이 덜 깬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 주위엔 금테 안경과 정장으로 무장한 남성 두 명이 있었다. 이마에 '변호사'라고 적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장기자는 은근슬쩍 남성을 조사하는 근처로 다가갔다. 귀동냥이라도 할 셈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까이 가지도 못했을 때 변호사 같은 남성 중 한 명이 눈짓을 했고, 경찰이 다가와 장기자를 제지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전... 조사받으러. 여기가 아닌가"


장기자는 기자라고 굳이 밝히지 않았다. 괜히 부작용만 생길 것 같았다. 장기자는 주차장에서 본 렉카가 떠올랐다. 얼른 뛰어갔다. 렉카가 주차장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장기자는 빠르게 뛰어가 조수석을 두드렸다. 차가 서고 창문이 내려갔다.


"뭐예요?"

"형님, 안녕하세요"


장기자는 능구렁이처럼 일단은 조수석에 올라탔다. 견인차 기사가 잔뜩 경계하며 장기자를 노려봤다. 장기자는 얼른 명함을 내밀었다.


"형님, 피곤하시죠. 저 차, 주인 누구예요?"

"아, 내려요. 빨리. 출동해야 돼요"


기사는 말을 더 듣지도 않으려 하면서 장기자를 밀어냈다. 장기자는 밀려나지 않으려 버티다가 얼른 지갑에서 5만 원짜리 2장을 꺼내 줬다. 그만큼 뭔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사고 접수 서류 한 번만 보여주면 그냥 갈게요. 네? 형님, 제발요"


기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돈을 받고선 서류를 쓱 내밀었다. 장기자는 사고자 이름부터 확인했다. '이XX'. 재벌이라고 통하는 OO그룹 4세였다. 장기자는 티 나지 않게 쾌재를 불렀다. 장기자는 전체적인 내용을 훑어보면서 주요 내용만 빠르게 수첩에 메모했다. 차에서 내린 장기자는 기사 모르게 부서진 차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이 정도면 아침에 단독 기사를 하나 쓰기에 충분했다. 집에 돌아와 편한 마음으로 푹 자고 일어난 장기자는 얼른 아침 보고를 올렸다. 기사도 거의 다 써놨다. 송고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기사 언제 보내냐고 쪼아 댈 차장이 전혀 연락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장기자가 전화를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회사였다. 장기자는 활기차게 받았다. 단독 발제를 한 자의 여유였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기대와 전혀 달랐다.


"넌 몇 년 차인데 이렇게 보고를 올리는 거야?"

"네?"

"내가 너 때문에 아침부터 식겁해서, 진짜. 끊어!"


장기자는 아침 보고 종합란을 다시 살폈다. 자기가 올린 OO그룹 4세 음주 사고 발제가 지워져 있었다. 장기자는 심장이 뛰었다. 장기자는 차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제 발제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합니까. 추가 취재합니까'


곧바로 답이 왔다.


'너 몰라서 그래?'

'어떤 말씀이십니까'

'장난해? OO가 몇 년째 우리 최대 광고주잖아. 관심 좀 갖고 살아'


장기자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 기사는 둘째 치고, 누군가 보고라도 볼까 봐, 불똥이라도 튈까 봐 차장이 아침부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두 달 전 경제부 동기가 취재한 내용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장기자는 분했다. 새벽에 경찰서까지 다녀온 게 한 순간에 헛짓거리가 됐다. 장기자는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차장도, 부장도, 회사도 모두 이해가 됐다. 세상은 그런 거니까, 월급도 받아야 하니까. 장기자는 자리로 돌아와 차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다른 발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선 통신사 동기에게 보낼 메시지 창을 열고, 아침 보고를 그대로 긁어 붙였다.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니해라'


장기자는 인터넷에서 다른 기사 발제 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별 게 없었다. 장기자가 고민하고 있는데 휴대폰 속보 알림이 떴다. 장기자는 굳이 내용을 보지 않고도 미소를 지었다.


※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언론사나 기업 등과 무관합니다.


#음주사고 #퉁 #결론은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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