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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 모 기자 Jun 07. 2021

사회부 장 기자의 '짭' 미행

장기자는 부구청장을 미행하면서도, 이게 미행인지 헷갈렸다. 보통 미행이라고 함은, 상대방 모르게 뒤쫓는 행위라는 것쯤은 장기자도 알고 있었다. 장기자가 부장에게 받은 지시도 분명히 "미행"이었다.


"넌 K구 부구청장 알지. 걔 미행 좀 해. 차 타고 무조건 따라다녀"

"왜 말씀이십니까"

"그냥 하라면 좀 해"

"네. 그러면 언제까지..."

"그만 하랄 때까지"


하지만 장기자는 부구청장이 보란 듯, 관용차 뒤를 바싹 붙어서 따라다녔다. 장기자가 모는 회사 차엔 커다란 로고와 함께 '취재차량'이라고 떡하니 쓰여있었다. 모두 부장 지시였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부구청장이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나온 식당에 뒤따라가 뭘 얼마나 먹었는지를 보고해야 했다. 누구와 만났는지도 최대한 알아내 부장에게 '직보'해야 했다. 보고가 어설프면 깨졌다.


"점심 보고 드립니다"

"얘기해"

"점심은 한우리에서 먹었고요, 11시 반에 들어가 1시쯤 나와 구청 복귀했습니다"

"뭐 먹었는데?"

"메뉴요?"

"얼마 짜린데?"

"그게"

"누구랑 먹었는데?"

"그건 아직 확인을"

"새끼가, 넌 ABC도 없이 보고하냐? 어디서부터 잘못된 새끼야?"


이렇게 몇 번 '전화 끊김' 당한 이후 장기자는 부구청장의 뒤를 따라 식당까지 따라갔고, 근처 테이블을 잡아 뭘 먹는지 지켜보고 점원에게 물어보기까지 했다. 대답을 안 해주면 인근 주민인 척 같은 걸로 시켰다.


"안녕하세요, 저기 부구청장님 맞으시죠? 저도 같은 거로 부탁드릴게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지만, 부구청장은 왠지 불편해하면서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장기자는 아직 법인카드가 없어 밥값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부장한테 일방통행으로 욕을 먹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행 형식의 취재에 이유가 있을 것으로 여겼다. 오랜만에 기자답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든 일정과 메뉴 가격, 술은 몇 병을 먹었는지 말았는지를 깨알같이 보고한 것도 일종의 사명감 때문이었다.


장기자는 그렇게 사흘간 '미행 취재'를 하고 대기하던 와중에 부장의 연락을 받았다. 이쯤에서 그만하고, 사우나에서 쉬다가 저녁에 사무실 근처 한우 식당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장기자는 고생했다고 후배에게 맛있는 걸 사주려는 부장의 배려에 감사하며 식당으로 갔다. 식당 룸 안에서는 부장과 부구청장이 이미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장기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앉자마자 부장은 술부터 한 잔 가득 따라주며 부구청장에게 인사를 시켰다.


"임마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

"어우, 장기자 독하시더라고. 역시 부장님께서 교육을 제대로 시키셨나 봐요"

"임마가 이래 보여도 한 번 물면 안 놔. 독종이야, 독종"


장기자는 술을 몇 잔 받으면서도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부장과 부구청장은 꽤나 가까운 사이로 보였고, 대화에도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냥 사는 얘기에 정치 얘기와 소소한 구청 얘기가 다였다. 큰 웃음이 간간히 터질 만큼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장기자는 술기운이 올라 더욱 헷갈렸다. 그렇게 부구청장이 술에 취해 먼저 자리를 뜨고 장기자는 용기를 내 부장에게 물어봤다. 대체 무슨 일이었냐고. 부장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얘기했다.


"며칠 전에 부장들 몇 명하고 모임을 했는데, 새끼가 나를 말석에 앉히잖아. 내가 늦었는데 먼저 시작하고 말이야, 싸가지 없이"

"그게...답니까?"

"답니까? 임마, 기자는 핫바지로 보이면 죽어. 아직도 몰라? 확 조질 수 있는 걸 보여줘야, 취재원들이 벌벌 떤단 말이야"

"아..."

"너 임마 낼부터 구청 취재가 봐. 다 너 알아보고 모실 거고, 그리고 이번에 취재하는 법도 제대로 배웠잖아."

"네...그게"

"너 새끼, 어리바리한 줄 알았더니 이번에 잘했어, 아주. 오늘 기분 좋은데 한 잔 더 하러 가자. 다음에도 내가 물라고 하면 꽉 제대로 물어. 알겠지?"


장기자는 이를 한 번 꽉 깨물고 혀로 입안을 훑었다. 고기 찌꺼기가 가득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장기자는 얼른 양치가 하고 싶었다.


※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언론사나 기관과 무관합니다.


#미행 #취재 #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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