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직장인 모 기자 May 28. 2021

사회부 장 기자의 꼰대되기

저녁 8시가 막 지났을 때였다. 장기자가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술 때문이 아니었다. 메시지로 기자단 공지사항이 전해졌다. 


"꼭 밥 먹는데"


장기자는 메시지를 살폈다. 오후에 나온 보도자료 중 일부에서 사실과 다른 점이 있어서 정정한다는 내용에 일부 언론사가 추가 취재한 내용에 대해서도 담겨 있었고, 확인이 안 됐던 추가적인 사실들도 눈에 띄었다. 장기자는 '무시할까' 고민도 잠시 했다.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넘길만한 내용도 아니었다. 장기자의 머릿속에는 내일 아침 데스크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먹는 장면이 떠올랐다.


"OO일보에는 다 났는데, 우린 왜 빠진 거야?"


독자가 쉽게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도, 원래 '선수'들끼리는 한 줄이 있느냐, 없느냐가 매우 중요했다. 특히 이런 경향은 윗선으로 갈수록 심해졌다. 이들은 신문을 몇 개씩 펼쳐놓고 비교하며 읽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장기자는 이미 마감을 하고 저녁 약속 자리에 왔지만, 지면에 반영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장기자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제 입사가 1년 남짓된 2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또 걸었다. 또 받지 않았다. 장기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8시 밖에 안 됐는데,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장기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상대방이 읽었다는 표시가 뜨지 않았다. 장기자는 조금씩 초조해졌다. 더 늦으면 저녁 마감 맞추기가 어려울 수 있었다. 마침 노트북도 가져오지 않았던 장기자는 야간 당번이 누군지 알아봤다. 무서우면서도 연차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선배였다. 기사 수정을 부탁했다간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장기자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속도로 회사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계속 전화기를 확인했다. 후배는 아직 메시지에도 대답을 하거나 콜백을 하지 않았다.  장기자가 회사 정문에 다다랐을 무렵 전화벨이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하셨습니까?"

"너, 어디야"

"저요? 왜 그러십니까?"

"메시지 봤어?"

"못 봤는데요"

"자료 나왔잖아. 확인해야지. 지금 기사 좀 고쳐"

"지금요? 지금은 안 되는데..."

"왜"

"저... 수영장 이어서요"


후배가 말한 '수영장'이라는 단어가 동남아처럼 멀고 낯설게 느껴졌다. 장기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 있는 대답은 '알겠다'뿐이었다. 장기자는 서둘러 사무실에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기사를 수정하고선, 이미 퇴근한 데스크와 당번 선배에게 보고했다. 당번 선배는 기사를 갈아 끼우면서 장기자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왜 니가 하냐? 후배는 뭐하고"

"지금 뭐 하나 봐요. 안된다고 그래서요. 마침 저도 근처에 있었고"

"야, 애들 관리 안 하냐? 사람 좋은 척해서 인기 관리하면 땡이냐? 진짜 요즘 애들은 기자가 공무원인 줄 안다니까"


장기자는 순간적으로 열이 뻗쳤다. 온갖 쌍욕을 들으면서 때로는 뺨을 맞기도 했던 자신의 1년 차 기자생활을 돌아봤다. 주 6.5일은 기본이요, 매일 밤 10시까지 일하고 선배들에게 둘러싸여 술시중을 드는 게 일상이었다. 장기자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이나 울리고서 후배는 전화를 받았고, 장기자는 기다렸다는 듯 쏟아부었다.


"야, 새끼야. 기자가 만만해? 이딴 식으로 하려면 기자 때려치워. XX, 저녁 8시에 수영장이나 가면서 무슨 기자를 한다는 거야. IQ가 60이냐? 생각할 줄 몰라? 학교는 제대로 나왔어? 생각할수록 또라이네, 이거."


장기자가 쏟아부을 동안 후배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장기자는 기선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너, 새벽 12시까지 시말서 써서 나한테 보내고, 내일 아침 7시까지 경찰서 취재해서 사건 없는지 보고해라"


장기자는 후배의 대답을 듣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상대방이 "여보세요"라고 하기 전에 욕을 쏟아내고, 대답하기 전에 끊어라>. 누군가를 전화로 갈굴 때 쓰는 유용한 방식으로, 이 역시 다른 선배에게 당한 그대로였다. 후련한 속으로 자리로 돌아온 장기자는 고친 기사를 보다가 확인해야 할 부분을 발견하고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장기자입니다. 여쭤볼 게 있어서요"


장기자는 기분 좋게 취재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번 선배가 한마디 했다.


"넌 아직도 취재원한테 '님'이라고 하나?"

"네?"

"과장이면 과장, 사장이면 사장이지, 과장님은 또 뭐야. 니가 이러니까 애들이 니 말을 안 듣는 거 아니야"

"그래도 저보다 나이도 한 참 많고"

"에휴, 한심하다 한심해. 야, 나 때는 경찰서장이 뭐야, 기업 오너 방도 발로 문 차고 들어갔어. 너 같은 얼빠진 새끼들은 사명감도 없고, 자부심도 없고"

"죄송합니다"


선배의 갈굼에 장기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장기자는 더욱 언론인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후배들을 더욱 강하게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시간 장기자의 후배는 사표를 쓰고 있었다. 운전 중이어서 장기자의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받았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가 모든 얘기를 들었다. 후배와 여자 친구 모두에게 자괴감이 뭔지 느껴지게 만든 밤이었다.


※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언론사와 무관합니다.


#똥군기 #갑질 #폭언

이전 02화 사회부 장 기자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