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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 모 기자 May 21. 2021

사회부 장 기자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2년 전의 뺑소니 사망 사건이 이슈가 된 것은 피해 유족의 청와대 청원 때문이었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새벽 3시가 넘어 퇴근하는 막내딸이 외진 길가에서 승용차에 치어 숨졌는데, 여태껏 용의 차량조차 발견하지 못한 미제 사고건이었다. 청원인은 하늘로 간 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진한 경찰 수사에 대한 화를 잔뜩 담은 글을 올렸고, 이 글이 재연 방송을 타 이슈가 되더니 포털을 도배하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네티즌 수사대까지 활동한 것이었다.


한 발 늦게 사건 취재에 합류한 개별 언론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부랴부랴 피해 아버지와 당시 수사 경찰, 유족의 지인들을 인터뷰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기사들을 '단독'이라는 머리말로 장식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려댔다.


장기자도 덩달아 바빠진 기자 중 한 명이었다. 본인의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아직도 파악 못했냐는 질타와 함께, "뭐 새로운 거 없냐"는 사회부장과 데스크의 '쪼임'에 하루 종일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2년 전 일이라 취재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었다. 현장을 돌고, 경찰서를 헤집고, 유족도 만나봤지만 별다른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비슷한 기사를 써봐야 회사는 기사를 실어주지도 않았고, 조회수에도 도움이 안 됐다. 장기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모니터링하고, 직접 '제보 바란다'는 글도 올렸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날 오후도 마찬가지였다. 장기자는 기대 없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고 있었는데, 장기자의 마우스 커서를 사로잡은 글 하나가 있었다. '나 그 사고 본 거 같은데'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장기자는 어딘가에 끌린 듯 재빠르게 클릭해 글을 읽었다. '새벽 3시쯤 사건 현장을 지나고 있었는데 희끄무리한 차가 나를 앞질러서 슝 지나가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는 내용이었다. 말미에는 '지금은 조금 떨어진 OO동 상가 쪽으로 주로 배달을 하고 있지만, 그 도로(현장)는 원래 차들이 쌩쌩 다녀서 위험했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었다. 장기자는 이를 보고선 '작성자가 글에 신빙성을 더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장기자는 얼른 글 내용을 캡처하고, 작성자 정보를 찾아봤다. 없었다. 쪽지라도 보내서 접촉을 시도하려고 했다. 쪽지 받기도 거부 상태였다. 장기자는 다시 글을 꼼꼼히 읽어보려고 게시판을 새로고침 했다. 그런데 글도 없었다. 작성자가 잠깐 올렸다가 지운 모양이었다. 장기자는 헷갈렸다. 거짓말이어서 지웠는지, 정말 진짜여서 귀찮아질까봐 지웠는지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OO동 상가에 배달한다'는 말 하나만 갖고선 작성자를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였다. 장기자가 인터넷 지도로 OO동을 검색하고 포기하려던 것도 그 이유였다. 면적도 면적인데, 점포 개수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사회부장이었다.


"뭐 없어?"

"아, 그게..."

"새끼야, 하루 종일 뭐하는 거야. 포털에 뜬 건 봤어? 피해자 초등학교 때 은사까지 찾아가서 만나는 마당에 넌 뭐하고 있는 거야. 너, 솔직히 말해봐. 지금 놀고 있지. 하기 싫어서 배 째는 거지. 그냥 내근할래? 그럴까?"

"그게, 사실 제가 조금 전에 익명 제보를 받았는데요"


장기자는 쪼임에 당하다 못해 과장을 보태 거짓말을 해버렸다. 익명의 목격자 제보를 받았고,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금 취재 중이지만 쉽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방어막과 함께. 장기자와 마찬가지로 국장에게 시달리던 부장은 맥락에 대한 확인 없이 지시부터 내렸다.


"그러면 당장 움직여야지, 뭐하는 거야. 너 딱 하루 준다. 빨리 가서 찾아내."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를 끊은 장기 자는 어디서 어떻게 접근할지 막막했다. '빨리 찾아내'라는 부장의 지시가 저주처럼 장기자를 뒤덮어 숨을 못 쉴 정도였다. 어쩌자고 그런 과장을 했는지 후회가 됐다. 밑밥은 깔아놨다고 하지만 지금 와서 취재가 어렵다는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장기자는 다시 OO동 지도를 인터넷에서 열어 크게 출력했다. 종이를 책상에 펼치고선, 우선 새벽에 배달을 받을만한 가게를 추렸다. 편의점과 제과점 정도까지 최소한 양심에 찔리지 않을 정도로 범위를 좁히고 지도에 빨간 펜으로 체크를 했다. 업종과 가게 이름, 연락처를 아래 빼곡히 적고 다시 검색해 업주를 포함한 주요 정보들을 파악했다. 그런 다음 메모가 빽빽하게 적힌 지도를 위로, 옆으로 두 번 접었다. 다시 펼치니 가운데를 중심으로 구역 4개가 만들어졌다. 이제 남은 건 이 가게들을 모두 도는 일이었다.


장기자는 해가 지자 곧바로 OO동으로 가 지도에 하나씩 체크를 해가며 발품을 팔았다. 무조건 찾아가 질문부터 던졌고, 문을 닫거나 아르바이트라면 사장님이나 배달업체 담당자 연락처를 받아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전혀 단서가 될만한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지도의 위에서부터 가게 하나 씩, 구역까지 하나씩 지워가며 부장이 준 이틀 간의 '자유 취재'가 두 시간가량 남았을 때엔 편의점 한 곳만이 남아있었다. 


장기자는 편의점으로 서둘러 차를 몰고 갔다. 아르바이트생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반응으로 장기자를 맞았다. 한가한 새벽 시간에 귀찮게 하지 말라는 투였다. 


"이따 새벽 배송 오는데 알아서 기다리시던가요. 근데 아무것도 안 사실 거예요?"


장기자는 고민했다. 여기서 접을 것인가, 어차피 새벽이 됐으니 조금 더 해볼 것인가. 장기자는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을 때까지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워낙 발품을 많이 팔고 허기진 터라 라면과 김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장기자는 딱 커피 하나만 더 마시기로 했다. 새벽에 졸음운전이라도 했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따뜻한 커피를 거의 다 마셔갈 때쯤 멀리서 트럭 한 대가 편의점 앞에 서더니 무뚝뚝하게 생긴 중년 남성 한 명이 내렸다. 장기자는 왠지 감이 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감이 왔다. 이제 어떻게 다가가느냐이다. 장기자는 배송을 다 마치고 기사가 차에 타려는 순간에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선 자기소개도 없이 질문부터 던졌다.


"혹시 사고 차량 색깔 기억나세요??"

"네?"

"희끄무리한 색깔이 흰색 맞죠?"

"아니, 그게..."


배달 기사는 2초 정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런데 누구신데요"


장기자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글을 쓴 사람이 아니라면, 대뜸 '무슨 소리냐'라고 맞받아쳤어야 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아니, 그게"라고 하다가 뒤늦게 '누구냐'고 물었다. 장기자는 배달 기사의 허를 찌른 자신의 날카로운 질문 실력을 스스로 칭찬했다. 이제 조금씩 조였다 풀어가면서 목격담을 들을 차례다.


"△△ 뉴스 장기자입니다. 인터넷에 올리신 글 보고 이렇게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정말 한 말씀만 들을 수 있을까요?"

"아, 어떻게 알고 찾아왔대. 그런데, 그게 정확하지가 않아요. 그날이 그날인지도 모르고"

"저희가 다 따로 확인을 할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되고요. 그 차가 흰색, 맞죠?"

"흰색이라기보다는 좀 희끄무리하긴 했는데, 나도 달리고 있었고"

"본인을 앞지르셨다고 썼는데, 그럼 엄청 과속한 거네요?"

"모르죠"

"평소에 몇 키로 정도로 달리세요? 80? 100?"

"그때그때 다른데, 그렇게 달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퍽 소리가 났다고 쓰셨잖아요. 사람 친 소리 같았나요?"

"모르죠. 사람일 수도 있고, 고라니 일수도 있고, 쓰레기 밟은 걸 수도 있잖아요"

"사람이 절대 아닐 가능성도 있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게..."

"혹시 블랙박스 혹시 있으세요?"

"없죠, 그게 2년 전인데"


장기자는 이런 식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기사는 10분 정도 후에 다른 곳에 배달을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장기자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취재 보고를 작성했고, 부장의 승인 하에 아침 일찍 포털에 기사를 올렸다. 


[단독] '외동딸 뺑소니' 목격자 "흰 승용차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둔탁한 파열음에 깜짝"

"흰색 차가 갑자기 저를 추월하더니, 퍽하는 엄청 둔탁한 사고 소리가 나더라고요"

전 국민을 슬픔에 빠뜨린 이른바 '외동딸 뺑소니 사건'의 목격자를 △△뉴스가 22일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사고 당일.......(중략) 한편 경찰은 "국민 여론을 고려해 다각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장기자는 단독 기사를 올리고 기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한 건 했다'는 생각과 부장의 칭찬에 밤샘 취재의 보람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장기자는 뿌듯한 마음으로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고, 기사의 포털 조회수는 그보다 빠르게 치솟았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사건/사고나 언론사와 무관합니다.


#뺑소니 #목격자 #넘겨짚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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