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는 달리는 차 안에서 관련 기사를 끊임없이 검색했다. 5명 넘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건설현장 대형 화재 속보가 뜬 지 2시간 정도가 지났다. 속속 피해자 신원이 나오고 있었다. 장기자는 병원을 맡게 됐다. 시신들과 부상자들은 사고 현장 인근 K병원으로 후송되고 있었다.
"야, 빨리 가라. 알겠지? 유족들이 경황 없고 놀랐을 때, 그때 생생한 멘트를 받으란 말이야."
장기자를 병원으로 보내던 팀장의 지시였다. 장기자도 이미 알고 있었다. 비단 사고 유족이 아니더라도, 무슨 인터뷰든 기자들을 거칠 수록 내용의 신선도는 떨어진다. 인터뷰를 하는 기자가 의욕적으로 물어봐도,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이 심드렁하면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한 장기자는 영안실 쪽으로 냅다 뛰어 들어갔다.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사고하고 관계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합동 빈소도 아직 차려지기 전이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장기자는 쾌재를 불렀다. 주변을 날카롭게 살펴보며, 사고 피해 유족인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화재 사고..."
"네? 아닌데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잘못 넘겨 짚기를 몇 번째,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데 복도 끝 쪽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장기자는 조금씩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서 방송국 TKS 카메라가 보였다. 장기자와 입사 동기 한기자가 피해 유족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혹시 아침에도 인사 나누셨나요? 어떤 말씀하신 게 있으셨나요?"
"모르겠어요. 지금 아무 기억도 없고, 지금 가야 해서요"
장기자가 다가가자, 한기자는 서둘러 인터뷰를 마쳤다. 장기자는 잠깐 헷갈렸다. 유족을 따라가야 할지, 한기자를 따라가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는 사이 유족은 복도 끝 문 안쪽으로 들어갔고, 장기자의 귀에 한기자가 촬영기자와 나누는 얘기가 들렸다.
"아까 눈물 흐르는 거 찍었지?"
"그럼요. 제가 기가 막히게 클로즈업 땡겼죠"
뭔가 사연이 있는 유족이 틀림없었다. 장기자는 서둘러 한기자 뒤를 쫓았다.
"한 기자, 한 기자. 누구였어?"
"어? 아, 피해자 가족"
"부인? 어머님? 나 연락처 토스 좀 해줘"
한기자는 대답 대신 촬영기자와 서둘러 떠나려 했다. 장기자는 난감했다. 물 먹기 싫으면, 물타기라도 해야 했다.
"한 번만. 난 방송도 아니잖아. 내일 신문에 실릴 건데, 무슨 상관있어"
"나 지금 마감 때문에. 응? 연락할게"
그때 멀리서 TKS의 경쟁사인 BMS 카메라와 기자가 들어오는 모습이 장기자의 눈에 띄었다. 장기자는 한기자의 팔을 붙잡았다.
"BMS 오잖아. 연락처 주면 나 진짜 조용히 가서 연락할게. 응?"
경쟁사 BMS의 기자를 본 한기자는 핸드폰 최신통화 목록을 살짝 보여줬다. 장기자는 얼른 자신의 핸드폰에 번호를 찍었다. 한기자는 BMS 기자까지 따라 붙을까 얼른 자리를 떴다. 장기자 역시 BMS를 못 본 척 병원 복도 구석으로 가며 한기자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지 않았다. 또 걸었다. 받지 않았다. 장기자는 장문의 문자까지 남겼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냐'로 시작해, 억울하신 부분 모두 듣고 기사에 담아 드리겠다'며 '꼭 연락 부탁드린다'고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역시 답은 없었다. 속이 타던 장기자는 멀리 BMS뿐 아니라 다른 기자들까지 10여 명이 서성이는 모습을 봤다. 장기자는 짐짓 모른 척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유족은 좀 만나봤어요?"
"아직 수습 중이라고, 일단은 유족들 오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린다는데."
잠깐 고민하던 장기자는 슬쩍 한 마디를 흘렸다.
"아까 TKS는 멘트 따서 가는 것 같던데, 이상하네"
"TKS가 땄다고요? 정말요?"
장기자의 한 마디에 방송사들을 비롯한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자칫 TKS 단독으로 유족 인터뷰가 나갈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유족 어딨는데?"
"몰라요. 번호를 받긴 했는데, 안 받으시네. 지금 뭐 경황이 있겠어요?"
"에이, 그러면 안 되지. 번호 줘봐요"
뉴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BMS 기자를 중심으로 기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하고 몇 명 전화 일단 해봅시다. 계속 하고 문자도 보내면 무슨 말씀이라도 있겠지"
"저는 병원 홍보팀에 얘기할게요. 누구는 단독 주고, 여기 다 물먹으라는 거야, 뭐야"
장기자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기자들을 지켜봤다. 절반은 유족에게 전화를 계속 돌아가면서 걸었고, 절반은 홍보팀장부터 실무자까지 나눠서 전화를 걸며 협박 어조의 부탁을 늘어놓았다.
"팀장님. 아니, 여기 다 기다리고 있는 거 아시면서 이렇게 대응을 안 해주시면 어떻게 해요. 병원 늑장 대응이라고 우리 다 써요?"
그렇게 전화를 돌리고 기다리길 30여 분. 홍보팀장이 유족 2명을 데리고 병원 로비로 나왔다. 유족들은 눈물 가득한 슬픈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다. 기자들은 그제서야 짐짓 포토라인을 세우고, TKS 기자가 대표로 마이크를 들며 몸소 질서 확립에 나섰다.
"자자, 유족 분께서 지금 경황 없으실 테니까, 딱 30분만 하는 거로 하고요. 질문은 제가 대표로 하겠습니다."
이윽고 카메라 빨간 불이 들어오고 기자들은 '피해자하고 어떤 관계인지', '사망 확인 했는지', '현장 책임자하고 갈등은 없었는지' 등 정신이 없는 유족이 제대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부터 눈물을 뽑아내기 위한 '피해자하고의 추억'까지 질문이 쏟아졌다. 기자회견 공지를 받고 헐레벌떡 현장에 온 BMS 한기자는 유족의 대답을 들으며 장기자를 쏘아봤다. 장기자는 자신도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하지만 타들어가던 속마음은 뿌듯한 감정으로 가득했다.
※ 이 글은 픽션입니다. 특정 언론사나 사고, 병원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