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보나로마] 10. 로마 근교 여행 1 - 아시시(Assisi)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로마에서 한 달간 머무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은 근교 도시를 방문하기로 했다. 로마에서 1-2시간 안이면 갈 수 있는 멋진 곳들이 많아 이것저것 정보를 찾던 차에 우연히 아시시의 노을 사진을 보게 되었다. 2-3시간은 잡아야 갈 수 있는 곳(이미 근교는 아닌-)이라 당일치기 여행지로 괜찮을까 싶었지만, 벌써 나의 머릿속에 노을을 배경으로 고즈넉한 그곳의 거리를 따라 걷는 감성 있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에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순례자들의 성지라는 것 말고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뭐 그게 중요한가. 그곳에 머물러 보는 게 중요하지.
3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도시에는 세차게 바람이 불고 있었다. 패딩과 목도리, 모자, 핫팩 등으로 중무장했으나 몸이 금세 꽁꽁 얼어붙는다. 바람에 날아가는 모자를 허둥지둥 쫓아다니는 것도 여러 차례였다. 그런데 손이 시려 벌벌 떨면서도 계속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있더라. 분명 아까 본 풍경이고, 이미 내 사진첩에 저장해 놓은 풍경인데도 말이다.
아시시의 가장 큰 매력은 고즈넉하고 소박한 골목길 풍경에 있다. 하늘은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랗고 도시 전체는 고요하다. 잊을 때쯤 되면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곳곳에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낡은 벽돌 건물들 틈으로 보이는 햇살을 따라가다 보면 터벅터벅 내딛는 나의 발걸음 소리조차 운치 있게 들린다. 아무 생각 없이 구석구석을 쏘다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고요하고 경건한 이 도시가 관광객들로 가득 차는 것은 어째 상상하기 어렵지만, 1월은 비수기라 특히나 더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영업 중인 상점도, 문이 열린 레스토랑도 많지 않았다. 그중 평이 괜찮은 Trattoria Pallotta Assisi에서 트러플 파스타를 먹었다. 현지인들도 관광객들도 많았던 곳으로 파스타도 함께 곁들인 지역 와인도 나쁘지 않았는데, 디저트로 주문했던 초콜릿 무스가 함흥차사였다. 어디까지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매너인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물으니 주문을 받았던 할머니께서 주방에 전달하는 것을 깜박 잊은 모양이었다. 따님이 여러 차례 사과하며 티라미수도 서비스로 주겠다고 했으나 왠지 내키지 않아 그냥 일어섰다. 나올 때 할머니와 따님이 너무 투닥거리셔서 돌아서서 여러 차례 괜찮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낯익은 모녀의 모습이다.
아시시를 대표하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가장 마지막에 들렀다. 모든 순례자들이 들르고 싶어 한다는 곳이다. 탁 트인 곳에 우뚝 솟아 있는 성당 외관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멋졌는데, 성당 내부는 더 압도적이라 정말 감탄만 나왔다. 여기저기에 ’Silence'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안내인들이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을 적극적으로 제지했다. 인터넷조차 잘 터지지 않는 이곳은 그래서 내가 가본 그 어떠한 성당보다 '성당답다'. 머무는 것만으로도 경건한 느낌을 전해지는 곳. 잠시 멍하니 넋을 놓고 고개를 들어 프레스코화들을 감상했다. 스테인글라스도 아름답고, 조토의 그림 속 금빛들은 감동적이었다. 그곳에서는 종교 무지렁이인 나조차도 한동안 내가 아닌 그를 생각했다. 프란체스코 성인, 생각한 대로 살아간 이는 얼마나 대단한가. 전날 방문했던 '성 베드로 성당'의 매력과는 사뭇 대조적인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앞은 아시시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반드시 내 눈으로 보고 가야 할 풍경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해서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다 보니 그 의욕이 삽시간에 꺾였다. 조그마한 바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와인을 한잔 마셨다는 낭만 그득한 블로그 후기를 본 기억이 났으나 그 바를 찾아다니자니 으슬으슬한 몸 상태가 영 불길하다. 패딩을 꼭꼭 여미고 목도리로 얼굴을 숨긴 후 다음에 아시시를 찾아올 이유를 하나쯤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내려왔다.
<아시시(Assisi) 여행 정보> - 2025년 1월 기준
[이동] 로마 떼르미니(Roma Termini) - 페루자 지역의 아시시(Assisi)
- 발권 : 트랜이탈리아 앱 또는 기차역의 자동발권기 등. 요금은 편도 13.30유로.
나는 자동발권기를 이용했으며, 영어로 바꿔 두고 천천히 해보면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 굳이 도와주겠다며 옆에 붙어서는 사람들도 있으니 주의할 것.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이 높아지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도와주고 난 후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나처럼 그냥 “No, Thanks”를 단호하게 외치는 편이 낫다.
- 열차 시간표 : 로마와 아시시를 오가는 열차는 거의 1시간에 한 대꼴로 있다. 단 직행과 완행이 섞여 있으니 주의할 것.
당일치기 여행객인 나는 오전에 출발해야 했으므로 7시 35분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환승까지 고려한다면 아침에 잠을 좀 더 잘 수 있었겠지만, 이동시간의 변수가 더 발생할 확률이 높은 건 굳이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보통 2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데, 난 갈 때는 2시간 49분, 올 때는 3시간이 걸렸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는 로마 근교가 아니다. ^-^;;) 마지막 사진은 트랜잇 어플의 캡처 화면이다. Tranit은 기차 시간을 확인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빨간색 표시를 보면 알겠지만, 1분이라도 연착되면 저렇게 표시된다. 돌아오는 차편은 상황을 봐서 나중에 살 것. 난 예상보다 빨리 내려와 4시 27분 차를 타고 돌아왔다.
- 검표 : 현장 발매 티켓(실물 티켓)의 경우 반드시 검표를 할 것. 검표는 탑승전 플랫폼 입구에 있는 녹색 검표기에 티켓을 넣어 펀칭을 해둬야 한다는 뜻.
처음에는 하나의 티켓으로 여러 번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이미 티켓에 출발시간, 도착시간, QR이 모두 인쇄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히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잠깐 머무는 내가 이해가 안 가면 뭐 어쩌겠는가. 그들만의 질서와 맥락, 방식이 있는 건데... 그리고 티켓을 소지하고 제대로 된 열차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펀칭이 없다는 이유로 벌금을 무는 사례가 여전히 속출하고 있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2년 전쯤에는 어플로 예매한 사람들에게도 체크인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검표가 되지 않은 걸로 간주하고 벌금을 물렸다고 하던데, 지금은 사라졌다고 한다.) 때로는 기차 안에서 티켓을 검사하면서 여권을 요구하여 미소지자에게 벌금을 물리기도 하는 모양. 벌금은 현금으로만 요구하여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게 만들지만, 룰을 내세우며 벌금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여행자가 제대로 된 항의를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조심할 것. 난 최소한 도시 간 이동을 할 때는 꼭 여권을 소지했다.
- 출발 플랫폼 : 아시시로 가는 기차는 대부분 2est에서 탑승함.
아닌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하던데, 대부분은 안쪽 깊숙하게 위치한 플랫폼에서 탑승한다. 2est는 1,2번 플랫폼에서 동쪽으로 더 가라는 의미로 한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나의 경우 기차역에 일찍 도착해 맥모닝을 먹고 있으니 출발 20분 전 탑승플랫폼이 전광판에 고지되었다. 간혹 더 늦게 뜨기도 하니 1,2번 플랫폼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될 듯.
[이동] 아시시(Assisi) 내
- 시내버스 티켓 구입 : 아시시 역사 안 Bar에서 구매 가능. 1장당 1.3유로. 다시 역으로 돌아올 것을 고려하여 2장 구입할 것.
- 타는 곳 : 역 앞 빨간 표지판 앞.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으나 구글이 더 정확하니 참고용으로만 볼 것.
- 하차 장소 : 맨 마지막 정류장인 Piazza Matteotti에서 하차.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광스팟을 먼저 간 후 나머지는 천천히 내려오면서 구경하면 됨.
[아시시 여행 동선]
로카 마조레(Rocca Maggiore) -> 산 루피노 성당(Cattedrale de San Rufino) -> 산타 키아라 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 -> 코뮤네광장(Piazza del Comune) -> 성 프란체스코 성당(Basilica Papale e Sacro Convento di San)
* 로카 마조레(Rocca Maggiore)
: 12세기까지 중세 요새로 쓰였던 곳. 그래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내부 구경은 유료임
* 산 루피노 성당(Cattedrale de San Rufino), 산타 키아라 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
: 산 루피노 성당은 아시시의 두오모로 성 프란체스코와 성녀 키아라가 세례를 받은 곳으로 유명하고, 산타 키아라 성당은 성녀 키아라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아시시의 성당은 외관이 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창이 작고 외벽이 두꺼운 로마네스크 양식이 기초가 되어 그렇다고 한다. 산 루피노 성당은 장미 문양의 창이 세 개 있고, 산타 키아라 성당은 본건물을 지지하기 위해 튼튼한 부벽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 코뮤네광장(Piazza del Comune)
: 아시시의 구시가지 주요 광장으로 각종 상점들이나 레스토랑이 밀집된 곳이다. 시청인 프리오리 궁전, 세 사자의 분수(내가 갔을 땐 공사 중이었다.), 미네르바 신전, 시민의 탑 등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네르바 신전은 16세기에 성당으로 개조된 곳으로, 이후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되기도 해 이전에 봤던 성당들과 달리 내부가 굉장히 화려하다.
* 성 프란체스코 성당(Basilica Papale e Sacro Convento di San)
프란체스코 성인의 묘가 있는 성당이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는 명소. 상층, 하층, 지하층으로 나뉘어 있으며, 치마부에, 조토 등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남긴 명작들과 그림 성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의미가 깊다.
* 여행 도중 만난 궁금증 : 대체 저 남자는 누구인가
산타 루피노 성당에는 한 남자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그를 향한 촛불들이 켜져 있다. 그리고 관광 스팟을 돌아다닐 때마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그는 관광상품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복장으로 봐서는 꽤나 최근의 인물인 것 같아 혼자 궁금해하다가 챗gpt에게 물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