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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한달살기] 소매치기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

[사우보나로마] 7. 이탈리아 안전 여행 꿀팁과 사용한 가방

by 가름끈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로마 한달살기를 결정한 후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이탈리아의 악명 높은 소매치기이다. 적어도 도난 문제만큼은 비교적 안전하다 자부하는 한국에서도 덜렁거리는 성격 탓에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데다가 모든 가이드북이나 여행 후기들에서 입을 모아 조심해라를 외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 글은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온 후 남기는 글이다. 고리타분한 소리같이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마인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여러 차례 해외여행을 갔지만, 실제 소매치기를 당했던 여행은 십수 년 전 갔던 태국 여행이 유일했다. 그때는 정말 심신이 지쳐 도망치듯 홀로 떠났던 여행이라 넋을 빼두고 휘적휘적 타국의 거리를 쏘다녔다. 시장에서 가방 아래쪽을 칼로 베어 지갑을 빼 간 줄도 모르고 한참을 걷기도 했고, 상심한 마음을 달래고자 나섰던 길에 오토바이 날치기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어 소매치기에 대한 경계심이 옅어졌기 때문에 겪은 일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소매치기의 존재를 잊지 않고 조심하려는 자세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소매치기에 맞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내가 나의 물건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히 전달하라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원칙이다. 가방을 무조건 앞쪽으로 메고, 백팩이나 에코백 등은 가급적 쓰지 말라는 조언은 나의 가방을 항상 나의 시야에 두고 있음을 드러내라는 뜻이다- 소매치기 경험담을 들어보면 언제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란 듯이 지갑이나 핸드폰을 케이블로 가방에 연결해 둔다든지 도난 방지를 위해 옷핀이나 자물쇠로 잠근다든지 하는 방법들은 내 물건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그만큼 경계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가방을 여러 개 가지고 다니는 것도 금물. 신경 써야 할 것이 늘어난다. 가급적이면 크로스백 하나에 다 넣어 앞으로 매자.

두 번째 원칙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를 한 달간 쏘다니다 보니 확실히 늘 사람들로 붐비는 곳들이 있다. 여행자들은 무조건 들르게 되는 떼르미니 역이나 성베드로 성당이나 멋진 조각상들이 서 있는 광장 등 입장료를 내지 않는 관광 명소들은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심지어는 몸으로 밀리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그런 순간들이 위험하다. 나는 트래비 분수가 그랬는데,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들 대부분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포즈를 취하느라 자신의 소지품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있기 때문에 소매치기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제공되는 곳이다. 오며 가며 지나친 것을 제외하고 분수 앞에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냈던 게 세 번쯤인데 낮밤 가릴 것 없이 그랬다. 내 머릿속에 도난 조심 경보가 계속 울렸던 순간들이다. 그럴 때는 무리하게 섞이지 말고 잠시 빠져나와 젤라또를 먹든 커피 한 잔을 하든 인파를 피하고 사람들의 동태를 살핀 후 적절한 타이밍을 찾기를 권한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장관이니까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도 여행의 일부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입장료를 지불하는 관광지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소매치기를 하러 돈을 지불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주 드무니까. 단, 지하철이나 버스는 긴장해야 한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는 우리나라의 만원철처럼 사람들 사이에 끼어진 채로 이동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하듯이 휴대폰을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는 건 매우 위험하다.



< 실제 여행에서 활용한 아이템 >


각자 여행 기간 및 스타일에 따라 가져가는 가방의 종류나 개수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난 주로 캐주얼을 입는 여성이고 여행지에서는 평소보다 더 편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타입임을 먼저 밝혀 둔다.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는 명품백은 절대 해외여행에 챙기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돈 좀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건 절대 사양이다. 흠집 없이 무사히 돌아오기도 쉽지 않은데, 굳이 뭐 하려고. 명품이 있어야만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항상 가벼운 크로스백을 메인으로 쓰고, 힙색이나 백팩 때로는 에코백도 함께 사용하는 편이다. 아래 언급된 아이템들은 당연히 모두 내돈내산이다.



1) 질앤스튜어트 보우백(발레코어 무드 호보크로스백)



작년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면서 캉골의 코듀로이 호보 크로스백(3926)을 샀다. 크로스끈과 어깨끈이 모두 있으며 사이즈도 적당해 활용도가 높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퍼와 끈을 카라비너로 연결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 안전에도 신경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여행지에 가서는 사이즈가 작아서 자주 들지 못했다.

유럽의 겨울은 우기이다. 수시로 비가 내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기도 한다. 우산과 선글라스가 모두 필요하다는 말씀-(물론 여행 막바지에 소소한 비는 그냥 맞고 다니기도 했다만-) 거기다 필수템인 핸드폰, 지갑, 보조배터리, 에어팟, 물티슈, 화장품 파우치, 이북리더기 등을 챙기려면 가방의 크기가 어느 정도는 확보되어야 한다. 포르투갈에서 사용한 캉골 가방은 늘 물건들로 꽉 차 있어 무언가를 꺼내려 가방을 뒤적거리는 일이 너무 불편했다. 포르투갈은 유럽 중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나라에 속하는 편이라(실제 그랬다- I love Portugal) 결국 그냥 백팩을 메고 다녔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메인으로 쓸 크로스 가방을 새로 구입해야 했는데, 캉골 가방을 교훈 삼아 사이즈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나의 필수템을 다 넣고도 조금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가벼워야 하고. 색상은 무난하고 때탄 것도 티 안나는 블랙으로- 오랜 서치 끝에 찾아낸 가방은 질앤스튜어트 보우백이었다. 가격은 10만 원 정도. 끈 길이는 조절 가능하다.



이번 여행에서 아주 잘 쓰다 왔고 아마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잘 쓰게 될 가방이다. 위 사진처럼 내부 한쪽에는 지퍼 포켓이 있고, 다른 쪽에는 두 개로 분리된 주머니가 있다. 그날그날 옷에 따라 길이를 짧게 해서 어깨에 걸치기도 하고, 길게 해서 크로스백으로도 매기도 했다. 외출 기본 물품들을 불편함 없이 모두 잘 담을 수 있는 사이즈라 여행 중 가장 많이 들었던 가방이다. 디자인 자체가 굴곡이 좀 있는데다가 양쪽 옆면에 리본이 달려 귀여운 느낌이 있다.(리본끈은 잘 풀리는 편이고, 처음처럼 예쁘게 다시 묶긴 쉽지 않다.) 가격 대비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면에서 적당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았다.



도난에 조심해야 한다 싶은 코스를 가는 날에는 위의 사진처럼 해서 다녔다. 가방 안 라벨에 카라비너를 하나 끼운 후 거기에 저런 스프링들을 달고 휴대폰과 지갑을 연결했다. 사진 속 명찰표(?) 같은 것은 휴대폰 케이스에 넣어서 스프링과 연결하는 것. 다이소에 스프링과 세트로 판다. 빼거나 끼우는 게 불편하지 않아 필요에 따라 편하게 사용했다.



2) 반스 미니 힙색(MN MINI WARD CR 남녀공용 힙색)



힙색 치고는 사이즈가 작은 편. 가로 27cm X 세로 13cm X 폭 10cm 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가격은 2만 원대 초반. 많은 물건을 담을 수는 없어 아주 간단한 일정을 하러 나가거나 동네에서 돌아다닐 때 썼던 서브 가방이다. 공항으로 오고 갈 때는 큰 덩치의 짐들이 많으니까 절대 분실하면 안 되는 지갑이나 여권 등을 보관하기 위해 매기도 했다. 반스 특유의 패턴이 너무 튀지 않는 포인트가 되어 줘서 만족스러웠다. 아래 사진을 보면 포켓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도난 방지를 위해 지갑이나 핸드폰 연결 스프링을 걸고 싶다면 저렇게 두꺼운 솔기(?) 부분에 옷핀을 걸어 쓰면 된다.




3) 마르헨제이 젬마백 호피 에코백



지퍼가 달린 호피 에코백을 찾아 헤매다가 낙점된 마르헨제이 에코백이다. 장시간 비행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몰아넣을 수 있고 쇼핑을 많이 할 때는 장바구니 역할도 해줄 수 있는 가방이 필요해서 구입했다. 다양한 사이즈와 재질의 에코백이 많지만, 내가 집중했던 것은 지퍼 유무였다. 이 에코백은 지퍼가 있어 안전에 대한 걱정이 덜했지만, 재질이 두껍고 뻣뻣한 편이라 에코백 특유의 자연스럽게 편하게 늘어지는 멋스러움은 없다.조금 무거운 느낌도 들고. 안에 주머니가 하나도 없어 필요한 물건을 찾을 때마다 아주 부산스러워졌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묵었던 에어비앤비에 장바구니로 쓸만한 에코백이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출국과 귀국 시에만 사용했다. 다음 여행에서 사용하지는 않을 듯- 가격은 4만 원대 후반.




리스본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성 안토니우 성당'은 여행 중 도난 사고를 겪는 여행자들이 기도를 드리러 들르는 성당으로 유명하다. 성 안토니우 성인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작은 열쇠고리를 사서 나도 몇 개 챙기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선물했다. 그때는 내 인생에 비어 있는 소중한 것들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구입했던 건데, 어느새 그런 낭만적인 이유는 사라지고 해외여행 시 소매치기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열심히 지니고 다니게 되었다. 모든 일에는 운이 따라야 하지만, 그렇다고 운이나 기도에만 미뤄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에 나에게 주어지는 운을 믿어 보자.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어떤 여행에서든 무사 귀환하시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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