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로마한달살기] 교통권은 장기여행자의 필수품

[사우보나로마] 5. 현지인처럼 교통카드 써 보기

by 가름끈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로마에서 맞이한 첫 아침. 어제 밤늦게 도착한 터라 지금 내가 로마에 있다는 사실이 잘 실감 나지 않았다. 이곳까지 와서 침대 위에서 밍기적대고 싶지는 않아 잘 차려입고 집을 나서려는데, 내내 나를 불안하게 했던 그날이 찾아왔다. 난 그 기간에 통증이 심한 편이라 며칠간은 제대로 된 여행은 하기 어려울 것 같아 잠시 침울해졌지만, 뭐 어떠랴. 어차피 장기 여행자의 여행은 느긋하게 동네 탐방부터 시작하는 법이라고. 오늘은 어슬렁 모드다.


한낮의 동네는 아주 조용했다. 주민들은 크리스마스부터 긴 휴가를 떠난 터라 거리에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열려 있는 가게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참고로 관광객들로 붐비는 지역들은 이 기간에도 여전히 인산인해다.) 아쉽지만 줄리아가 소개해 준 동네 맛집 방문도 나중으로 미뤄 두고, 집에서 3분 거리에 위치한 마트 'Elite'로 향했다. 당장의 마실 물과 허기를 채울 음식이 필요했다.


집 앞 마트 "Elite"- 질 좋은 식자재들이 많다


큼지막한 빵과 치즈들, 형형색색의 과일, 다양한 와인 리스트와 낯설고 신기한 제품들- 이국의 마트 구경은 언제나 즐겁다. 든든한 쇼핑 메이트 '구글 사진 번역'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구입한 먹거리를 넣어 두고 이번에는 정기권 교통카드를 구입하러 길을 나섰다. 로마 우리집은 떼르미니 역에서 지하철 6코스 거리에 있다. 로마의 핵심 관광지는 거의 떼르미니 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주로 그 주변에서 묵는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곳은 한 달을 머무르기에는 너무 비싸고 번잡하다. 로마는 지하철, 버스 그리고 전차까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 조금 떨어진 곳도 괜찮다. 그 대신 로마 구석구석을 편하게 쏘다닐 수 있도록 지하철, 버스, 트램 모두 다 이용 가능한 교통정기권을 구입하기로 했다.


물론 지하철을 탈 때 국내에서처럼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또는 트래블 카드)로 찍고 타는 것도 가능하다. 작년 포르투갈 여행에서는 편리해진 세상에 감탄하며 가지고 있는 트래블월렛 카드로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와 정산해 보니 푼돈같이 느껴지던 교통비도 쌓이다 보면 큰 금액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습관처럼 차 타기 애매한 거리는 걸어 다니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면 힘들어도 여태 걸어온 게 아까워져서 참고 계속 걷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집에 돌아가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대체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건가 스스로에게 의아해지곤 했다. 차라리 정액권을 사서 주저 없이 막 타고 다니는 게 덜 지치면서도 더 경제적인 방법이었겠다 싶었다.


또 얼마나 멋진가. 종이 티켓을 내미는 게 아니라 현지인처럼 정기 카드를 찍고 타니는 거 말이다.


이런 간판을 찾아보아요~

교통권을 구매할 때는 지하철 역사 자판기를 이용할 수도 있고, 시내의 타바끼에서 살 수도 있다. 타바끼(Tabacchi)는 일종의 담배 가게인데, 간단한 물건들도 팔고 교통 티켓도 판다. 나는 설렁설렁 동네 구경을 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타바끼에 들어가 교통카드를 구입했다.(타바끼는 위 사진의 T 모양 간판을 찾으면 된다.) 나는 조악한 영어로 “one month, transportation card, please.”를 외쳤고 주인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바로 카드를 내어주었지만, 제대로 말하고 싶다면 한 달 정기권은 이탈리아어로 “Mensile Personale"이니 참고하시길.




로마의 한 달 정기권은 35유로이며, 카드 발급 비용 3유로까지 하면 총 38유로이다. 카드에는 월이 표시되지 않고 영수증에만 표시된다. 로마에 오래 머무는 분들 중 1회권(1.5유로)을 몇 십장씩 구입하시는 경우도 많던데, 그런 경우는 탑승할 때 펀칭을 해야 한다. 카드를 사용하면 매번 티켓을 구입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펀칭하는 귀찮음에서도 놓여날 수 있다. 나는 본전보다 차고 넘치게 잘 쓰고 왔기 때문에 한달살기를 하시는 분들께는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 단, 유효 기간은 매달 1일에서 마지막날까지이다. 내가 구입한 날로부터 한 달이 아니다. 월초에 사야지 손해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꼭 주의할 것.(다음 달에도 계속 이용하려면 카드를 가지고 타바끼에 가면 충전할 수 있다.)




1) 지하철을 탈 때는


로마 시내는 지하철이 너무 잘 되어 있다. 저 노란색 동그라미에 카드를 갖다 대면 게이트가 열린다. 하차할 때는 카드를 찍을 필요 없이 그냥 밀고 나오면 된다. 최근 지하철 C라인 연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호스트 줄리아의 말에 따르면 로마라는 도시가 고대 유적지나 유물들이 많아 이런 공사는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고 한다. 주요 관광지들은 모두 A, B선과 이어져 있지만, 이 공사로 인해 모든 지하철은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저녁 9시까지만 운행한다. 그런 경우에는 지하철 A선 노선을 그대로 따라 운행하는 버스 MA를 타면 된다. 금요일과 토요일 지하철은 새벽 1시 30분까지 운행된다.


2) 버스를 탈 때는


한국에서도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 이탈리아에 와서도 웬만하면 지하철로 이동하려 했는데, 그래도 가끔은 버스 탈 일이 있더라. 지하철로 갈 수 없는 트라스떼베레 지역을 구경 갈 때나 지하철을 환승해야 하거나 좀 걸어야 하는 코스의 경우 등 버스로 이동하는 게 훨씬 간편할 때가 있었다. 버스 시간은 구글이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주는데, 여느 유럽 국가들처럼 연착이 종종 되는 편이다. 트라스떼베레 가는 날은 종점에서 출발하는 거였는데, 이유를 알 수 없이 15분 늦게 출발했다. 나는 시간이 쫓겨 다닌 적이 없어서 그런지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고, 연착되는 시간도 구글에 뜬다. 캄피돌리오 광장 쪽에 갔을 때 버스 도착 시간 알림 전광판이 있는 정류장이 있어 깜짝 놀랐는데, 로마에서는 아주 드문 경우이다.


오른쪽 사진은 정말 드문, 로마에서 단 1개 발견한 버스 도착 알림판 ^-^


버스에서 주의할 점은 카드를 찍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냥 타면 된다. 나로서는 무임승차하는 기분이라 손에 카드를 꼭 쥐고 탔는데, 이것 역시 줄리아에게 물어보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고 가끔 검표원이 보여달라고 하면 카드와 영수증을 보여주면 된다고 알려줬다. 검표는 불시에 이뤄지고 큰 금액의 벌금을 물게 되니 꼭 챙겨다니라고 당부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갑에 영수증도 쑤셔 넣고 다녔다. 참고로 정작 버스에서는 한 번도 검표를 당한 적이 없는데, 지하철에서는 두어 번 제복 입은 사람들이 카드와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후기들을 찾아보니, 벌금은 그 자리에서 검표하는 사람들이 현금으로 받아가는데, 펀칭으로 꼬투리를 잡아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직원들이 용돈벌이하는 거라는 비아냥도 많더라고. 빌미를 주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3) 트램을 탈 때는

트램은 정말 탈 일이 거의 없다. 나도 한 달간 지내면서 로마 북부 쪽에 있는 음악홀에 갈 때 딱 한 번 타봤다. 그마저도 돌아올 때는 버스 정류장이 더 가까워 버스를 탔다는… 타는 방식은 버스와 동일하다. 정기권이 있다면 그냥 타면 된다.


keyword
이전 04화[로마한달살기] 슬기로운 로마 예습법 2 - 도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