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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한달살기] 슬기로운 로마 예습법 1 - 영상 편

[사우보나로마] 3. 밥친구 영상으로 설렁설렁 로마 기웃대기

by 가름끈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여행지로 로마를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사, 종교, 문화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지닌 도시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관련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내가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세계사를 들여다본 건 까마득한 일이고, 그 어떤 종교적 신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지라(그나마도 사찰의 분위기를 더 편안해하는 타입이다)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며, 그림 감상을 즐기긴 하나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서양 미술사의 단편적인 지식들뿐이었다.


로마를 잘 즐기려면 대체 어디부터 얼마나 공부하고 가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 막막하기만 했다.


사실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하고 난 후 나는 여행 준비는 잠시 미뤄두고 다시 일상 속 미션들을 처리해 내며 사느라 헉헉거리는 중이었다. 인근 도서관을 지나칠 때면 대도시 "로마"에 대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료실로 돌진하여 제목에 "이탈리아"가 들어간 책들을 무턱대고 빌려 오기도 했다. 물론 책을 들춰 볼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어 대부분은 한 챕터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반납하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할 일을 자꾸 미루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할 때쯤 불현듯 이건 유학도 아니고 출장도 아니며 단지 여행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편히 즐기러 떠나는 길에도 나는 스스로를 쪼아대고 있다니... 깊이 있는 공부 같은 건 접어 두자 싶었다. 그때부터는 그냥 로마에 대한 잡지식을 흥미 있게 다루고 있는 TV나 유튜브 영상을 밥친구로 삼으며 설렁설렁 로마를 기웃거렸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심어준 호기심의 씨앗은 결국 자연스럽게 다음 콘텐츠로 나를 이끌었다. 덕분에 듬성듬성하지만 그래도 로마에 대한 나름의 큰 얼개 정도는 가지고 로마를 향해 떠날 수 있었다.


AI 이미지 아니에요- 제가 그렸어요


내가 여행기를 남겨 두는 이유는 그 순간 내가 떠올렸던 생각이나 느꼈던 감정을 기록해 두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찾아내고 몸소 경험해서 얻게 된 실용적인 정보들을 자세히 남겨두고 싶다.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늘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정보를 검색하고 있었다. 방대한 양의 정보 속에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건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거기다 이제는 AI가 만들어 준 정보를 검증 없이 무분별하게 중복 게시하는 자료도 정말 많다.) 내가 써 두는 정보가 누군가의 클릭 횟수를 한 번이라도 줄여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의 설렁설렁 로마 예습에 도움이 된 영상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일반인들의 유튜브 영상보다는 조금 더 정제된 형식과 언어를 사용하는 TV 프로그램을 더 선호한다. 그런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관련 분야의 교수님들이 출연하셔서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봐도 좋을만한 수준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때문이다. <세계 테마 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톡파원 24시> 같이 여행기를 다룬 프로그램도 많이 봤지만 이 글에서는 로마라는 도시(또는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와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미술과 관련해서는 업계에서 유명한 분들의 유튜브 영상도 함께 추천한다.


하나, 로마 신화와 제국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고 싶다면


1. 벌거벗은 세계사 134화(2024.01.16.) -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불륜이 탄생시킨 로마 제국[김헌 교수]

그리스-로마 신화 강연의 대표 주자는 서울대 인문학교육원 김헌 교수님.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그리스-로마신화 특집(25,26화) 등 여러 차례 출연하셨지만, 로마의 건국 신화인 '아이네이스 설화'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어 유익하다.


2. 차이나는 클라스 119화(2019.07.31.) - 新로마인이야기 로마제국의 흥망성쇠 이야기[김상근 교수]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김상근 교수님은 쇼맨십이 있으셔서 살짝 부담스럽기는 한데(세계 테마 기행에서 조금 놀랐어요. 교수님 ^-^;;) 이 영상은 방학 특집으로 한 공개 강연이라 열정적인 강연이 많은 사람들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도 로마 역사가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로마 정치사의 흐름을 짚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된 영상이다.


3. 벌거벗은 세계사 171화(2024.010.01.) - 新로마인이야기 로마제국의 흥망성쇠 이야기[반기현 교수]

육군사관학교의 반기현 교수님이 들려주는 로마 제국의 마지막을 다루고 있다. 제국의 시작과 번영을 먼저 설명한 후 그들을 몰락으로 이끌게 된 여러 요인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 추천 영상들은 순서대로 본다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거라 생각한다.


더 찾아보고 싶다면>


- 벌거벗은 세계사 13화(2021.06.01.) : 네로 황제[김헌 교수]

- 차이나는 클라스 248화(2022.06.26.) : 그리스 로마 신화, 아버지를 죽인 신 VS 선을 넘은 인간[김헌 교수]

- 차이나는 클라스 15,16화(2017.06.11. 06.18)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김상근 교수]



둘,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얻고 싶다면


1. 벌거벗은 세계사 69화(2022.10.18.) - 기독교는 어떻게 로마의 국교가 되었나[정기문 교수]


강의를 맡은 군산대학교 역사철학부 정기문 교수는 비기독교인이다. 비종교인인 나로서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신성성에 대한 믿음에 대해 늘 의구심을 품고 있는데, 이 콘텐츠는 로마 제국의 역사적 흐름 안에서 예수의 등장과 죽음, 기독교 박해와 밀라노 칙령 등 굵직한 사건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2. 벌거벗은 세계사 123화(2023.10.31.) - 종교 개혁을 부른 신의 대리인 교황의 탐욕[임승휘 교수]


앞선 영상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 과정까지를 다뤘다면 이 편은 그 이후 기독교가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면서 벌어졌던 일들이 중심이다. 중세 시대 종교 지도자인 교황들이 누렸던 무소불위의 권력과 제대로 된 견제를 받지 못한 채 부패와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다룬다.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에피소드이다.


더 찾아보고 싶다면>


- 벌거벗은 세계사 133화(2024.01.09.) : 신의 이름으로 포장된 추악한 전쟁, 십자군전쟁[박승찬 교수]



셋, 로마 예술 탐방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덧붙이고 싶다면


로마를 둘러보면 자주 거론되는 예술가 셋이 있다.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카라바조. 단시간 내에 이탈리아 미술사를 다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셋의 발자취만 충실히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로마 여행은 아주 바빠질 것이다.


1. 벌거벗은 세계사 66화(2022.09.27.) - 레오나르도 다빈치 vs 미켈란젤로[구지훈 교수]


이 두 사람을 비교하는 콘텐츠는 여럿 있으니 어느 걸 봐도 좋겠지만 일단 벌거벗은 세계사를 추천해 본다. 이들의 예술은 그 자체로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화가의 생애, 예술관, 당대 사회의 모습 등을 알고 보면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비슷한 내용을 조금 더 예능으로 풀어낸 JTBC 톡파원 25시 유럽 미술 랜선 여행(2022.04.13.)을 함께 봐도 좋겠다.


2. [아트 위드 유] e17, 18 로렌초 베르니니[이창용 도슨트]

[미술 읽어드립니다] e18 베르니니 vs 보로미니[양정무 교수]


우리나라가 조각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아 그런가 사실 난 베르니니의 이름만 들어본 정도였는데, 로마에 가서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게 된 조각가가 바로 베르니니이다. 나는 그를 통해서 조각이 얼마나 섬세한 예술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베르니니의 대표작들은 로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https://youtu.be/ci9iAFW88BM?feature=shared

https://youtu.be/fhz6SFO-y_M?feature=shared


3. [EBS 평생학교] 세계미술기행 6화 로마의 천재 화가, 카라바조의 숨결을 따라서 [강정모 여행기획자]



내가 처음으로 샀던 화집은 카라바조의 것이었다. 그 누구의 시선도 단숨에 잡아채는 카라바조의 화풍은 우리나라에서도 팬이 많다.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시대를 앞서갔던 그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을 미리 알고 간다면 명화들을 좀 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aX_UCZ31bY4?feature=shared

https://youtu.be/6u67kB3SQu0?feature=shared

https://youtu.be/IKRWwkzTakw?feature=shared


더 찾아보고 싶다면>


- 벌거벗은 세계사 70화(2024.01.09.) : 메디치 가문[남종국 교수]



몰라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애초에 여행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배경지식 없이 우연히 마주친 장면에서 영감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유명세에 짓눌리지 않고 나만이 볼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몰라서 눈여겨보지 못하는 보물들이 있을 수도 있다. 자주 가볼 수 있는 곳도 아닌데 좋다는 걸 다 볼 수는 없어도 그래도 남들이 의미 있다 외치는 것들쯤은 둘러보고 오고 싶을 수도 있다. 이 추천은 그런 분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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