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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한달살기] Home, sweet home

[사우보나로마] 2. 로마에서의 안식처 구하기

by 가름끈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한때는 여행을 취미라고 말할 정도로 자주 떠났다. 그때의 나를 그렇게 활기차게 움직이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가끔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이다. 떠난 곳에서는 대부분 호텔에서 머물렀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금액을 지불해야 했지만 안전과 편리성을 따진다면 고민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특히 해외여행의 경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늘 로비에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큰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작년부터 내 여행의 테마가 바뀌기 시작했다. '낯선 곳을 구경하기'가 아니라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로. 여행의 기간이 길어지고 일정은 느슨해진다. 그렇다면 숙소의 형태도 달라져야겠지. 현지인들의 주거 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에어비앤비 어플을 뒤적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작년 24일간의 포르투갈 여행에서는 절반은 서비스드 아파트에, 나머지 절반은 주인의 집에 방 하나를 빌리는 형태의 에어비앤비에 머물렀다. 양쪽 모두 아쉬움을 남겼다. 서비스드 아파트는 호텔과 금액은 비슷했으나 서비스 접근성과 편의성은 떨어졌고, 에어비앤비 집주인인 페르난다는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온라인 어학 강사라 내가 집에서 혼자 마음 편하게 늘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내향성 집순이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라 이로 인한 심리적 피로감이 꽤 많이 쌓였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에어비앤비로 독채를 빌려 편하게 머물러 보자고 계획했다. 사실 호텔이나 서비스드 아파트는 관광객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버리기는 좀 어렵다. 현지인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으면서 그 누구도 살피지 않고 내키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찾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동행이 고팠을 때는 언제나 큰 금액의 숙박비를 혼자 지불해야 할 때이다. 로마의 물가는 결코 싸지 않다. 청소 등의 관리는 내가 직접 해야 할 테니 호텔보다는 그래도 저렴해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막상 에어비앤비 시세는 내 마음 같지 않았다. 나는 혼자라 작고 아늑한 공간(물론 침실과 주방은 분리된)이면 충분한데, 얼마 정도가 적당한 가격인 걸까? 오랜 고민 끝에 2000유로선(300-350만원) 정도에서 구해 보기로 하고, 포털 사이트나 에어비앤비 앱을 맹렬하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로마를 여행하게 되면 모두 다 떼르미니 역 근처의 숙소를 추천한다. 아래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 알겠지만, 떼르미니역은 로마 관광의 중심지이자 지하철 A선과 B선의 환승역이며, 기차역도 이곳에 있어 동선 면에서 가장 탁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숙박비가 아주 비싸다. 저렴한 것만 찾다가는 상상초월의 컨디션을 보게 되기도 한다. 거기다가 이 근방은 치안 면에서도 악명이 높다. 여행자들로 붐비는 공간이니 소매치기는 말할 것도 없고 역 근처에 노숙자도 많다.



난 여행하다가 피곤하면 일정을 내일로 미룰 수 있고 좋았던 곳은 두세 번 다시 방문하기도 하는, 느긋한 여행자인지라 애초에 동선은 크게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한 달 정액 교통권을 구입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교통비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그리고 신변의 안전을 걱정하느라 동네를 돌아다니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내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떼르미니 역 근처는 적절한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했다. 지하철 B선보다는 A선에 관광지가 많이 몰려 있었으므로 구글 지도를 켜서 떼르미니 역에서부터 한 코스씩 물러나며 지하철역 근처 숙소들을 살펴봤다. Battistini 방향은 명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떼르미니 역 근처와 다를 바 없는 금액이었으므로 Anagnina 쪽에 집중했다. Re di Roma 역 즈음에 이르자 드디어 후기들에서 노숙자가 별로 없는 주거 지역이라 안전하게 느껴졌다는 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물론 단기 여행자들은 관광지로부터의 거리가 애매하게 멀다는 불평도 함께 쏟아냈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나는 그 일대를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줄리아의 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우리 동네


줄리아의 집은 지하철 A선 'Furio Camillo' 역에서 도보 3~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떼르미니 역에서는 지하철 6코스 떨어진 곳이다. 현지인들이 사는 곳이라 딱히 눈에 띄는 큰 호텔도, 트렁크를 끌고 다니는 관광객들도 별로 없다. 호스트인 줄리아나 체크인을 도와주러 잠깐 들렀던 에바 모두 입을 모아 말했던 것처럼 매우 안전한 동네라 이 근방에 있을 때면 한국에서처럼 소매치기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내내 방심하면서 쏘다녔다. 집 근처에 큰 슈퍼가 여러 개 있고, 작은 공원도 가까이 있어 산책하기 좋았다.


작지만 존재만으로 고마웠던 엘레베이터와 줄리아의 집 현관문


적당히 낡은 건물의 녹색 문을 열고 들어서면 셋이 타기에는 다소 버거워 보이는 좁은 엘리베이터가 있다. 나와 나의 짐이 함께 타면 꼭 맞는 크기이다. 한 달간 머물면서 관찰했는데, 좁아서 그런지 타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지는 않더라. (처음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한국에서처럼 1명이 타 있는 엘리베이터를 잡고 함께 올라가려고 했는데, 상대가 매우 어색해하더라고. 반대로 내가 타 있는데 사람이 오길래 기다려 줬더니 극구 사양하며 나 먼저 올려 보내고 ^-^;;) 참고로, 유럽에서 본 주거형 건물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엘리베이터는 1.5층(그들 식으로 말하면 0.5층)쯤에서 출발하므로 무거운 짐을 들고 로비에서 계단으로 조금 올라가야 했다.


주방과 거실


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앱에서 미리 확인했던 것과 같이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1-2인이 머물기 적당한 크기로 1.5룸이나 투룸으로 부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주방 겸 거실의 공간과 침실 공간은 중문으로 분리 가능하다. 욕실은 아주 깔끔했고, 무엇보다도 세탁기가 있어 좋았다.(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침실과 욕실


한 달 머문 소감은 별 세 개 정도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필요한 물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는 집이었고 지하철이 가까워 편리했다. 무엇보다도 동네가 정말 편안하고 따뜻했다. 게으름이 덮쳐 온 날이면 허름한 몰골로 우리 동네를 쏘다니곤 했는데, 아무도 내 돈이나 귀중품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 경계를 늦출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어정쩡하게 있으면 주저 없이 다가와 손짓발짓을 동원해 나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여럿 있어 모두가 만족할만한 공간인가는 글쎄... 잘 모르겠다. 그건 이 공간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런 주거 형태의 문제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머문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풀어놓을 계획이다.

나의 로마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말이다.



< To rent the Julia's house >


- 기간 : 1/1 - 1/29(28박)

- 총비용 : 2,079.88유로

: 28일 출국이지만 29일까지 예약해야 월단위 요금 할인(40%)을 받을 수 있었다.(1박 금약 105.71유로, 할인 없이 27박은 2,864.17유로) 저녁 출국 시간에 맞춰 체크 아웃 준비를 하고 어디 짐 맡길 필요 없이 바로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어 좋았다.

: 줄리아의 집은 나의 첫 번째 후보지는 아니었다. 비슷한 컨디션에 훨씬 더 저렴한 곳을 함께 찾았던 터라 오래 망설였다. 그 집은 이미 1월 중순 일주일간 예약이 되어 있어 거기로 가려면 중간에 집을 옮기기도 해야 했고, 월단위 할인도 받지 못해 포기했다. 그곳에 세탁기가 없다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 요소였다. (이번 여행에서 새삼 깨달았지만 한달살기에서는 세탁기 유무가 아주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예산 범위 근처에서 비용을 쓴 거라 모든 것이 적당했다고는 생각하지만, 더 저렴한 비교 대상이 있었던 터라 나의 선택이 현명했는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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