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보나로마] 4. 책 세 권을 읽으며 설렁설렁 로마 기웃대기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우리나라의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지식과 정보를 유튜브 영상에서 얻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무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책부터 펼쳐보는 나 같은 사람들도 여전히 있을 것이다. 종이책의 감촉과 냄새를 사랑하고 한 권의 책이 주는 힘을 믿는 사람들 말이다. 이번 편은 이탈리아 또는 로마 여행을 앞두고 관련 책들을 찾아 읽고 싶은 분들을 위한 추천이다.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은 각기 다른 요소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 지난 로마 한달살기 준비 과정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다행히 모두 e-book으로도 출간되었다.
여기서 잠깐 소소한 팁을 하나 풀자면 난 여행 갈 때 항상 이북리더기를 챙겨 간다. 특히 혼자 여행을 떠날 때는 전자책은 아주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준다. 나의 경우에는 전자도서관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서 한 번이라도 빌린 적이 있다면 지역 전자도서관에 쉽게 가입할 수 있다. 미리 읽고 싶은 책을 찜해 두고 wifi가 될 때 다운로드해 두면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 사실 종이책만큼 집중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워 주로 가볍게 읽을 소설이나 실용서적들을 골라 후루룩 읽는다. 이번 여행에서는 우리 지역 도서관 대신 국회도서관의 전자도서관을 주로 이용했다. 특히 이번에 오디오북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전문 성우들이 또렷하게 읽어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지다 보면 잡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긴 이동 시간도 짧게 느껴진다. 피로한 눈을 잠시 쉬게 해주는 건 덤이다. 세상에는 알지 못해서 누리지 못하는 즐거움들이 많다. 여행지에서도 독서를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꼭 전자도서관을 활용하셨으면 좋겠다.
하나, 어쨌든 가이드북이 한 권쯤은 있어야지 - 오현경 저 <로마 홀리데이(Roma Holiday)>
여행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굳이 가이드북까지 살 필요는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난 늘 한 권 정도는 사서 가려고 한다. 사전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정리해서 나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어 간다면야 모를까 결국 현장에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정보를 찾게 되기 마련인데, 지난 글에서도 말했듯이 스마트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편적인 정보들은 너무 뒤섞여 있어 그것을 잘 선별하는 데는 시간과 에너지가 들기 마련이다. 난 여행지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어차피 구글 맵도 따라가야 하고 음악도 들어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해서, 내 폰은 이미 충분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배터리 문제나 데이터 요금까지 생각한다면 가이드북 한 권을 사는 건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나 하루 일정을 마치고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다음날 여행 일정을 짤 때도 잘 정리된 한 권의 책을 따라가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 무겁다고? 그렇다면 분책하면 된다. 나는 관광 명소에 가서 잠시 앉아 미리 뜯어 온 그곳에 대한 가이드북을 천천히 읽곤 했다. 메모하고 싶은 감상이 있다면 폰에 간단히 남긴 후 가이드북 종이는 미련 없이 버렸다.
많은 가이드북들 중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로마'라는 도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과 가장 최신의 정보들(23-24년판)이 담겨 있다는 점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이드북은 이탈리아 전반을 다루고 있어 나에게는 필요 없는 정보도 많이 포함되어 있는 데 비해, 이 책은 교통, 즐길 거리, 맛볼 것, 쇼핑 등 로마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보를 물 샐 틈 없이 전한다.(물론 이탈리아 역사와 문화, 관광 정보 전반에 대한 정보도 앞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로마를 8개의 지역으로 세분화하여 자세히 다뤄주고 있어 나처럼 로마 한달살이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한 동네씩 정복할 수 있게끔 코스를 짜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크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관광 포인트들이나 맛집들도 소개받을 수 있어 아주 유용하다. 아래 목차 사진은 [지역별 가이드] 부분만 찍은 것으로 이 책에는 단기간 추천 코스(2박 3일이나 4박 5일)도 테마별로 구성해 두고 있고, 로마 근교 당일치기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자세하게 수록해 두고 있다.
둘,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 김상근 저 <나의 로망, 로마>
앞서서 쓴 '슬기로운 로마 예습법-영상편'에서 조각조각 다뤘던 내용들이 잘 정돈되어 담긴 책이다. 저자 역시 영상편에서도 등장한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김상근 교수이다. 로마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흥미로운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그 이면에 담겨 있는 로마인들의 삶과 사상을 들여다 보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깊이 있는 인문학 책이다.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쓰는 것은 작가의 자격이 없는 일이라며 반드시 쉬운 문장을 쓸 것이라고 공언한다. 이 책을 가기 전에 한 번, 여행지에서 e-book으로 한번 더 읽은 내가 작가의 이 말이 100% 진실임을 보증할 수 있다.
줄리아 로버츠와 괴테가 사랑했던 도시, 로마. 상처 난 영혼에게 치료약을 발라주는 거대한 병원. 우리는 그곳에서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인간의 영혼은 권력과 욕망의 정도에 따라 얼마나 부침을 거듭하는지, 예술은 또 얼마나 인간의 메마른 영혼을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는지 목격하게 된다. 로마는 그래서 오랫동안 인류의 로망이 되었다.
로마라는 나라를 창건하기 위해 쌍둥이 동생 레무스를 죽여야 했던 로물루스의 숙명, 로마 마지막 왕가의 폭력 앞에 자신의 순결을 잃고 복수를 외치며 자결했던 루크레티아, 브루투스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면서도 끝까지 자기 얼굴에 묻었던 피를 닦으려 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불타는 로마 시가지를 바라보며 트로이 성이 불타는 장면을 시로 읊었다는 네로 황제, 미켈란젤로와 카라바조가 시대를 넘어 예술혼의 정수를 보여주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세대 간의 대결을 펼쳤던 곳, 지금도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모여와 무릎을 꿇고 하느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영혼의 순례자.
우리는 로마에서 '재탄생'을 경험한다. 로마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다시 태어난 우리 자신이다.
- 에필로그 중(p.403-404)
셋, 이탈리아인의 삶이 궁금하다면 - 알베르토 몬디, 이윤주 저 <이탈리아의 사생활>
우리나라 TV 예능에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예능인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중 내가 가장 호감이 가는 사람을 한 명 꼽으라고 한다면 그는 바로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이다. 이탈리아 최고라는 문구를 머리 위에 달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 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타국의 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호기심도 늘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 덕분에 나는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진면목은 그가 보여주는 유쾌함과 유연함과 닮아 있을 거라 생각하곤 했다.
그러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 책이 바로 알베르토 몬디가 쓴 <이탈리아의 사생활>이라는 책이다. 그는 식문화, 종교, 교육, 축구, 사랑 방식 등 이탈리아인들의 일상 곳곳을 깊숙하면서도 친근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책 속에는 알베르토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들도 여럿 등장하는데, 덕분에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현지인 친구와 수다 한 판 떠는 기분도 든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현재 모습들을 함께 다루며 더 나은 방향의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부분에서는 그의 진지한 통찰력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아쉽게도 현재는 절판된 것 같은데, 이북이나 도서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이탈리아 여행을 앞둔 분들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한국인들이 이탈리아 카페에서 가장 독특하다고 느낄 풍경 중 하나는 선 채로 커피를 마시는 문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에 서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혼자든, 둘이든, 여럿이든 상관없다. 물론 앉아서 마실 수도 있다. 한국처럼 계산을 먼저 한 다음 직접 음료를 찾아가는 '셀프서비스' 개념은 없다. 테이블에 앉을 경우 모든 서비스를 웨이터가 해준다. (......) 카페에서 일하는 이들은 임시직이 아니다. 대체로 단골손님들 위주로 영업을 하는 데다 손님들이 철저한 서비스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들 '프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탈리아에는 바리스타 학원이 따로 없다. 카페에 취직하면 바리스타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기본적으로 배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카페에서 메뉴에 대해 물어보면 직원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어, 잠시만요, 물어보고 말씀드릴게요"라고 대답해서 많이 당황했다. 알아본다니! 모른단 말인가?! 이보다 훨씬 당황스러운 건 '스푼'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와 스푼은 한 쌍이다. 한국의 어느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는데, 스푼을 안 주길래 깜빡 잊은 줄 알고 요청했더니 스푼은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잔에 남은 크림은 어떻게 먹느냐고 물어보니 직원이 나보다 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더라.
p, 23-24 <이탈리아의 사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