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portugal 2) 항공권 구입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2015년 겨울, 난 스페인에서 2주 정도 머물렀다. 긴 휴가를 내기 어려운 직장인은 늘 비행 6시간 이내의 나라들만 여행하곤 했었는데, 그즈음의 나는 조금 더 이국적이고 새로운 자극을 원하고 있었다. 다양한 경로로 주변 사람들의 여행을 엿보니, 유럽을 여행할 때는 이동 시간이 길고 돈도 많이 들기 때문에 한 번 떠날 때 최대한 많은 나라를 둘러보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홍콩, 베트남, 일본, 태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나는 내가 꽉 짜인 일정에 쫓겨 다니는 여행을 꽤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장 생활이 나를 J형 인간으로 만들었지만, 여행지에만 가면 억눌러 둔 충동성이 강해져 느슨하게 세워 둔 계획마저 엎고 싶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대부분 동행을 위해 꾹 참고 정해진 루트를 성실하게 돌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첫 유럽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만 선택했고, 그곳에서만 2주 정도 머물렀다. 여행 중 만났던 한국인들은 대부분 최소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 정도는 엮어서 여행하는 중이었는데, 그들 모두 입을 모아 나의 일정에 리스본이 없음을 아쉬워하며 나중에라도 꼭 가보라고 당부했다. 이유는 제각기 달랐지만, 그때 알게 되었다. 리스본이라는 도시가 꽤 많은 사람들의 인생 여행지라는 것을.
모처럼 떠나겠다고 다짐한 이후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마음에 곱게 새겨둔 리스본과 요즘 한 달 살기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포르투, 이 두 도시가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고 최대한 느릿느릿 느슨한 여행을 하려면 하나의 도시에서 열흘 이상은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그곳에 무엇이 얼마나 있든 말이다. 미리 일정을 조정한다면 내년 겨울에는 그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겠다 싶었다. 누구와 함께 떠나면 좋을까 여러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지만, 가급적이면 겨울에는 가지 말라고들 만류하는 유럽에, 그것도 한 나라에서만(어쩌면 두 개 도시에서만) 3주 정도를 머무르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일 사람은 없어 보였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오랜만에 켜는 기지개인만큼 이번에는 서로 양보하고 맞춰가는 여행이 아니라 온전히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겨울", "유럽", 그리고 "혼자여행"을 선택했다.
의욕적으로 여행을 추진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항공권을 예약해 두는 것이다. 사실 11개월 뒤의 항공권을 미리 구매한다는 것은 너무 이르긴 했는데, 모처럼 여행의 설렘이 피어나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서 비행기 티켓을 손에 넣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스카이스캐너를 끊임없이 새로고침하며 적정한 일정과 가격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폭풍 검색 끝에 나름의 원칙을 몇 개 세울 수 있었다.
1. 직항 노선은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경유하되 무조건 한 번만 한다.
2. 비행시간을 합쳐 20시간 이내로 한다.
3. 혼자 여행이므로 밤늦게 도착하거나 새벽 일찍 출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4. 인천-리스본 왕복이 싸긴 하겠지만, 어차피 포르투도 갈 거니까 리스본 인-포르투 아웃(또는 그 반대도)도 함께 찾아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항공사는 루프트한자와 에어프랑스였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지연과 결항으로 악명이 높았던 두 항공사라 걱정되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니 너무 이른 예매라 도리어 그런 변수를 이용하는 편이 좋겠다 생각했다. 만약 항공사가 임의로 스케줄을 조정한다면 나는 티켓을 무료로 취소할 수 있게 되므로, 여행 일정을 변경하거나 더 좋은 조건의 티켓을 발견할 때 보다 쉽게 갈아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1월로 설정해 두고 앞뒤 날짜를 조정해 가며 최저가의 항공권을 찾았고, 리스본 왕복 티켓보다 7만 원 정도 비싼 리스본 인-포르투 아웃 티켓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2-3일간 가격 흐름을 지켜보다가 취소가 조금 더 용이한 항공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결재까지 완료했다.
[AFTER]
하나, 에어프랑스는 실제로 스케줄을 3차례 바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내가 너무 일찍 예약한 터라 어떤 항공사든 스케줄이 어느 정도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케줄은 총 3번 변경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출발 시간이 두 시간가량 늦춰졌으며 서울-파리 구간이 대한항공 코드셰어 비행기로 바뀌었다. 나는 지방에 살고 있어 인천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스케줄 변경으로 인해 국내 이동의 차편이 애매해졌고 무엇보다도 리스본 도착 시간이 밤 10시 30분이라 심야 시간에 혼자 시내로 이동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둘, 나는 환불하지 않고 11개월 전 예약한 항공권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예매 2-3개월 후부터 나의 비행기 편의 가격을 검색하면 내가 지불한 금액보다 40만 원은 웃돌았다. 취소를 하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거기다 영어 능통자가 아닌 나로서는 장거리 구간이 대한항공 코드셰어로 바뀌었다는 사실도 좋았다. 여행의 출발과 끝에는 적어도 언어 문제에서 해방될 거니까. 그래서 스케줄 변경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인천공항으로의 이동은 전날 밤 출발하는 리무진 버스를 이용했고, 긴 공항 대기 시간은 라운지 투어로 채웠다. 그리고 첫날밤은 어차피 여행이 어려우니 리스본 공항에서 도보 5분 이내로 이동할 수 있는 호텔에서 1박 한 후 다음날 시내로 이동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그리고 이는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