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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May 31. 2024

오 마이 에그타르트

To Portugal 5) 포르투갈 먹거리 즐기기 - 에그타르트(나타)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코로나가 한창 심했던 시절,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찍어 보낸 영상을 보며 여행의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즐겨 봤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패널로 등장하는데, 한국인보다도 한국어를 더 잘 구사하는 미국인 방송인 타일러도 그중 한 명이다. 여느 채널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프로그램 속에서 차분하면서도 객관적인 태도로 해박한 지식을 뽐내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그가 평정심을 잃고 그 어디에서도 이것을 넘어서는 건 없다며 흥분과 감탄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리스본의 에그타르트였다.


톡파원 25시 - 포르투갈 편 에그타일러의 등장


 나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 갑자기 모든 준비가 귀찮아지고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슬럼프를 겪곤 하는데(물론 빠른 시간 안에 치유되곤 한다), 이번에는 그 시기를 슬기롭게 보내고자 OTT채널에서 포르투갈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다. EBS 세계테마여행 <Ola! 포르투갈>(2016) 편은 타일러가 에그타르트 그리고 포르투갈과 사랑에 빠지던 순간을 담아내고 있었다. 덕분에 그냥 그런 디저트 종류의 하나일 뿐이라 생각했던 에그타르트는 내 안에서 포르투갈에서만 영접할 수 있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맛봐야 하는 특별한 음식으로 변모했으며, 곧 내가 떠날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에그타르트는 파이지에 커스터드 크림을 채운 타르트로 크게 포르투갈 스타일과 홍콩 스타일로 나눠진다.(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포르투갈식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15년 전쯤 홍콩으로 떠난 여행에서 소호 거리를 헤매며 유명하다는 에그타르트집에 방문했던 기억이 있는데, 사실 그때는 에그타르트 자체에 익숙하지 않아 맛있게 먹긴 했지만 뭐가 그렇게 특별한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이 어딘가. 세계 최초로 에그타르트를 만든 곳 아닌가. 나는 타일러가 주입한 에그타르트에 대한 경외감에 가득 차서 리스본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에그타르트 집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만테리가리아(Manteigaria)이다. 리스본 시내에 3-4곳은 있는 대표적인 에그타르트 프랜차이즈이다. 테주강을 향해 곧게 뻗은 길을 걷다 보면 유독 사람들이 북적대는 가게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만테가리아이다. 

포르투갈 나타집 1 - 만테리가리아(Manteigaria)


 포르투갈에서는 에그타르트를 나타라고 부르며, 대부분의 가게가 동일한 금액을 받는다.(개당 1.3유로) 기대감과 흥분에 감추지 못하고 나타를 받아 들자마자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나타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이 겉면에 묻어 나온 기름기의 맛이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져 느끼함이 가시질 않았다. 응? 이걸 먹으러 사람들이 이렇게나 몰려든다고? 그 극찬들은 여행지가 주는 환상때문이었나? 슈가파우더와 시나몬 가루를 마구 뿌려 어떻게든 감동해 보려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식후 디저트를 먹기 적절한 시간대였고 가게 회전율은 상당히 높아 보였기 때문에 나타의 상태도 맛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여전히 입안을 감돌고 있는 기름진 단맛을 카푸치노로 씻어내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특별한 맛을 경험하겠다는 욕구는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여기 얼마나 많은 에그타르트 집이 있는데,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한 끝에도 실망만이 남는다면, 그제야 포르투갈 에그타르트 별 거 없더라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포르투갈 나타집 2 - 파브리카 다 나타(Fábrica da Nata) : 리스본


 두 번째 나타는 파브리카 다 나타(Fábrica da Nata)에서 맛보았다. 비도 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숙소에서 늑장을 부리고 있던 날, 아침을 해결하고자 헤스타우라도로스 광장 앞에 있던 가게를 방문했다. 캐러멜화된 윗면과 페스츄리는 적당히 바삭했고 필링도 부드러웠다. 단맛의 정도도 나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따뜻했다. 모든 것이 적당하여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맛인 데다가 내가 머물렀던 숙소에 가까운 지점들이 많아 이후 포르투 지점까지 포함하면 3번 정도는 더 방문한 곳이다.   


포르투갈 나타집 2 - 파브리카 다 나타(Fábrica da Nata) : 포르투


 세 번째 나타는 파브리카 다 나타와 비슷하나 조금 더 무게감 있는 단맛이 느껴지는 Castro이다. 이전 가게들과 달리 가게 분위기도 커피를 만들어주는 직원도 차분한 편이라 나 역시 주변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조금 더 편안하게 그곳에 머무를 수 있었다. 참고로 나는 나타와 함께 "갈라옹(galão)"이라는 커피를 주문했는데, 우유의 양이 꽤 많은 라떼였다. 다소 느끼할 수 있으니, 커스터드 크림이 가득한 나타를 먹을 때는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 같이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커피를 곁들이는 편이 좋겠다.  


포르투갈 나타집 3 - 카스트로(Castro)



 리스본에서 머문 지 6일째 되던 날, 그날은 벨렝 지구 투어날이었다. 드디어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에 있는 에그타르트의 원조집, 전 세계에서 레시피의 비법을 3명밖에 알지 못한다는 영험한 곳, 타일러가 방문해서 극찬을 쏟아냈던 그곳, 바로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éis de Belém)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미 나는 '파브리카 다 나타'와 '카스트로' 덕분에 나타에 대한 호감을 꾸준히 쌓아가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원조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가게 앞은 인산인해였고 줄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고풍스러워 보이던 가게 안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해결하고 싶었는데, 기다리는 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쳐버렸다. 부랴부랴 테이크아웃 주문만 받는 곳으로 이동해 나타 3개를 사들고 바로 앞 공원으로 향했다.(스타벅스가 바로 옆에 있으니 커피도 함께 사가면 행복 지수가 조금 더 올라간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éis de Belém) 이곳이 에그타르트의 성지


 벤치에 앉아 녹음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원조를 영접하는데, 한 입 베어 문 순간 정말 이건 다르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겉면의 바삭함은 앞선 두 가게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안의 필링이 부드럽고 폭신폭신한데 이게 정말 예술이었다. 이러한 질감에 정말 잘 어울리는 정도의, 정말 딱 그 정도의 단맛이 느껴지는데, 다 먹고 난 후에는 단맛의 풍미는 여운을 오래 남기지 않고 산뜻하게 사라졌다. 어떻게 이런 맛이 있을 수 있지? 의식하지 못한 사이 허겁지겁 다 먹어치웠다. 그전에 여러 곳의 나타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이 특별함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드니 그제야 첫날의 만테리가리아를 용서할 수 있었다. 따뜻한 햇살 덕에, 산들산들 바람 덕에, 마지막에 와서야 드디어 알게 된 나타 맛의 정점 덕에 나는 정말 행복했다.


오늘도 공원에서 즐기는 최고의 나타


 리스본을 떠나기 전 베르나두 미술관을 방문하기 위해 다시 한번 벨렝지구로 향했던 날,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파스테이스 드 벨렝'으로 돌진했다. 나타 3개와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공원으로 갔으며, 그때 그 벤치에 앉아 이번에는 천천히 나타를 음미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맛보게 될지 모르는데 이 소중한 기회를 또다시 허겁지겁 넘겨버리고 싶지 않았다. 천천히 조금씩 맛보며 나타와 함께 하는 여유를 만끽했다.


 세상 사람들을 유형화하는 다양한 기준 중 하나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기나긴 기다림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난 사실 후자에 가깝다. 미각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섬세한 맛의 차이를 분별해내지 못하고, 맛 이외의 여러 요소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 오로지 '맛'을 위해 그렇게 큰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나를 감동시키는 맛이 분명히 존재한다. 때로는 이렇게 큰 기대에 걸맞은 맛도 존재하곤 한다. 소박한 여행자는 단지 '맛' 하나로 이 도시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된다.


 나 역시 앞으로 포르투갈 에그타르트 이야기를 할 때는 에그타일러처럼 눈에 하트가 가득하겠지.



+ 

 리스본을 떠나 도착한 포르투에서도 나타를 여러 번 맛보았다. 이미 최고의 맛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맛을 분석하거나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포르투에서 나타를 가장 행복하게 즐긴 곳은 Nata Lisboa였다. 다들 한 번 들러보시길. 

포르투 나타 맛집 Nata Lisboa



++

 리스본에서 에그타르트 외에도 꼭 즐겨봤으면 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볼호레이. 처음 가이드북에서 전통 있는 가게인 Confeitaria Nacional에서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베이커리라 해서 관심이 갔다. 익숙한 맛이긴 한데 신기하게도 이후에 계속 생각이 나서 결국 한 번 더 들르게 되었다. 가게의 낮과 밤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낮에는 우아한 홀에서 격식을 갖춘 서빙을 받게 되는 곳이라면, 저녁은 캐주얼하고 힙한 분위기라 부담 없다. (사실 흐름을 읽기 어려운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는 저녁 분위기가 더 당황스럽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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