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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May 24. 2024

여행은 언제나 변수의 연속이지

to portugal 4) 공항에서 우왕좌왕하기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오전 6시 부산을 출발한 리무진버스가 나를 인천공항에 내려주었다. 이동 시간은 6시간 정도였는데 겨우 1시간 남짓 졸았을까 나머지 시간은 대체 언제쯤이면 형편없이 구겨진 내 몸을 펼 수 있는가만 골똘히 생각하느라 심신이 아주 지쳐 있었다. 거기다 내내 떨쳐지지 않았던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무거운 나의 캐리어 때문이었다. 겨울 여행에 대비하여 큰 사이즈로 구입했는데 이것저것 챙겨 넣다 보니 어느새 캐리어는 들어 올리면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무게가 되어 있었다. 내가 캐리어를 제대로 들어 올릴 수 없으니 끈으로 측정해야 하는 캐리어 저울도 무용지물이었다. 정확한 무게를 알 순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항공사 허용 무게인 23kg 이내일 것 같지 않았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12시 10분이었으나 대한항공은 인천 공항을 허브로 두고 있기 때문에 오전 7시부터 당일 출발하는 티켓은 체크인이 가능했다. 셀프 체크인 및 수하물 등록은 바로 가능했지만, 초과될 것이 확실시되는 무게에 대해 기계는 얄짤없이 돈을 요구할 테니 마음씨 따뜻한 휴먼을 대면하고 싶어 수속 카운터가 열리길 기다렸다. 예상대로 무게는 무려 3kg나 초과했지만, 다행히 직원은 불쌍한 중생을 가엽게 여기시고 무사 통과시켜 주셨다. 예외적으로 넘어가는 것이고, 귀국할 때는 규정대로 처리하는 게 당연하므로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이후 나는 여행 내내 캐리어를 비워내야 한다는 사실에 끊임없이 압박받게 된다.)


 4시간가량을 라운지와 면세점을 전전하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보딩 시간이 지연될 때부터 눈치챘어야 하는데, 모든 승객이 탑승한 후에도 비행기는 이륙 준비에 1시간 이상을 소요했다. 가뜩이나 엄두가 안 나는 비행시간인데 출발조차 못하고 있으니 벌써부터 숨이 막히고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전날부터의 피로로 인해 눈은 뻑뻑하고 귀는 웅웅 거려 신경이 곤두섰고 입맛이 없어 기내식조차도 반갑지 않았다. 결국 긴 비행시간 동안 단 한숨도 자지 못하고 이북리더기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견뎠고, 나의 컨디션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힘든 시간의 끝이 보일 때쯤 불현듯 나에게 경유라는 큰 미션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놀랍게도 그제야 내가 그 넓은 드골 공항에 대해 단 하나도 아는 것이 없으며, 나중에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출발이 1시간 정도 지연되었으니 경유 시간 2시간 15분 중 1시간은 이미 날아간 상태. 당황스러운 마음에 빨리 내리고 싶어 서둘러 봤지만, 비즈니스석부터 먼저 내리게 하겠다는 승무원의 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내 앞의 몇 명이 티켓을 보여주며 급박한 환승을 어필해 먼저 빠져나가는 것을 봤기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Transfer 표지판을 따라 뛰었으나 빡빡한 보안 검색을 통과하고 나니 2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함께 내렸던 한국인들 중 하나가 검색대의 직원과 리스본 운운하며 나눴던 대화를 슬쩍 엿들어 게이트 번호를 기억해 두고 급한 용무부터 해결하려 화장실에 들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오니 함께 내린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 후였다. 터미널은 매우 크고 복잡했다. 한참을 걸어 겨우 게이트에 도착했는데, 탑승을 준비하는 직원도 대기하는 승객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안내판에는 내가 탈 비행기 편명조차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비행기 이륙 40분 전.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근처 게이트에 있는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이곳은 2E이고 내가 가야 할 곳은 2F인지 2G인지 모르겠다며 앱을 열어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라고 대답했다. 2E? 2F? 2G? 아니 그게 뭐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일단 휴대폰을 꺼내 미리 구입해 둔 유심으로 교체했다. 안일하기 짝이 없는 나는 대한항공도 에어프랑스도 앱을 깔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부터 다운받았다. 시간은 짹각짹각. 앱으로 들어가니 한국에서 이른 체크인을 하며 종이티켓으로 발권한 내 티켓은 전자 정보가 제대로 뜨지 않는다. 결국 에어프랑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편명을 검색한 뒤에야 정확한 탑승구를 알 수 있었다. 비행기 이륙 25분 전.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음에도 내 인생 최고의 스피드로 질주했고, 결국 끝나가던 탑승 수속줄 마지막에 설 수 있었다. 이름이 호명되는 굴욕까지는 겪진 않아도 되어 정말 다행스러웠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서니 내 자리 옆에는 한국인 아주머니 한 분과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창가 자리로 비집고 들어가려 하니 아주머니가 마침 잘됐다며 부부가 떨어져 앉게 되었으니 자리를 바꿔주라며 나를 끌고 간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어 자리를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하자 그런 게 어딨냐며 젊은 여자(아마도 아내분)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그냥 바꿔주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아- 어머니를 모시고 온 젊은 부부가 여러 사정으로 좌석이 떨어졌구나 싶어 그 여자분께 어차피 난 상관없으니 바꿔드리겠다고 말했다. 감사를 표하는 여자분의 말을 듣고 난 뒤늦게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들 부부와는 초면이고 부부의 좌석이 떨어져 먼저 옆자리의 아주머니께 바꿔달라 부탁드렸으나 아주머니가 거절하셨나 보다. 그때 마침 나머지 한 좌석의 주인인 내가 나타나자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덜고자 오지랖을 부린 거였다. 묘하게 불쾌한 기분이 들어 속으로 조금 꿍얼거렸으나, 뭐 아무려면 어떠랴. 리스본행 비행기를 무사히 탔으면 됐지 뭐.


 밤 10시 35분 도착. 공항에서 짐을 무사히 찾고 걸어서 10분 거리의 호텔로 찾아갔다. 방은 하루 머물기 아까울 정도로 쾌적하고 깨끗했다. 물론 아직 리스본 공항만 구경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고대하던 포르투갈에서의 날들이 슬그머니 펼쳐지기 시작했다.


[After]


+


 다음번에도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첫 번째 선택지는 리무진 버스이다. 분명 고생스러웠지만, 사실 새벽같이 일어나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버스 타고 KTX역으로 이동, 2-3시간 KTX를 타고 다시 공항열차를 타는 수고로움보다는 나은 것 같다. 버스에 구겨진 채 밤새 달리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긴 했지만 여행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어느 정도 즐겁게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 


 리스본에 밤에 도착하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은 나처럼 공항 앞 호텔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미 장거리비행으로 너무 지친 상태라 밤늦게 혼자 택시를 타고 아파트에 도착하고 그 후 또 체크인을 시도하느라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예약한 아파트의 리셉션은 24시간 운영이 아니라 주인에게 따로 연락해서 만나야 했다.) 일정이 너무 빠듯하지 않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깨끗한 침대에 몸을 뉘이는 시간을 최대한 당기는 게 여행의 시작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보도 5분 이내 호텔은 스타 인 리스본 에어포트(Star inn Lisbon Airport)멜리아 리스보아 아에르포르트(Meliá Lisboa Aeroporto) 2곳이 있다. 두 호텔은 정말 나란히 붙어 있어 위치로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한국인 후기는 스타 호텔이 더 많았고, 내가 예약할 때(출발 한 달 전) 숙박 요금은 15만 원 내외로 비슷했다. 비슷한 가격이라면 3성급 스타 호텔보다는 4성급 멜리아 호텔이 낫겠지 싶어 멜리아 호텔로 예약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 직원들의 영어는 매끄러웠고 호텔 컨디션도 예상보다 훨씬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기분 좋게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 느긋하게 조식을 즐기며 가이드북을 훑어봤다. 배를 두들기며 호텔을 구경하고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그랩을 불러 시내로 이동했다.


멜리아 리스보아 아에르포르투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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