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portugal 3) 숙소 정하기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이번 여행의 목적은 많은 것을 보겠다며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여유를 가지고 도시를 깊게 즐겨 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먼 거리의 유럽을 방문하면서도 포르투갈 내에만 머무르자 결심했고, 총 23일 중 리스본에서 11일, 포르투에서 12일을 머무르기로 계획했다. 매우 이른 시점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기 때문에 항공료는 크게 비싸진 않았으나, '잘 곳'을 마련하는 일이 금액적으로 부담스러웠다. 한 푼이라도 더 아껴보겠다고 고단한 숙박을 자처할 나이는 이미 훌쩍 지나있지만 그렇다고 고급 호텔에 장기간 투숙할 만큼 내 주머니가 넉넉한 편도 아니었다. 물론 처음에는 일단은 풍족하게 다녀온 후 미래의 나에게 뒷일을 맡겨보자는 안일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내 인생에 "휴직"과 "연금"이라는 화두가 등장하게 되어 과하다 싶을 정도의 돈은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이것저것 고민한 결과 22박 전체 숙박비 예산은 250만 원 남짓으로 잡았다. (이후 따로 쓰겠지만, 최종적으로는 조금 초과했다.) 에어비앤비, 아파트, 호텔 등을 적절하게 섞으면 다양한 숙박 시설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예산도 잘 배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도시 안에서는 이동하지 않고 하나의 숙소에만 머무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다양한 곳을 경험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트렁크를 끌고 다닌다면 도시별로 길게 일정을 잡은 의미가 반감되는 것 같았다. 도시별로 베이스캠프가 되어줄 리스본 나의 집, 포르투 나의 집이 필요했다. 머무르고 살아보는 여행이니까. 합리적이고도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한번 끝 모를 검색의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먼저 첫 번째 도시인 리스본. 에어비앤비에서 첫눈에 반한 집이 있었다. 아담한 침실 옆에는 로맨틱한 거리를 바라볼 수 있는 발코니가 딸려 있었고,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작지만 활기를 주는 식물들이 거실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간단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주방과 여행의 피로를 풀어줄 욕조도 있었다. 앤틱한 분위기의 가구들 속에서 시선을 잡아 끄는 진초록색 소파는 화룡점정. 집을 소개하는 주인의 멘트는 로맨틱하기 그지없었다.
This is were our love story began... We were very happy in this place; hope you are too!
1인 여행자가 머물기에는 사치스러운 공간이었지만, 10일 이상을 머무르는 경우에는 큰 폭의 할인을 해주기 때문에 감당하지 못할 금액도 아니었다. 시내 중심가와 가까운 위치인 데다 후기도 다 칭찬 일색이었다. 아직 다음 해 예약은 오픈되지 않은 상태여서 고작 일방적으로 찜해두는 것 말고는 한 게 없지만, 이미 상상 속에서는 벌써 나의 리스본 집이 되어 버린 그곳을 가끔 들여다보며 행복해했다.
여행 8개월 전인 5월, 드디어 1월 예약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방심한 사이 금액은 1박당 10유로씩 올랐으며 무엇보다도 장박 할인이 되지 않아 나의 예산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 되어 있었다. 혹시 착오가 생긴 게 아닐까 부족한 영어를 짜내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냈으나 2024년 요금을 새로 업데이트한 게 맞다며 그래도 나를 꼭 만났으면 좋겠다는 다정한 답이 돌아왔다.
마음에 드는 숙소이긴 하지만 전체 숙박 예산을 이 숙소에 다 투자해야 하는 금액이니 나의 현실감각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뭔가를 놓친 기분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열흘 정도 검색한 끝에 리스본에서는 서비스드 아파트인 "Dream chiado serviced apartment"으로 예약했다. 특별한 매력은 없었지만, 모든 면에서 무난했다. 오르막 초입이지만 중심 거리에서 가까웠고,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며, 간단한 조리도 해 먹을 수 있고, 매일 하우스키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떠나기 한 달 전 조금 더 비싸지만 마음에 꼭 드는 아파트를 발견해서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미리 예약해 둔 이곳의 금액도 취소하기 아까울 정도로 많이 뛴 상태라 처음 계획한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두 번째 여행지인 포르투는 리스본보다는 숙박비가 조금 낮은 편이라 다양한 형태의 숙박을 고려해 볼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중심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꽤 매력적인 집과 호스트를 발견했다. 단, 독채가 아니라 방 하나를 빌리는 것이라 현지인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여행의 반이 지날 무렵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고플 것 같기도 했고, 나만 쓸 수 있는 깔끔한 개인 욕실이 있다는 점은 타인과 같이 사는 불편함을 많이 해소해 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독채를 빌리는 것보다 숙박 요금이 1/3 정도로 저렴했다. 이곳은 10박까지만 예약이 가능했기 때문에 마지막날에는 포르투에 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숙소가 마음에 들면 하루 더 연장해도 좋고 아니면 전망 좋고 근사한 최고급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며 포르투갈 여행을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아무튼 항공권과 숙소를 결정했으니 여행 준비의 9부 능선은 넘었다. 난 심지어 도시 간 이동도 한 번 뿐이라 복잡할 게 없었다. 유유자적 포르투갈 대표작가의 책들이나 여행 가이드북들을 가볍게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 바쁜 일상은 그 정도의 여유도 허락하지를 않았고 어느새 여행은 코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