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portugal 1) 프롤로그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처음에는 직장생활 10년차가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맞게 되는 슬럼프라 생각했다. 바닥난 체력과 마음을 사람들을 만나는 데 쓰고 싶지 않아 퇴근 후나 주말에 집에 혼자 머무르며 나를 보살피는 시간을 늘렸다. 평소 호기심이 많고 실천도 빠른 편이라 얕게나마 잡다한 것을 배우는 일을 즐기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더 이상 집 밖의 세상이 흥미롭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반드시 미리 약속을 정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으며, 그것도 아주 드문 일이었다. 집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게 피로하기만 했다. 나는 나의 집에 웅크리고 있기만 바랐다.
물론 돈은 벌어야 했다. 지리멸렬하지만 그건 언제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퇴근하기 위해 출근했다. 매일 아침 머리를 말리면서 짧게는 오늘 하루, 멀리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잠깐씩 고민하곤 했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생각은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하루종일 간절히 기다렸던 퇴근 후에는 소파에 드러누워 최소한의 활동만 했다. 인터넷 속 먼 곳의 일에만 짧은 흥미를 보이고 몇 마디 말을 보탤 뿐 현실의 나,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세계에 무심해졌다. 관계에 대한 욕구는 사라졌고 여행에 대한 열망도 잊은 지 오래였다.
전형적인 번아웃 증상이었다. 달릴 에너지가 없으니 멈출 수 밖에. 그렇게 3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괜찮을 것이다.' '인생에 이런 시기도 있어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동시에 마음 한 켠에서는 무기력한 스스로를 게으르고 한심하다며 타박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의 인생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2023년 새해가 시작되고 공간의 적적함을 채우려 습관적으로 TV를 켜다가 문득 까만 화면에 비친 나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도 몇 번은 봤을 모습인데, 마치 그 날 처음 본 모습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멍하니 들여다보다 불현듯 이쯤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에는 드라마틱한 계기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왜 이런 걸까 언제까지 이럴 건가 생각을 곱씹는 일을 멈추니 자연스럽게 몸이 떠올랐다.
이제는 머리 위까지 손을 뻗어 올려 기지개를 켜고 싶었다. 어느새 잔뜩 굳어버린 손과 발을 조금씩 풀어낼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무의미하게만 느껴졌던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나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나를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가 채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보폭을 크게 해서 멀리 떠나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