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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Aug 23. 2024

빼어난 관광지도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

Portugal 12) 관광객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포르투갈의 풍경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잠에서 깨어나 9시간 빠른 한국땅에서 나를 잊지 않고 있는 이들이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를 확인했다. 영어권에서는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날을 있는 힘껏 즐기는 사람을 Big Birthday Person이라고 부른다던데, 난 Small 아니 Tiny Birthday Person이다. 그 시간을 특별하게 보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나에게 생일은 그냥 평범한 하루일 뿐이다. 곁에 누가 있든 없든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맛있는 거 먹으면서 즐겨하던 일을 또 하는 날일 뿐이다.


 타국에서 맞이하는 생일이라고 해서 역시 다를 건 없었지만, 그래도 신나는 일 하나쯤은 있는 날이었으면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조금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코스 요리를 먹은 후 나를 위한 쇼핑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짐을 줄이기 위해 버려도 되는 옷들 위주로 챙겨갔더니 집에서보다 10배는 추레한 몰골로 여행지를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여행객들(특히 한국인들)은 어찌나 한껏 꾸미고 있던지 순간순간 의기소침해지곤 했는데, 오늘은 분위기도 환기할 겸 멋들어진 패션 아이템을 구입하기로 다짐했다.


 사전에 관광스폿을 오가면서 눈독 들여둔 가게들을 탐방하며 이 옷 저 옷을 대보고 있는데, 갑자기 거리에서 확성기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서니 긴 행렬의 시위대가 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색다른 풍경이라 무심코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 이방인에게는 하나의 구경거리가 돼버리는구나 싶어 조심스러워졌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페르난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그들이 거리에 나선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시위대가 든 피켓 속 문구들을 읽고선 주택 관련 문제라고 간단히 설명해 줬다. 그들은 월급을 다 털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집세를 규탄하며 시나 정부에 주거권을 보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시위대


 포르투에서 했던 도시투어 가이드분이 현지인들의 삶의 터전이 점점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전에는 모루공원을 중심으로 관광지가 모여 있는 아랫동네에 대학생들이 모여드는 활기찬 거리와 예술가들이 꾸려가던 감각적인 느낌의 골목들이 많았고 저녁이 되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흥으로 동네가 가득 찼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 거리를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90% 이상은 관광객이라 단언할 수 있다고. 현지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물가도 집세도 치솟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포르투갈은 뚜렷한 활로를 찾지 못한 채 관광업으로 버텨나가는 중이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하겠다는 명목으로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골든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장기 체류가 가능하고 각종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특별 비자이다. 그렇게 포르투갈로 들어온 사람들은 부동산을 사들여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단기 임대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관광업이 호황을 이루며 그들은 큰돈을 만지게 되었고, 덩달아 임대료는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어마어마한 상승폭은 당연히 지역민들의 임대료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포르투갈의 집값 역시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추세여서 부동산 거품을 우려하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네 제주의 모습과 닮은 꼴이다. 지금은 다소 가라앉은 모양새지만 제주도 땅 역시 중국인 투자자들에게 팔려나가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숙박비와 식사비 등으로 체감할 수 있는 지역 물가가 너무 올라 자국민들마저 차라리 이 돈으로 동남아나 일본으로 여행 가는 게 낫겠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모습도 그러하다. 언제나 그렇듯 몰려든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다.


 포르투를 여행하며 마주친 한국인들과 이 도시를 조금 더 일찍 방문했으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물론 빼어난 풍광을 지닌 이 멋진 도시는 나에게 인생 최고의 야경을 선물해 줬고 모두가 예견했던 것처럼 나는 이곳과 여지없이 사랑에 빠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도시가 큰 변화의 흐름 안에 있고 꽤 큰 진통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 역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20년 뒤 30년 뒤가 어떤 모습일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는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을 테지만, 가끔은 확고한 철학이나 원칙 없이 변화에 휩쓸려 지역 주민들이 그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고 결국 그 지역의 정수마저 가려져 관광객들이 외면하는 일들도 벌어지기 때문이다.

  

모루공원의 앞과 뒤


 도오루 강을 조망할 수 있는 모루공원은 명실상부 포르투 최고의 여행 스팟이다.  모두가 이곳에 모여들어 낭만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버스킹 공연을 감상한다. 술과 간식거리를 즐기고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면서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한다.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강변의 풍경에서 잠시 눈을 떼고 공원 뒤쪽으로 몇 발자국을 내디뎌 보자. 가족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 어린 아이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어르신들이 거기에 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바람결에 흩어진 지 오래이다. 몸을 돌려 갑자기 마주하게 된 현지인들의 일상 풍경 앞에서 나는 이곳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모루공원 앞과 뒤가 품고 있는 이 대조적인 모습은 지금의 포르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관광객들의 여흥 뒤에는 언제나 현지인의 일상이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성장을 도모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선 밖에서 그저 들여다보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관찰자는 그들이 부디 현명하게 상황을 풀어가기를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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