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ugal 13) 성 조르제 성과 MAAT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구글맵만 믿고 걷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일상에서 나는 생각을 정리할 겸 운동도 할 겸 주로 걸어서 이동하곤 하는데(물론 그게 가능한 거리 안에서겠지만), 이는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중교통 이용 방법을 공부하는 일이 귀찮기도 했지만, 낯선 도시의 거리를 쏘다니는 것 자체를 여행의 큰 즐거움이라 생각하는 나로서는 사실 당연한 선택이긴 하다.
하지만 리스본에서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무심코 들어선 길 앞에 끝없는 언덕길이 펼치지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구글맵으로는 15분 거리지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은 이미 30분이 훌쩍 지나 있다. 숨을 고르면서 투덜대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감탄만 나오는 장관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리스본의 도시 풍경은 실로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리스본 관광 책자나 추천 여행지 리스트에는 전망 맛집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곳이 많다. 아예 멋진 풍경을 즐기라고 만들어 둔 전망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위쪽 전망 구역이나 카르모 수녀원 쪽도 선물 같은 곳들이다.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바로 상 조르제 성(St. George's Castle)이다.
알파마 지구 꼭대기에 위치한 이곳은 리스본 시내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어 오랜 세월 요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에서 도시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이곳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경험은 아주 특별하기에 리스본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늦은 점심을 먹은 후 4시쯤 상 조르제 성으로 출발했다. 표를 구매한 후 성 주변 상점들도 기웃거리고 성곽 내부도 둘러보다 보면 하늘의 색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고 전자책을 꺼냈다. 옆에 앉은 외국인 가족과 감탄을 담은 짧은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고 잠깐 머물렀다 가는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다가도 시선은 자석에 끌린 듯 풍경으로 돌아간다. 어느새 사위가 황금빛으로 가득 차 있다. 두 시간가량 그곳에 머물며 내 인생에 이렇게 서정적인 순간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 정성껏 즐긴 노을은 내 마음속 깊은 평화를 남기고 떠나갔다.
4월 25일 다리와 테주 강의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싶다면 예술 건축 기술 박물관(MAAT)을 방문해 보자. 벨렝지구 쪽으로 이동하는 길에 위치한다. 실험적인 작품들이 있는 내부 전시도 볼만 하지만, 이곳은 무엇보다 독특한 디자인의 외관이 인상적이다. UFO같기도 하고 선장의 모자 같기도 한 박물관 지붕으로 올라서면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린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이것(?)을 타고 항해를 떠나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도 모른다. 리스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는 이곳의 석양 역시 아름답다고 하니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