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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Aug 16. 2024

포르투갈에서 풍요로운 예술 탐방을

To Portugal 11)  포르투갈 미술관 추천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아는 만큼 보인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거듭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휘황찬란한 교회 앞에서, 감상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 없는 명화 앞에서 나는 늘 스스로의 무지함을 탓한다. 내가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눈앞의 작품을 조금 더 깊이 섬세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많이 봐야 알게 되기도 한다. 어떤 것에든 처음은 있다. 여러 차례 보다 보면 자신의 취향을 알 수 있게 되고,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겨나기도 한다. 가끔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상 앞에서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전율을 느끼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새로운 세계에 속절없이 빠져드는 건 시간문제이다.



 

 난 혼자 전시회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만의 페이스로 천천히 작품들을 둘러보다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 앞에서는 오래 머무르기도 한다. 갤러리를 나서며 단 한 작품이라도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작품이 연결고리가 되어 세계가 확장되면 즐거운 일이지만 다음날이 되어 새까맣게 잊어버려도 상관없다. 물론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내가 이 돈을 주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허탈해질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런 투덜거림 속에서도 내 안에는 예술에 대한 그리고 나의 취향에 대한 데이터들은 쌓이고 있음을 믿는다.


 나는 나에게 예술이 주는 행복을 만끽할 기회를 주고 싶다. 넓고 무른 마음으로 예술의 세계를 즐겁게 유영하면서 한순간 빠져 드는 운명 같은 순간을 기다리고 싶다. 서서히 물들어 가며 호감을 겹겹이 쌓아가는 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행을 할 때 꼭 그 도시의 미술관이나 음악회를 찾아가는 이유이다.


 리스본과 포르투에서도 여러 미술관을 방문했다. 굴벤키안 미술관, MAAT(예술건축기술박물관), 국립고대미술관, 베라르두 미술관,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 국립미술관, 포르투 사진미술관, 세랄베스 미술관까지. 그중 가장 으뜸은 베라르두 미술관과 굴벤키안 미술관이다.


* 포르투갈 추천 미술관 


1. 베라르두 미술관(Museu Colecao Berardo)

베라르두 미술관 입구. 야외 정원에서는 발견기념비를 볼 수 있다.


 베르나두 미술관은 벨렝지구의 제로니무스 수도원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구글 지도에서는 MAC/CCB 현대미술관(Museu de Arte Contemporanea)로 찾으면 된다. 포르투갈 사업가 조 베라르두(Joe Berardo)가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컬렉션으로 시작한 곳으로 지금은 무려 4,000점 이상의 현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건물의 구조가 다소 특이한데, 1층은 매표소이고 전시실은 2층과 지하 1층으로 나뉘어 있다.


 2층은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작품들을 시대별, 사조별로 훑어가며 전시하고 있어 시간을 들여 천천히 감상할수록 만족도가 높다. 유명세에 약한 나는 피카소, 호안 미로,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아래 사진은 그날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어 오래 들여다보게 만든 작품들이다.


(좌) Jack Smith <Child Writing>(1964), (우) Cesar Baldaccini <Expansion Valise>(1970)


(좌) George Segal <Flesh Nude behind Brown Door>(1978), (우) Niki de Saint-Phalle <La Mariée>(1963)


 지하 1층에서는  60년대 이후 최근까지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조금 더 흥미롭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지하 1층 전시실의 다양한 작품들


2. 굴벤키안 미술관(Museu Calouste Gulbenkian)


 리스본을 사랑한 아르메니아 석유 부자 굴벤키안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그는 40년간 동서양의 회화, 가구, 황금 마스크, 왕실 전통 복식, 도자기, 유리세공품 등 여러 예술품들을 수집했고, 자신의 고향과 꼭 닮은 도시에 모든 것을 남겼다.


비오는 날 방문해서인지 매우 운치있는 미술관


 전시품이 아주 다양하고 방대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게 된다. 리스보아 카드로 20% 할인받을 수도 있지만, 일요일 오후 2시 이후에는 무료로 개방하니 그 시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물론 사람들로 인해 매우 붐비지만 말이다.


(좌) 서전트 (중) 마네 (우) 부셰의 작품들(제목들이 너무 길어서...)


+


 포르투갈에서 클래식 공연을 하나 보고 싶다는 생각했다면 포르투에 있는 카사 다 뮤지카(Casa da Musica)에 가기를 권한다. 이 공연장은 네덜란드 건축가가 지은 것으로 따로 건물 투어를 진행할 만큼 알아주는 포르투갈 대표 현대 건축물이다. 이왕 들르기로 했다면 건축 양식만 보지 말고 공연까지 즐기고 오자. 이곳에서는 양질의 클래식 공연을 저렴한 금액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매 가능하다. 나는 드비쉬의 <달빛>을 들을 수 있는 일요일 낮 공연을 예매했다. (내가 떠나고 일주일 후 조성진의 공연이 펼쳐진다고 해서 정말 속상했다. ㅠ.ㅠ)



 공연은 독특한 형식이었다. 지휘자가 포르투갈어로 아주 길게 곡에 대해(아마도?) 설명한 후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했고 감상에 깊이 빠지려고 하면 다시 그분께서 마이크를 잡고 설명을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포르투갈어의 폭격 속에서 졸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이 참 귀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공연장 뒤쪽에서 쏟아지는 햇빛 덕분이었다. 이곳에는 클래식 공연이 주는 엄숙함 따위는 없다. 세련되고 멋들어진 무대 위의 단원들은 모두 자유로운 복장이었으며 각자의 악기를 조율하다가도 지인이 입장하면 무대 끝으로 성큼 걸어와 그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 관객의 대부분은 동네 사람들인지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듯했다. 무대와 객석도 충분히 가까워 연주자나 지휘자의 표정도 쉽게 읽을 수 있었는데, 느슨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나에게 클래식 공연장은 늘 긴장하며 격식을 차려야 하는 곳이며, 교양 없어 보일지도 모르니 최선을 다해 하품을 참아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달랐다. 캐주얼하게 클래식을 즐기는 일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한낮의 선율은 틀에 갇혀 있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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