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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끈 Jul 12. 2024

포르투갈 사람들이 건네준 온기

To Portugal 10) 내가 만난 포르투갈 사람들

* 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


 여행지의 인상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뭘까? 언제나 그렇듯 결국은 사람이다.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도 그 어떤 절경도 그것을 공유하는 또는 그것을 제공해 주는 사람들에 의해 감동이 반감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기대보다 초라한 것이라도 특별한 사람들 덕분에 마음에 깊게 남기도 한다.


 나에게 포르투갈에서의 인연들은 체온보다 조금 높은 온도로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그들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상대를 천천히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 주저 없이 호의와 친절을 베푼다. 그리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많아 언제나 적절한 안전거리가 필요한 나에게 그들은 꼭 맞는 온도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이 참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 가장 특별한 사람은 포르투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의 주인 페르난다이다. 에어비앤비라는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도, 현지인과 공간을 나눠 쓰는 일도 처음이라 그녀를 대면하기 전까지는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그녀가 출근한 사이 내가 집에 도착하게 되는 일정이라 집 열쇠는 근처 카페에서 찾았는데, 그녀는 혹시나 내가 어려움을 느낄까 카페에 대한 정보, 카페에서 집으로 오는 길, 열쇠로 문을 여는 방법, 방 블라인드를 올리는 것까지 단계별로 일일이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충실한 가이드를 따라 도착한 그녀의 집은 꼭 그녀와 닮아 있었다. 정갈하면서도 감각적이며 무엇보다도 따뜻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머무는 열흘간 그녀는 늘 자상하게 나의 안부를 묻고 도울 일이 없는지를 살폈다. 낯선 도시에서 나를 챙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꽤 든든한 일이었다. 매일 저녁 그녀에게 내가 경험한 그녀의 도시 곳곳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즈음 생일을 맞이한 그녀에게 감사함을 담아 작은 선물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것을 주고 싶었는데 챙겨간 것 중에 마땅한 게 없어 현지 한인마트에 들러 약과 한 통을 구입했다. 선물을 받은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한 번은 그녀가 종종 찾는다는 바다 마토지뉴스에 함께 가기도 했다. 거실에 놓여 있는 그녀의 서핑 보드를 보며 스쳐 지나가듯이 나눈 대화였는데, 그녀가 잊지 않고 자신의 차로 나를 그곳에 데려다주었다. 이후 일정 때문에 그녀는 나와 짧은 산책만 함께 할 수 있었지만, 덕분에 멋진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맛있는 식사도 즐길 수 있었다.


그녀의 집, 그녀에게 선물한 약과, 그녀가 데려다 준 바다


 그녀뿐만 아니라 포르투에서 나를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포르투에서 파두 공연을 보는 날이었다. 피로가 쌓인 상태였는데 공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시내 곳곳을 쏘다니느라 더 지쳐가고 있었다. 겨우 잘 버텨내고 공연 시작 15분 전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간판에 불빛은 꺼져 있고 관객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곧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 공연을 예매한 사람 수가 너무 적어 공연은 취소되었고, 당연히 사전에 이메일로 상황은 전달되어 다들 일정을 변경했는데, 나만 이메일을 읽지 않아 걱정했다고. 뭐 어쩔 수 있나. 내일 공연을 보러 오기로 협의하고 돌아서는데 그 순간 공연을 보겠다고 기다렸던 시간의 피로가 눈덩이처럼 커져 나를 덮쳤다. 숙소까지 돌아올 힘이 남지 않아 홀린 듯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물론 주변에 로컬 커피 맛집이 즐비했을 테지만 그걸 검색하고 잘 주문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소파에 푹 기대어 주문한 라테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어영차 몸을 일으켰다. 라테잔을 내미는 바리스타의 표정이 어째 묘하게 수줍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은 내가 방금 받아 든 라테잔. 거기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김"이 쓰여 있었다. 한글을 배우는 중이라며 자신이 제대로 쓴 게 맞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그녀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주 잘 썼다고 이건 정말 완벽한 "김"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녀가 살짝 챙겨준 사탕 하나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나니 가라앉았던 기분이 어느새 두둥실 떠올랐다. '내가 여기서 대체 혼자 뭘 하고 있는 거지?' 스멀스멀 올라오던 부정적인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는 관광객에게 성큼 다가와 말을 건다. 그들과 비교하며 포르투갈 사람들을 무뚝뚝하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들여다보고 겪어보면 다르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와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해 주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지만, 평소에 경험하지 않았던 텐션이라 한 두 걸음은 물러서게 된다. 내가 경험한 포르투갈 사람들은 충분한 호의와 친절을 베풀되 적정 거리에서 따뜻하게 지켜봐 주는 사람들이었다. 과하지 않아 도리어 상대를 안심하게 만드는 온도, 그것이 포르투갈이 건네준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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