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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13. 2020

마음의 출발선

현실은 내 생각의 반영이라고 한다. 내가 처한 상황은 모두가 내 생각의 집합체이며 그에 따른 과거의 내 선택들의 결과물 것이다.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았기 때문에 수년간 현실을 살아가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딱히 큰 변화 없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만 하느라 그 시기에 무엇이든 실행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던 내 생각은 내 현실에 고스란히 걱정할 일만 창조해 내었다. 그 또한 내 생각이 만든 현실이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에게만 모든 게 힘든 것 같고, 유독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오래도록 고민하면서 항상 외부에서 애써 찾으려 했던 것을 모두 내려놓고, 나의 내면으로 모든 관심을 돌렸다. 분명 내 안에서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었다. 그동안 종교도 없었고 어떠한 절대적인 신의 존재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오롯이 나 혼자 세상과 맞서는 느낌이었다. 삶의 정답처럼 알고 있었던 노력 하면 이루어진다 말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들어맞는  같지 않았다. 그럼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인가? 그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분명 개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책이었다. 책을 통해 나를 돌아보며 성찰하고, 다른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고 수용하기로 했다. 도교, 불교를 기반으로 한 마음의 다스림, 영적인 깨우침을 얻은 현자들, 그리고 보다 더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심리학을 토대로 깨닫고 경험하면서 어떤 태도로 나의 현실을 창조해나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내면의 불안, 걱정은 모두가 결핍에 대한 생각이었고 이는 더 큰 결핍을 나의 현실에 투영시켰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미래에 대한 걱정을 내 안에 담지 않았다. 타고난 나의 성향과 성장 환경이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현실'은 모두에게 처음부터 동일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는 부유한 가정에서 풍요롭게 태어나고, 또 어떤 아이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결핍된 상태로 태어난다. 이 두 아이는 처한 환경이 다르게 태어나고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마음 상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도 달라진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마음이 여유로울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가질 수 없는 것보다 가질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것은 당연히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 믿기 쉽다. 또한, 자신의 상황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어렵지 않다. 즉, 결핍의 상태에 빠지기 힘든 것이다. 풍족하게 많은 것들을 누리는 것이 익숙하고,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그럴만한 들을 누릴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 믿게 된다. 이것은 그의 무의식 세계에 입혀지게 된다.

그럼 반대의 상황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에게는 풍족한 것이 어색하고 낯설다. 좋은 것들은 왠지 스스로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 좋은 것들을 보고, 입고, 먹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고 마냥 어색하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힌 것처럼 그에게는 그런 것들을 누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의 무의식 속에는 스스로가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없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가 성장해 가면서 마주하는 혹독한 상황 속에서 좋은 것들은 그에게는 동떨어진 것으로 취급되어 그것들과는 점점 멀어진다.


물질적인 여유로움으로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기도 하는 이 세상에서는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두 아이가 같은 마음 상태로 성장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출발선부터 다른 두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할까?

우리나라의 교육은 항상 기술 발전의 현주소보다 뒤처지는데, 그 이유는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도태되는 경우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학습적인 측면에서 서울과 같은 도시에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활용하지만, 지방 산골짜기에 있는 아이들은 아직까지 스마트폰도 접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이유에서 공교육은 항상 뒤처지는 아이들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아이들에게는 학습적, 또는 물질적인 지원만큼이나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교육을 접하게 해 주는 것이 그들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욱 소중하고 가치 있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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