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흔두 번째
늦게까지 밖을 돌아다니다가 새벽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방안에 들어서자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나의 작은 새미는 구석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나에게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들지도 뛰어오르지도 않았다. 겨우 앞다리로 버티고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밥상으로 쓰던 책상은 넘어져 있었고 밥그릇과 반찬들은 사방에 흩어져있다. 평상시 같으면 화가 나서 새미를 혼낼 생각 먼저 했겠지만 그날은 다른 분위기가 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음식물들 잔해 너머로 앉아있는 새미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1평 남짓한 옥탑방안이 한없이 늘어나고 아무리 가까이 가도 새미가 손에 닿지 않았다.
겨우 손이 닿은 나의 강아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도 침만 흘릴 뿐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나는 수건으로 새미를 감싸 안고 서둘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그래도 가끔 가던 병원이라 나와 새미를 알아본 선생님은 재빨리 강아지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장황한 설명을 듣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말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덧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회사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급한 일 있으면 가보라고 했다.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회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어차피 아르바이트였는데, 가지 않아도 날 대신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곳이었는데 황망한 정신은 판단 착오를 일으키고 회사에 도착한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제대로 기억해 내지 못했다.
일하면서 울고 있었나 보다. 나를 본 선배직원이 내 얘기를 듣더니 빨리 병원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어느 병원이냐고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는 나를 탈의실로 데리고 가서 가방을 꺼내서 매장밖으로 나를 보내주었다. 어느덧 두시가 넘었다. 벌써 두시가 넘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새미를 찾았다. 진료실 유리창으로 그가 보였다.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선생님이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타박하며 나를 진료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새미의 배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죽지 않아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보고 한번 짖고는 다시 풀썩 쓰러졌다. 아직 기운이 있어 다행이야 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새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쓰다듬어도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거기서 새미를 쓰다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한참 후 본인들이 뒤처리를 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 새미를 수건에 싸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옥탑 위 하늘은 까맣게 변해있었다. 새미를 안고 겨우 전등을 켜고 바닥에 흩어진 음식물을 지나 이불 위에 새미와 같이 앉았다. 아무리 쓰다듬어도 깨어나지 않는 아이. 어젯밤에 내가 먹다가 나간 비빔밥의 잔해들 바닥에 흩어져 아우성대며 날 쏘아보고 있었다. 고작 비빔밥 따위가.
난 밖에 나가지 못했다. 완전히 딱딱해진 새미는 쓰다듬을 때마다 마치 나무기둥에 누군가 가짜로 붙여놓은 터을 쓰다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쓰다듬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점점 딱딱해지는 그 촉감, 차가움, 이상한 냄새.
나중에 진작에 헤어졌던 나의 연인이 와서 새미를 데리고 갔다. 그 사람과 같이 키웠던 강아지였다. 그 사람은 새미를 어느 언덕에 묻었다고 했다. 그곳이 어디냐고 묻지 못했다. 축 늘어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다가 그 사람은 밖으로 나가버렸다.
며칠 동안 집안에 있다가 깨어난 나는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밥, 계란 후라이, 김치, 고추장, 누가 주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물들, 그리고 참기름 냄새. 그 모든 것이 죽음의 냄새와 합쳐졌다. 바닥에 묻은 붉은 고추장들은 닦아도 닦아도 붉게 자국이 남았다. 기껏 비빔밥 따위가 지워지지 않았다. 난 장판을 전부 걷어 내고 새로운 장판을 깔았다. 무거운 장판을 혼자 낑낑대며 옥탑방까지 가지고 와서 방에 넘치도록 깔았지만 이상한 흔적은 없어지지 않았다.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고추장이 들어가는 나물 비빔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하지만 계속 살아가다 보니 땅에 묻던 마음에 묻던 묻는 것이 늘어난다. 수십 년 동안 강아지뿐만 아니라 더 한 것도 묻어야 했다. 망각은 정말로 신의 선물이다. 묻고 또 묻는다고 산이 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높이가 되면 다시 꺼져서 평평해진다.
화창한 6월의 오늘, 다 같이 주문한 비빔밥이 나왔을 때 난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위에서부터 떠먹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었을 때 별로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비빔밥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고추창도 참기름도 없이 밥과 나물을 젓가락으로 먹기 시작했다. 화창한 날에 어울리는 밥이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내 마음에 묻힌 것들이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