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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규 May 11. 2022

어느새 아담한 당신

 음 글쎄, 당신을 알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첫울음을 터뜨리던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서툰 입 모양으로 아빠라는 단어를 흉내 내던 순간이었을까. 아무튼간에 당신은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내 삶에 들어와 가장 큰 부분을 당연하게 차지하고 있다.


 유치원에 다닐 땐 아빠가 무서웠다. 투정 부리거나 잘못을 하면 벌을 서거나 엉덩이를 맞았는데 그럴 때면 아빠가 꼭 도깨비로 변신을 한 것만 같았다. 천벌같이 무시무시한 혼쭐을 당하고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울고 있으면 아빠가 다시 와서는 꼭 안아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차피 안아줄 거면서 혼은 왜 내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5분 전까지만 해도 도깨비 같던 아빠의 변신이 무서워 차마 말로 내뱉지 못하고 꼭꼭 씹어 소화시켰다.


 학생 때는 아빠가 낯설었다. 바쁜 일 때문에 자주 얼굴을 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항상 신경이 날카로워 있었다. 엄마랑 크게 싸우는 날이면 동생과 방에 들어가 쥐 죽은 듯이 눈치를 봤고 그날은 온종일 집안이 싸해지는 하루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드라마 속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서도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날에는 매번 치킨 같은 걸 사와 잠에든 나를 깨웠다. 그럼 자는 애를 왜 깨우냐며 말리는 엄마의 목소리와 잠에서 억지로 깨 짜증이 나면서도 고소한 후라이드 냄새를 맡고 입맛 다시던 그때의 비몽사몽한 풍경이 떠오른다.


 한때는 마냥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아빠와의 거리가 가까워진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딱히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깨비 같은 화를 내면서도 나를 꼭 안아주던, 바쁜 일에 치여 살면서도 술에 취한 퇴근길의 목적지가 치킨집이 되었던 서툰 그 시절의 아빠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아빠가 내 삶에 스며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내가 기억도  나는 나의 유년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잘못된 길로 들어 설까 두려워  무섭게 화를 내는 사람이고 덕분에 가장 의지하고 기댈  있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보다 단지  걸음 앞서가고 있는 남자이자 잔병치레가 조금 많은 아저씨일 뿐이다. 보일   듯한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빠는  크면서도 작다. 도깨비 같아 보이던 근육은 병정 인형처럼 메말랐고 어느새 주름과 검버섯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점점  커지고 싶다. 점점  커져서 점점  작아지는 당신의 뒷모습을  팔로 가득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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