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플콩 Feb 11. 2022

베란다 괴물과 믹스커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나의 하루



"으아아아!!" ,"꺄!!!아하항" 집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소리이다. '엄마 베란다 괴물 놀이하자!'라는 아들의 말에 끙 소리가 절로 나온다. 플래너를 쓰고부터 10-12시 까지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휴식을 취하거나 집안을 정리했고 도서관에 다녀오거나 장도 봤다. 가장 중요한 목요일엔 어김없이 줌을 켜놓고 글을 썼다. 코로나가 심해져도 아이가 울어도 억지로 억지로 어린이집에 밀어 넣으며 내 시간을 고집했는데 설 연휴 이후로는 그럴 수가 없게 됐다.  급격히 증가한 확진자 수 그럼에도 별일 없겠지 하고 보냈던 어린이집에서  등원한 아이의 부모가 코로나 확진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문자를 받고 밀려오는 분노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내 아이가 코로나에 걸리고 나에게 옮기고 남편에게 옮기고 그럼 또 출근한 남편이 직장동료에게 옮겼을 거라고 생각하니 도대체가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한참 문자를 곱씹다가 남편에게 내용을 보여주니 의외로 담담하게 '그래? 어쩔 수 없지. 결과 나오면 알려줘.'라고 남일 얘기하 듯한 답변에 왜인지 나도 진정이 되어 버렸다.


별 일 아닌가? 하긴 주말 지나 월요일인데 아직까지 별 반응 없는 거 보니 괜찮은 건가? 이미 벌어진 일 내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화낼 필요가 없었다. 쨋든 그때부터 아이는 집에서 가정보육 중이다.


한동안은 나도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이것저것 찾아보고 미술놀이도 하는 등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엔 그렇게 해주는 것도 힘들어서 대부분 유튜브를 보거나 아이 스스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그것도 지루할 땐 나에게 와서 '엄마 베란다 괴물 놀이하자, 이번엔 엄마가 괴물이야.'라고 말하고 베란다로 뛰어들어가 버리면 오버스럽게 큰소리를 내고 최대한 몸을 부풀린 뒤 아이에게 달려간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괴물을 물리치려는 아이에게 얻어맞기 때문에 요령을 터득한 나는 등을 보이면서 아이에게 쿵쿵 달려가 겁을 주기도 하고 역할을 바꿔 아이가 괴물이 되기도 한다.


돈 한 푼 안 들면서 아이는 기분이 좋고 실컷 뛰어놀았기 때문에 쉽게 지쳐 낮잠도 잘 잔다.

(낮잠을 자면 밤잠을 안자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그나마 아이가 낮잠이라도 자주면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달콤하다. 평소 같으면 아이랑 같이 누워 잘 수도 있지만 잠들었다 치면 바로 방문을 닫고 나와 밀린 집안일을 하고 도서관에 달려가 책을 반납한다. 마트에서 간식거리와 저녁거릴 사서 들어와 정리하고 커피믹스 한 봉지를 뜯는다. 한동안 믹스 끊었었는데 최근 들어 (캐시) 잔소리가 심해진 남편을 피해 누리는 자유. 20개 4,900원의 여유라니. 어떻게든 행복을 찾아내는 나란 녀석.

너무 뜨거운 건 싫으니 커피를 타놓고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미지근해진 커피를 삼키며 그 단맛에 이것도 나름 괜찮지 않나? 하는 착각을 하지만 '엄마!'라고 잠에서 깨 나를 찾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너 빨리 유치원 가^^...


지금은 글을 쓰면서 삼겹살을 구워 아이의 아침을 차렸고 어린이집에서 확진된 부모의 아이도 확진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집 근처 신속항원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전화도 해봤으니 글을 마무리하면 아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해야지. 얼마나 어르고 달래야 할지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오늘도 기꺼이 너와 베란다 괴물 놀이를 하며 지루한 긴긴 시간을 즐겁게 보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를 대하는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