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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u Jan 01. 2021

커피 이야기
- 20년 전, 나의 첫 스타벅스


나는 1980년생이다. 대학생이 될 때까지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세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조차 "응? 그랬단 말이야?" 하고 놀랄법한 사실이지만 돌아보면 본인들 역시 성인이 되어서야 그 이름을 처음 접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커피란 레스토랑 분위기가 나는 커피숍에서 블랙으로 또는 종이에 포장돼 있던 각설탕을 타서 티스푼으로 저어 마시는 것, 아니면 자판기에 백 원짜리를 몇 개 넣어 뽑아 마시는 것으로 여겨졌었다(고 기억한다). 커피숍이 프랜차이즈가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해본 사람은 아마도 극소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1일 1진한커피'가 필수인 지금은 지난날의 내가 무슨 수로 카페인 없이 입시를 준비해 대학생이 되었으며, 리포트를 쓰고 시험을 치르면서 취업까지 준비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무엇이든 그것이 없던 시절에는 없는대로도 그럭저럭 살아졌겠지만, 커피 없이 그 많은 집중력이 필요한 일들을 해냈다니, 그래서 내 이해력은 거기까지였나보다 싶기도 하다.

       



나에게는 커피 하면 떠오르는 오래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대학교 2학년 또는 3학년 때였을 거라고 기억한다. 당시 나는 부산대학교 앞에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수다를 떨만한 적당한 카페를 찾다가, 어딘가 굉장히 새롭고 근사한 느낌이 드는, (당시에는 쓰지도 않던 표현이지만) 세상 힙해 보이던 처음 보는 장소에 발을 들였다.


그때 내가 그곳에서 본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색'이었던 것 같다. 사방으로부터 각인되는 의미심장한 어떤 색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던 기억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데, 그건 아마 그곳의 간판과 로고, 조명과 벽, 직원이 두르고 있던 앞치마의 색을 포함한 몇 가지 의도된 빛깔의 조합이었을 듯하다. 어쩌면 그곳에 들어선 순간 나에게 들이닥친 향과 음악, 커피 제조기에서 나던 싫지 않은 소음들의 기억이 색의 이미지로 버무려져 한꺼번에 머릿속에 보관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메뉴판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해독할 수 없는 문자들 앞에 망연해진 채 정지해 있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바라보았자 그 이름들의 의미를 알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우리 중 커피 취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있었다 한들 어느 나라에서 유래했는지 모를 그 길고 긴 이름들은 너무나 생소했다.


그런데 그중 단 하나, 천만다행히도 우리에게 익숙한 메뉴가 있었다. 핫 초콜릿. 5명쯤 되었던 우리들 무리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으로 메뉴를 통일하듯 단체로 핫 초콜릿을 주문했다.


당시 우리의 주문을 받았던 남자 직원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굉장한 사명을 갖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은 사람이었다. 그는 20여 년 전 그 유명한 커피전문점이 대한민국에 처음 깃발을 꽂았던 그 시점에 '바리스타'라는 생소한 직업을 택해 커피 문화를 소개하고 선도했던,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인물들 중 한 명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한 무리 대학생들의 핫 초콜릿 단체주문을 진심으로 참을 수 없어했다. 그는 우리의 선택을 바꾸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커피 메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런 맛을 선호하시면 이 메뉴를, 저런 느낌을 좋아하시면 저 메뉴를, 이 커피는 이것을 기본으로 이것이 더해져 만들어지며 저 커피는......


우리는 이미 핫 초콜릿을 (어쩔 수 없이) 선택했음에도 커피 메뉴 중 하나를 다시 선택할 것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왜 그런 맛과 그런 풍미가 나는 커피를 '굳이' 마셔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달달한 핫 초콜릿을 홀짝이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더욱 중요했던 건, 그 커피에 그런 맛이 난다 한들 스스로가 그런 맛을 원하는지 어떤지를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어떤 맛을 원한다는 건 그 맛을 기억하거나 상상할 수 있을 때의 일이지, 그래 본 적이 없는 맛을 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대를 앞서가는 음료와 공간 문화의 선구자였던 당시의 그 바리스타는 우리에게 친절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사명대로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반드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가 우리의 선택에 대해 속으로는 거의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나도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 카페의 명망과 역사, 그리고 그곳 고유의 에스프레소가 얼마나 멋진 풍미를 가졌는지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모든 근사한 에스프레소 메뉴를 외면하고 핫 초콜릿을 고르는 우리의 무지에 그는 얼마나 통탄했을까. 하루 종일 카라멜 마키아또와 카페 모카가 어떤 맛이 나는지,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가 어떻게 다른지를 일일이 설명하고 나면 컵의 사이즈를 고르라는 말에 또 한 번 고민을 시작한 손님들을 기다려주는 일은 또한 얼마나 피곤했을까.      


그렇다. 그때 내가 들어갔던 카페가 바로 스타벅스였다. 당시로서는 완전한 신세계라 여겨질 만큼 예쁘고 우아했지만 어떤 메뉴도 고를 수 없었던 곳. '너희들이 알던 그것은 커피가 아니다', '이것이 진짜 커피다'를 알리기 위해 조바심을 내던 초창기의 바리스타가 열정적으로 일하던 곳.  


-2003년 12월, 구형 카메라로 찍은 밴쿠버의 어느 스타벅스-


 

그렇게 내 생애 최초의 스타벅스 방문을 마치고도 -그날 나는 끝내 핫 초콜릿을 고집했고, 몇몇 친구는 그가 추천했던 커피 메뉴를 맛보았다- 여전히 아메리카노가 뭔지 모르고 살던 내가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건 순전히 일 경험이 필요해서였다. 나는 그때 뭐라도 하면서 돈을 벌어보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루저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으로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휴학생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 채 며칠 동안 출입문에 붙어 있던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유심히 지켜보다 용기를 내어 들어간 나는, 집이 가까운 휴학생이라는 이유로 단번에 그 자리를 얻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장님은 내게 커피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지, 심지어 평소에 커피를 마시는지 등의 질문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긴 그 시절에 커피 취향이 있는 대학생을 뽑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으리라.   


첫날엔 메뉴를 외웠다. 카페마다 조금씩 다른 이름을 붙이긴 하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메뉴들을, 그때의 나는 그야말로 교과서의 지명을 외우듯 외워야 했다. 사장님은 나에게 각각의 커피의 특징을 설명해주면서 메뉴를 하나씩 만들어 보이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가 내려오고, 뜨거운 물과 함께 아메리카노가 만들어지고, 쉭쉭 소리를 내면서 스팀밀크가 완성되고, 시나몬을 톡톡 쳐 카푸치노, 시럽과 함께 캬라멜 마키아토, 휘핑크림을 올려 카페 모카...... 하루 동안 내가 눈으로 보고 맛을 느껴본 그 많은 공짜 커피들 앞에서 여전히 그것들이 맛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이던 나를 보며, 사장님은 내가 얼마나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을까.


사장님은 말했다. "요즘 이미 서울에는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손에 들고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것을 알고 있다니, 사장님도 선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이 그러든 말든 손에 쥐는 각도에 따라 거품이 나기도 하고 나지 않기도 해 당황스럽던 스팀밀크와 어떻게 해도 사장님처럼 온전한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아 손님 앞에 내놓기가 너무나 민망했던 휘핑크림은 날마다 나를 좌절시켰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갔다. 회사로 치자면 수습기간이 끝나고 이제야 한숨 한 번 얕게 내뱉을 수 있을 만한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이미 뜨거운 커피를 더 뜨겁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손님의 까다로움을 내심 경멸하는 와중에도 에스프레소 향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나도 모르는 새 서서히 내 몸과 정신을 사로잡고 있었다. 갑작스레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어 일을 그만두었을 때쯤의 나는 놀랍게도 커피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우리 카페에서 일을 마치고 나면 당시 드문드문 생겨나기 시작한 또 다른 카페에 들어가 시험 삼아 그곳의 커피를 마셔보곤 했다. 다른 곳의 커피는 어떤 맛이 나는지, 우리 매장에 없는 이름의 메뉴가 있는지 궁금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커피가 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공간 경험'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즐기기 시작했다. 타인들 속에서 익명으로 홀로, 그러나 충만히 존재하는 즐거움. 요즘은 누구나 이런 즐거움을 카페에서 쉬이 경험할 수 있지만 스타벅스 이전의 세대는 어디서 그런 경험이 가능했을까? 아니, 무리 지어 어울려 다니는 게 당연한 미덕이었을 그 세대에게 과연 '홀로 충만히'가 가능하기나 했을까?          




어학연수를 떠나기 전 나와 친구들은 어느새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스타벅스를 다시 방문했다. 고개를 들어 메뉴를 올려다보았다. 이번에 나는 대부분의 메뉴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조악하게나마 그것을 제조할 수도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심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커피를 좀 알지. 만들어서 팔아보기도 했다구! 이렇게 말이다.         


이것이 내 커피 경험의 시작이다. 마시는 일보다 만드는 일이 먼저였던, 조금은 특별한 경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마음에 조용히 자리 잡은 두 개의 풍경을 떠올리며 여전히 스타벅스 커피를 내려 마신다. 하나는, 커피도 모르고 손도 야무지지 못하고 싹싹하지도 못했던 알바생이 만들어준 커피를 불평 없이 받아 마셔준 손님들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바로 옆 보습학원의 선생님이기도, 동네 아주머니이기도, 하교하던 중학생이기도 했던 그들은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커피 손님들이었다. 그때 내가 그들에게 내놓았던 무너진 휘핑크림이 올라간 카페 모카만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커피값을 몽땅 환불해드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한없이 넓은 마음을 가졌던 그들은 (속으로는 화를 냈을지언정) 괜찮다고 말하며 그 커피를 기꺼이 마셔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토록 최선을 다해 나와 친구들을 고급 커피의 세계로 인도하고 싶어하던, 나의 첫 스타벅스의 그 바리스타가 자아내던 풍경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어 있을 그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그리고 요즘은 어떤 커피와 함께 이 전례 없이 어둡고 이상한 겨울을 보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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