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Jun 23. 2020

맥주순수령에 의해 지켜진 밀맥주의 아이러니



독일 밀맥주는 바이스(바이쎄) 비어 혹은 바이젠이라고 부른다. 바이스(Weiß)는 독일어로 희다(White)라는 뜻으로 남부 독일의 바이에른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고, 바이젠(Weizen)은 독일어로 밀(Wheat)이라는 뜻으로 서부 독일이나 북부 독일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헤페바이스비어(Hefeweißbier) 혹은 헤페바이젠(Hefeweizen)이라고 불리는 맥주는 효모(독일어로 헤페) 침전물이 병 안에 남아 있는 맥주를 말한다. 독일 밀맥주의 특징은 부재료를 전혀 첨가하지 않고 맥주의 4대 재료와 밀만 사용하여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다른 재료보다 밀과 효모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밀은 맥주를 하얗고 부드럽게 만들고, 효모는 바나나와 풍선껌, 클로브와 같은 밀맥주의 특유의 향을 낸다.

밀맥주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이 먹다 남긴 빵이 공교롭게 물에 젖었다. 물에 젖은 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우연히 발효를 일으켰고, 달콤새콤한 액체 빵의 기적을 일으켰다. 이 질척한 음료가 맥주의 원형이고, 빵은 보리와 함께 주로 밀로 만들어 졌으니, 자연스럽게 밀맥주의 역사도 인류가 빵을 먹기 시작한 역사와 같다.


독일의 밀맥주는 함부르크와 같은 독일 북부에서도 있었고, 복 맥주로 유명한 아인베크에도 있었으며, 저 멀리 오스트리아나 네덜란드에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밀맥주의 역사를 다시 쓴 건 아이러니하게 맥주에 밀을 금지한 맥주순수령 때문이었다. 16세기 이전의 독일 남부의 맥주는 점점 형편없어지고 있었다. 맥주를 쓰게 만든다는 이유로 온갖 약초와 정체 모를 재료를 사용했다. 쌉쌀하고 맛좋은 맥주를 만들 수만 있다면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느 누구는 심각한 독초를 넣은 맥주를 마시고 죽기도 하였고, 어느 양조업자는 죽은 자의 손가락을 넣으면 맥주 맛이 좋아진다는 미신 때문에 갓 파묻은 무덤을 파헤치고 다녔다. 이를 막기 위해 1516년, 바바리아(지금의 바이에른) 공국의 공작인 빌헬름 4세는 라인하이츠게봇(Reinheitsgebot)이라고 하는 맥주순수령을 반포하였다. 이 법은 여러 가지 맥주에 관한 법령이 있지만 그중 가장 핵심은 맥주를 제조하는 데 있어 물, 보리, 홉 이외에는 어떤 것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효모의 마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세 가지 재료로만 제한하였고, 효모는 나중에 개정된 법에 추가되었다. 물론 이 법이 ‘맥주를 순수하게 만들라’는 순수한 마음만 있었던 건 아니다. 밀의 역할을 맥주의 제조에서 빵의 제조에 돌려주고, 당시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밀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덕분에 일부 부도덕한 맥주 제조업자들이 행한 비도덕적이고 안전하지 못한 제조법을 근절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으니, 맥주의 곡물로 보리만 사용하게 하자 밀 또한 맥주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맥주순수령에 의해 밀맥주의 제조가 금지되었지만 독일의 슈바르자흐 지역에선 밀맥주 양조장이 버젓이 성행했다. 슈바르자흐는 지금으로 보면 독일 뮌헨과 체코 플젠의 가운데 정도에 위치했는데, 이 양조장은 데겐베르크라는 명문 귀족인 한스 6세가 설립한 곳이다. 1548년, 바바리아의 공작인 비텔스바흐 가문은 데겐베르크 귀족에게 바바리아 지역에서 밀맥주를 독점적으로 양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덕분에 데겐베르크의 밀맥주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대신 비텔스바흐 가문은 데겐베르크로부터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이는 반대급부를 얻었다. 바바리아 군주인 빌헬름 4세가 맥주순수령을 내린 후 32년 만에 자신들이 세운 법령을 자신들이 스스로 어긴 셈이다. 아무튼 그 덕분에 역사속에 사라질 뻔 했던 밀맥주를 현대에서도 마시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데겐베르크 양조장은 ‘세계 최초의 밀맥주 양조장’이라는 타이틀로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500년 전의 전통과 레시피를 따라 밀맥주를 만들고 있다고 하니 역사의 맛을 느껴볼 수도 있다.


1602년 데겐베르크 가문은 후계자가 없이 대가 끊겨 버렸다. 이에 데겐베르크 가문은 모든 재산을 바바리아의 막시밀리안 1세에게 양도했다. 물론 이 재산에는 밀맥주 양조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밀맥주의 양조 전매권을 그의 공국 전체로 확대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다. 나중에는 양조 전매권을 바바리아 뿐만 아니라 남부 독일까지 확대하였고, 가문이 직접 밀맥주를 양조하기 위해 ‘호프브로이하우스’라는 양조장을 만들었다.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비어홀로 유명한 곳이다. 아무튼 이 가문은 밀맥주 하나로 엄청난 부를 쌓았는데 밀맥주로 팔아 만든 자금으로 유럽의 30년 전쟁1을 무사히 치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잘나갔던 독일의 밀맥주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보헤미아에서 시작된 필스너 스타일이 전 세계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바리아에는 오로지 두 개의 밀맥주 양조장만 남아 있었는데 바바리아 공작은 힘이 빠질대로 빠져 버린 밀맥주 양조권을 게오르그 슈나이더라는 사람에게 판매했다. 게오르크 슈나이더는 그의 아들과 함께 1872년 독일 뮌헨에서 가장 오래된 밀맥주 양조장을 설립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식 밀맥주를 처음으로 만든 슈나이더 양조장이다. 슈나이더에 의해 일부 귀족만이 독점적으로 판매했던 밀맥주가 서민들의 품에 돌아왔다. 그리고 슈나이더 가문은 밀맥주를 부흥시키기 위해 ‘피땀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것도 한 세기가 넘게 말이다. 그로부터 100년 쯤 지나 1960년대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밀맥주가 갑자기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지금도 밀맥주는 맥주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맥주가 되었다. 밀맥주의 팬이라면 슈나이더에게 절이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전 02화 스페인에선 맥주를 왜 세르베사라고 부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