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고 보여주기는 작가라면 부려야만 하는 마술 중 하나다. 사실 가장 핵심이다. 독자가 소설을 꼼꼼히 다 읽고 나서 그 안의 인물과 배경, 사건이 모두 대단히 자연스러워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을 안고 책을 덮을 수 있어야 한다.
바느질로 비유한다면, 작가는 많은 이미지를 이으면서도 그 이음새가 절대로 도드라지지 않게 꿰매야 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독자가 이미지에 대해 듣기보다는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보고받기보다는 그 이미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사건을 다룬 이부세 마스지의 소설 『검은 비黑い雨』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없다.
도시는 폭발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다음 문단은 있다.
불에 탄 피해 지역으로 들어서자, 길바닥의 유리 조각이 햇빛에 반사되어 얼굴을 똑바로 들고 걸을 수가 없었다. 시체 썩는 냄새는 어제보다 조금 약해졌으나, 집들이 무너져 기왓장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파리들이 새까맣게 떼 지어 붙어 있었다. 거리를 정리하고 잔해를 치우던 구호반에는 후속 부대가 보충된 듯했다. 색은 바랬지만 아직 땀과 오물로 얼룩지지 않은 구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위 첫 번째 예는 사건과 관련된 정보만 준다. 그러나 두 번째 예는 사건을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는다. 이 두 글의 차이점은 도로 순찰대원이 쓴 사고 보고서를 읽는 것과 그 사고를 직접 겪어 놀란 것의 차이와 같다. 만약 교통사고를 당해본 적이 있다면, 사고의 전모를 짧게 전해 듣는 것과 사고를 직접 겪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라는 걸 알 것이다.
“도시는 폭발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너무나 냉정하고 무심하며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반면 『검은 비』에서 작가는 폭발에 따른 피해를 소설 전반에 걸쳐 여러 세부 사항을 통해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단단히 각인한다. 벽면에 잘 정돈된 작은 모형들처럼 작가가 그려놓은 섬세한 그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깨진 유리 조각 위로 반사되는 햇빛, 무너져버린 집들, 시체에서 나는 악취, 파리 떼들. 섬세하게 고른 단어가 하나하나 더해져 필연적인 결론을 만들어낸다. 바로 도시가 폭발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두 번째 예가 엄청나게 더 좋은 글이다 . 독자를 소설 속으로 완전히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자, 중요한 사실을 하나 말하겠다. 두 번째 예인 『검은 비』가 더 좋은 이유는 말하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보여주기와 말하기 두 가지를 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서 읽어보자. “반사되는 햇빛…… 얼굴을 똑바로 들고 걸을 수가 없었다”, “시체 썩는 냄새는 조금 약해졌지만”, “파리들이 새까맣게 떼 지어 붙어 있었다”는 모두 말하기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도시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서술하는 것보다 더욱 강한 인상을 독자에게 심어주고 있다.
소설을 쓸 때는 보여주기와 말하기 이 두 가지 방법을 균형 있게 조합해서 사용해야 한다. 소설은 보고서나 요약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통사고를 다시 생각해보자. 효율적이고 짧은 문장으로 쓴 도로 순찰대원의 추돌사고 보고서와 사고 당시의 운전자나 승객의 감정과 충격을 전달하는 글 중 독자는 어디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까? 소설을 보고서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보여주기를 주로 하되 말하기를 할 때도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고 다듬는 것이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개정판이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