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담 Sep 27. 2022

굳이 숨기려 하지 않을 것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함께 하는 운동, 수영

1.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초급 강습을 등록하러 수영장을 찾아 상담을 하던 나는 잠시 당황했다. 내 앞에는 어깨와 팔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은 체육센터 직원분이 전화를 하다가 잠시 멈추고 나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회원 등록을 상담하고 있지만 아마도 본업은 이곳 체육센터의 헬스 트레이너임이 분명할 법한 범상치 않은 근육질 체형이었다. 나이도 나보다 열 살은 어릴 게 분명했다. 


"나이요?? 제 나이요?"


"네. 초급 선생님께서 초급반이 지금은 그 시간대가 꽉 차서 더 받을 수 없는데, 한 분이 중급반에 올라가면 들어올 수도 있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초급반이 진도가 좀 나간 상태라서 너무 초보이거나 체력이 안되면 같이 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셔서요."


나이를 말할 때 왠지 당당한 기분이 들지 않는 건 이제 내 나이에 4자, 마흔이 붙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 수영 배운 적은 있으세요?"


"네, 4년, 아니 5년 전쯤에 수영을 배웠어요. 초급반에서 4~5개월 배웠는데...

조금씩 배웠는데 영법을 다 잘하지는 못하고요. 그렇다고 완전 초보는 아니고요."


기본 호흡과 발차기, 물에 뜨는 것은 할 줄 안다고 열심히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공공시설인 구립 수영장에 등록할 때에도 배웠던 경험, 물에 뜰 수는 있는지 등등을 물어보긴 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TO가 생기면 접수순, 선착순으로 등록했던 것 같은데... 


나이를 밝히고 10분을 넘게 기다렸다. 시간이 길어지자 설마 안 받아주는 건 아니겠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다리면서 조금씩 초조해질 무렵, 트레이너분은 연락이 왔다며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수영은 언제부터 시작하실거에요? 

다음달 1일? 아니면 이번주나 다음주?"


초급반 등록을 컨펌받았다. 설명을 들으니 중급반 선생님과 합의를 하고 1분이 중급반으로 올라가기로 해서 한 명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2. 

초급반에서 강습을 시작했다. 초급 레인에 온 첫날, 물에 들어가 분위기를 보아가며 적당히 줄 뒤편 즈음에 킥판을 들고 섰다. 처음 왔기에 수영은 어디까지 배웠는지, 얼마나 배웠는지 물어보는 강사님의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을 했다. 시키는 대로 발차기 두어 바퀴를 돌고 와보니 다른 사람들 절반 정도는 접영 발차기를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자유형을 하고 있었다. 


"킥판 잡고 자유형 해볼게요."

"이번에는 킥판 없이 해볼게요."


그 후 나는 자유형을 하는 그룹 뒤쪽에 서서 수영을 했다. 




3.

갑자기 마주한 같은 레인의 많은 얼굴들이 비슷하게 겹쳐지면서 낯설었다.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는 어려웠지만 얼추 연령대가 높은 어머님들 나이인 분들과 나와 비슷한 3040 또래 젊은 엄마들로 나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오전 10시였으니 당연히 어머님들과 엄마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강습 시간이었다. 접영 그룹과 자유형 그룹, 그리고 연령대가 높은 그룹 그리고 나와 비슷한 그룹. 내 나름대로 그룹을 구분 짓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타인의 시선엔 나도 같은 어머님 그룹인 게 아닐까? 젊은 엄마로 구분 하는 것은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강습을 몇 번 더 가면서 같은 레인 분들 얼굴도 낯이 익어갔다. 하얀색 수영모, 검정색 수영모, 5부 검정색 수영복과 5부 파란색 수영복, 그리고 검정색 원피스 수영복으로 구분되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한 분씩 구분 되기 시작했다. 내 나름대로 내 또래로 분류했던 젊은 엄마 그룹에서도 나보다 언니로 보이는 분들, 나와 비슷하거나 어려 보이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인지할 수 있었다. 




4. 

"애기가 몇 살이에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돼요?"


먼저 말을 걸고 건네는 타입은 아니지만, 내게 들어오는 질문에는 충실하게 대답했다. 사교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지만 마이웨이를 고집하며 튀는 사람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적당히 섞이고 적당히 나로 있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이를 말하며 언니네, 동생이네, 오가는 대화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제일 어린 줄 알았더니 아니네~"

"여기 이분 이랑 같은 나이네요. 저기 저분이 제일 어리고."


수영모를 쓰고 수영복을 입은 채 상반신만 조금씩 보는 사이인데도, 어려 보인다, 아니다 라는 말이 오가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서른 살 즈음부터 생기기 시작해 이젠 새치 염색을 안 하면 너무 티가 많이 난다. 갈수록 줄어드는 머리숱과 푸석해지는 머릿결도, 중력에 힘을 잃어가는 몸의 탄력도 모두 나의 소소한 고민거리인데, 수영모를 쓰고 다 가려서일까. 어려 보인다는 이야기에 괜히 멋쩍어하며 웃음도 지어보았다. 


"애들은 몇 학년이에요?"

"어느 단지에 살아요?"


한국인 커뮤니티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적절한 사생활과 나이, 아이들의 나이로 무리를 나눈다. 그것이 불편하지 않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을뿐더러 조금씩 서로에게 관심을 두면서 낯이 익어가면서 일상적으로 정을 주며 나누는 한국인 특유의 일상 대화이다.




5. 

수영은 온전히 혼자서 하는 운동이지만 수영 시작 전, 내 자리를 잘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레인에서 단체로 강습을 받으며 배우고 연습을 하다 보니 적당한 눈치도 필요한 운동이다. 처음 와서 멋모르고 자유형 그룹 중간에 끼어서 수영을 했던 나는 이제 눈치껏 제일 뒤에서 수영을 한다. 내가 이전에 몇 개월 배운 적이 있었기에 늦게 온 나보다 진도가 느린 분이 한 분 계신데 처음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제일 뒤에 섰었다. 그러다 자리 바꾸자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은 끝에서 두 번째로 내 자리를 찾았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그룹 사이에 끼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에 이어 오시는 분에게 민폐가 된다. 또 앞의 분 보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발이 부딪히면서 은근히 불편해지고 껄끄러워질 수도 있다. 길지 않은 50분, 적절한 내 자리를 찾고 앞과 뒤의 속도를 맞추는 것이 함께 운동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인 것 같다. 




6. 

수영장에서는 굳이 나를 숨기려 하지 않을 것.

어쩌면 예상치 못하게 남편 직업이 무엇인지, 자가이냐 전세이냐 라는 질문을 받더라도 놀라지 말 것. 

눈치껏 내 자리를 잘 찾고 속도를 맞출 것. 


수영은 지극히 사적인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단체 운동인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책을 읽을 여유가 생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