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검색해 본다. 나무위키 내용이 또 업데이트됐다. 현직 아나운서 최초 공인노무사 합격이라는 문구. 도대체 누가 편집하는 걸까, 이쯤 되면 가족이나 동료가 아닐까. 수정할까 하다가 훼손이 자주 일어나는 아이피라 로그인을 해야 한단다. 그냥 뒀다. 이런 걸 귀찮아하는 성격은 아닌데 일단 그냥 뒀다.
회사를 다니면서 수험 공부하는 것을 되도록 알리지 말라는 주변 조언에 따라 2년은 조용히 준비했다. 1차는 객관식이니 별로 어렵지 않고, 한 달만 공부해서 붙었다는 후기들을 여럿 봤기도 하고 어쩐지 객관식 시험에는 자신이 있던 터라 첫해에는 딱 한 달 바짝 공부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민법에서 처참한 점수를 받고 과락을 했다. 주변에 알리지 않기를 다행이었다. 다음 해에는 조금 더 긴 기간을 준비해 1차에 가뿐하게 합격했다. 같은 해 2차 시험은 올림픽 정신으로 참가했다. 참가에 의의를 뒀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다음 해 일 년을 통째로 수험에 투자했다. 그렇게 노무사 노무사, 노래를 부른 게 만 3년이다.
마지막 한 해는 전력을 다했다. 집에 독서실 책상을 들여놓고 평일은 집 독서실 책상에서, 주말은 신림동에서 살다시피 했다. 특히 주말에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이 이어졌는데 학원 바로 앞 식당에서 눈꽃 치즈 돈가스와 햄버거를 번갈아 먹으며 버텼다. 식당들은 약속한 듯 가격이 시세에 비해 저렴했고,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혼자였다. 일반적인 식당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손님들은 '눈꽃 치즈 하나요' 같이 메뉴를 짤막히 말한다음 모두들 휴대폰을 들여다보기 바빴다.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이외에는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특유의 정적과 축축한 분위기가 고시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그 긴 시간 이어지는 수업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졸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앞에서부터 세 줄까지는 선생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중간쯤 앉은 학생들 중 몇몇은 창밖을 보거나 허공을 응시하고 있고, 뒤편에 앉은 학생들은 장난치거나 딴짓하기 바빴다. 그런데 고시촌 교실에선 대학교 점퍼를 입은 학생부터 불혹이 넘은 부장님 뻘의 중년, 배가 볼록한 잉태기의 여성까지 눈이 반짝인다. 권고사직을 당했다든지, 노후 대비를 위해서라든지. 저마다의 사연과 울룩불룩한 삶의 굴곡들을 짐작해 볼 뿐이다.
엉덩이로 하는 일에는 꽤나 자신이 있었다. 지금껏 겪어온 바로는, 우리나라 제도 내 시험은 대단한 재능 없이도 엉덩이로 버티면 합격 커트라인은 넘을 수 있었다. 그게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대단한 재능이나 두뇌는 없지만 성실함으로 꾸역꾸역 이루어내기. 특목고 입학시험도 그랬고, 대학 입시를 두 번이나 치를 때도, 아나운서 입사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이 서사대로라면 현직 아나운서 최초로 공인 노무사 합격의 신화를 쓴 장본인이 되어야겠지만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꽤 오랜 시간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붙은 ‘척’ 했다. 축하 문자도 받았다. 노무사 시험에 관심 있다는 회사 동기에게 밥을 얻어먹으면서 조언도 해줬다. 그때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불합격이라고 공언해 버리면 지난 3년의 시간과 그 시간 동안 쏟아부은 나의 최선이 부정당할 것 같아 교묘히 피했다.
다행히 시험 결과를 물어오거나 나에게 법률 자문을 의뢰하는 일은 없었다. ‘쟤 합격한 거 아니래’라는 소문이 돌았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내 입으로 정정하지 못하면 그 편이 낫겠다고도 생각했다. 온갖 서적과 형형색색으로 칠해진 두문자(판례 전체를 외울 수 없어 키워드 앞 글자를 따서 외운다) 프린트들, 연습한 답안지들로 가득한 책상도 몇 달째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합격과 불합격 사이를 홀로 줄타기를 하며 시간이 흘렀다. 수험 생활 동안 익힌 것들이 일상에서도 조금씩 도움이 됐다. 부서원의 계약 연장을 위해 회사 법무팀과 이야기할 때 공부한 판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든지, 논의의 실익을 따져본다든지. 언어를 배우면 그 문화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처럼 법적으로 해석하는 시각과 법적 언어를 나름 체득한 듯했다. 헤맨 만큼 내 땅이었다.
책상 정리를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곧 이사를 앞두고 있기도 했고, 언제까지 헤어진 연인의 흔적을 안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큰 박스에 흡사 둔기 같은 무겁고 큰 책들을 무표정하게 하나둘씩 옮겨 담다가, 분홍색 노트 첫 장을 열어보고는 별안간 눈물이 흘렀다. ‘어쩔 땐 내 맘대로 되는 게 너무 없어서 슬프기도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걸 쉽게 다 가질 수 있는 삶도 그것대로 고루하지 않겠냐’는 글귀를 발견한 터였다. 과거 수험생활을 견디던 내가 혹여나 떨어져 상심할 지금의 나를 위해 노트 맨 앞에 적어둔 문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한바탕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그날 이후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게 됐다.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싸매던 모습과 신림동에서의 시간 자체가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냈던 그때가 충분히 아름다웠노라고, 나 노무사 아니라고 말이다. 동기에게 연락해 밥이나 사야겠다. 그때 되지도 않는 조언 하면서 얻어먹어서 미안했다. 그나저나 나무위키는 누가 수정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