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 않은 아나운서

by 싱지원

KTX 열차 안, 나는 우리가 같은 목적지로 향한다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편안한 차림새이지만 긴 속눈썹에 정갈하게 세운 앞머리, 한 손에는 갈아입을 정장을 담은 케이스를 들고 남은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는 모습, 그리고 한껏 긴장한듯한 표정이 전부 방송국으로 향하는 아나운서 준비생이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지난밤 준비한 면접 자료를 들춰보다 보니 어느새 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자 10분쯤 떨어진 방송국에 닿았다.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였다. 그러나 전쟁터는 규모가 어떻든 간에 그 자체로 사람을 비장하게 만들곤 했다. 준비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신발을 갈아 신으며 마른침을 연신 삼켰다.


'신입 아나운서 카메라 테스트 대기장소'라는 푯말을 따라갔다. 못해도 4,50명쯤 되는 지망생들이 '아아-' 소리를 내며 목을 푸는 모습이 보였다. 몇몇은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고, 이미 종편 채널에서 리포터를 하고 있는 대학교 선배도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를 알았다. 같은 학교 출신 중에 방송일을 하고 있는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을 외우고 있던 터였다. 선망의 대상이던 그와 같은 시험장에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방송을 하고 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걸 재확인했다. 리포터에서 아나운서로, 종편에서 지상파로, 무한 점프를 해야 하고 그것이 미덕인 게 이 바닥의 생리였다.


안내된 집합 시간보다 30분은 족히 빨리 왔는데 더 일찍 도착한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서 메이크업을 받았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새벽 시간 추가비용도 꽤 많이 냈을 것이었다. 시험 한 번 보려면 왕복 KTX비에, 헤어 메이크업 비용, 의상 대여비에 택시비까지... 3,40만 원은 우습게 들었다. 나는 얼마를 썼는지 머릿속으로 대강 계산해 보니 25만 원쯤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합격만 한다면야.


이 시험은 수 백 명의 지망생들이 단 한자리를 두고 벌이는 경쟁이다. 나를 제외한 타인은 모두 제쳐야 할 상대였고 그런 점에서 대기실로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닿는 시선마다 냉기가 가득한 것이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흰색 원피스에 빨강, 노랑, 주황, 초록, 파랑, 색색깔의 재킷을 갖춰 입고 살구색 하이힐을 신었다. 나 역시 빨간색 재킷을 걸치고 마찬가지로 살구색 하이힐을 신었다. 의상 대여숍에서 거울을 보며 이 옷 저 옷 걸쳐 볼 땐 이 빨간색 재킷이 가장 강렬하고 튀어 보였는데 당장 나 하나쯤은 이 자리에서 사라져도 전혀 지장 없을 것 같았다. 특별할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아주 보통의 지망생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무리들의 대화가 들렸다. 지난달에 있었던 지상파 시험에는 서울대 출신이 됐다고. 물론 아나운서 시험이라는 게 학벌만 보는 건 아니니 서울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합격한 게 아니라, 합격한 사람이 공교롭게도 서울대 출신이었을 테지만 일 년에 한두 명 나오는 합격자의 면면을 들여다볼 때면 하염없이 작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서울대인데 이미지가 좋은 건 반칙이지 않느냐' '내가 보기엔 성형 티가 많이 나는데'같은 말들에 귀를 닫으려 애를 썼지만 닫으려 할수록 그들이 말이 더 선명하게 들렸다.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의 기억이 불현듯 스쳤다. 일년 전 이미지 수업 날, 어떤 영화를 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직업이 영화감독이라는 사람이 강사로 들어와 한 명씩 카메라 앞에 서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실시간으로 보이는 옆 스크린에 얼굴이 가득 담기게 확대했다. 덕분에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가 오른쪽 눈썹 아래 점이 있다는 사실, 왼쪽 얼굴이 더 올라붙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수업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감독이란 사람이 수강생들의 확대된 얼굴을 하나씩 일일이 캡처해 그 위에 검은색 보드마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 얼굴을 위에서부터 삼등분으로 잘랐다. 이마와 코, 턱까지 1:1:1 비율이 일명 황금 비율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얼굴은 어느 쪽을 늘리고 줄여야 하는지 감도 안 올 정도로 황금 비율을 벗어나 있었다.


이어서 내 눈앞머리 쪽에 검은색 마카를 슥슥 칠하면서, 눈 사이가 멀기 때문에 메이크업을 할 때 눈앞을 검게 칠해야 한다고 했다. 코가 뭉툭해서 코끝을 묶는 수술을 하든지, 코 옆을 칠해서 날카롭게 보이게 해야 한다고, 얼굴의 여백이 많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턱 부분에 쉐딩을 진하게 해야 화면에 잘 나온다고 했다.


오른쪽 눈썹 아래 점이 있던 그 친구의 얼굴은 비대칭이기는 하지만 그건 경락 같은 걸로 해결하면 되고, 애초에 얼굴에 여백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야말로 아나운서를 해야 한다고 확신에 차 이야기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밖이 어두워 유리창에 내가 비쳤다. 나와 눈을 마주치다가 피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창에 비친 내 얼굴 군데군데 검은색 보드마카 낙서가 잔상처럼 남았다. 감독이 확신에 차서 한 말들도 귀에서 계속 맴돌았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있던 한쪽 팔에 고개를 박고 눈물을 닦았다. 생긴 게 이 모양이니 꿈꿀 자격이 없다고, 그러니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자격미달이라는 말에 더 간절해졌다. 버티다 보니 어느새 서류 전형에서 통과하고, 시험장에도 와있지 않은가. 내 안에서 어떤 오기 비슷한 것도 피어났다. 대단히 잘나지 않아도, 그러니까 예쁘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걸, 애초에 이 일은 그런 사람들만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수험번호에 따라 열 명이 차례로 호명되면 2층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그 이후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계단이 있었다는 것, 넓고 큰 스튜디오에 사람은 없고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카메라를 보고 짧은 자기소개를 한 뒤에 몇 문장을 읽었다는 것. 그 정도였다. 지나치게 긴장을 한 탓에 무슨 말을 하고 나왔는지도 몰랐다. 며칠 뒤 공개된 카메라 테스트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카메라 테스트가 치러진 그날로부터 한 달 뒤쯤 아나운서 아카데미가 운영하는 카페 '명예의 전당' 게시판에 합격자가 올라왔다. 합격자 이름을 검색해도 정보가 없었다. 아나운서 준비를 얼마 하지 않은 무경력자인 것 같았다. 이번엔 나이에 밀린 건가. 나에게 없고 그에게 있는 것은 무엇인지 분석하며 불합격을 상기하는 일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월요일, 수요일은 아나운싱 스터디 화요일, 목요일은 필기스터디를 하는 나름 빡빡한 일정에, 간간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2년 넘게 보내고 나니 최종 면접까지 가는 일도 많아졌다. 속으로 방귀가 잦으면 똥이라지, 생각했는데 똥이 맞았다. 운 좋게 모 지역사에 합격했다.


나중에 나를 뽑은 부장님에게 물어보니 기자 경력을 좋게 봤고, '교회 집사, 권사님들이 늘 며느리 삼고 싶어 하는 1등 며느릿감'이라는 자기소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 부장님이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운이 좋았다.


전국 팔도를 돌아 정착한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프롬프터에 익숙해지고 어울리는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을 찾는 것 이상의 배움이었다. 인터뷰 대상에 대한 공부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것, 잘 말하려면 듣는 것부터가 우선이라는 것, 방송은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 좋은 사람이 좋은 방송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때론 성실함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들을 배웠다.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진지하게 듣고,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태도가 어느새 나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읽고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에 작문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고 강렬한 색의 대여 옷이 아니라, 평소 자주 입던 슬랙스를 입고, 면접에선 일하면서 배운 중요한 깨달음을 전했던 것. 그것이 KBS 공채에서 유효했던 나의 한 방이었다.

몇 년 전 그런 얼굴로는 아나운서 못한다고 단언했던 그 강사에게, 그 말을 듣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은 팔로 몰래 눈물을 훔치던 나에게, 성실함을 걸치고 마이크 앞에 선 지금의 나를 보여주고 싶어졌다. 거봐, 예쁘지 않아도 되잖아. 그것보다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하느냐고.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4화입 없는 고릴라와 난각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