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없는 고릴라와 난각번호

by 싱지원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길 집 앞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던 날이었다. 생방송 진행이 업인지라 잔뜩 날을 세우고 일하다 보니 속병이 자주 나는데, 그날은 유독 속이 더부룩해서 그냥 계란프라이 두어 개만 해 간단히 차려 먹을 생각이었다.


찬 기운이 느껴지는 채소 코너를 지나며 외투를 끌어안았다. 유제품 코너 옆 안쪽에 내가 찾던 계란이 있는 신선코너가 있었다.

계란 껍데기에 적힌 번호, 난각 번호에 따라 계란에 등급이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직접 전하는 뉴스 보도를 통해 얼마 전 알게 되었다. 난각 번호 1번은 동물 복지를 현실적으로 실현한 방사 사육의 경우에 부여되고, 2번은 축사에서 풀어놓고, 3번은 다소 개선된 닭장에서, 4번은 우리가 잘 아는 A4용지 크기의 작은 닭장에서 자란 닭이 낳은 알에 새겨진다. 일각에선 1번과 4번은 사육 환경이 다른 만큼 맛과 영양도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하는데, 그 차이를 누가 그렇게 쉽게 알아챌 수 있을까. 물론 지금껏 가장 저렴한 계란을 장바구니에 의심 없이 넣었던 나로서는 1번 계란을 먹어본 적도 없었을 것이다.

난각 번호를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가격만 보지는 않게 됐다. 1인 가구에게 30구 계란은 사치에 가깝고, 10구 혹은 12구쯤 되는 계란들 중 동물복지 유정란을 찾거나 난각 번호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날은 가장 저렴한 계란의 두 배 조금 안 되는 가격의 1번 계란을 담았다. 약간의 도덕적 우월감을 가친 채로. (신념이라 말하기도 우스울 만큼 사소하지만)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뒷받침이 됐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기쁘게 했다.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그런 식으로 삶의 선택지를 넓혀줬다. 어느 동네에 사느냐, 어떤 식당을 가느냐, 어떤 자리를 앉게 되느냐까지. 그런 의미에서 돈은 자유를 뜻했다.


여기 아니면 저기도 나쁘지 않다는 사람들의 귀족적 천진함을 나는 늘 동경하면서도 혐오했다. 선택지를 펼쳐놓고 한가롭게 어느 것을 고를지 고민하는 저편의 삶은 이쪽에서 받아 든 유일한 선택지와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지를 얻어내기 위한 치열함, 발구름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거나 그거나 차이 없어"라는 말 속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내가 선 쪽과 그 반대쪽에 선 사람과의 차이라면 차이였다.

아무튼 최저가로 정렬하고 가장 저렴한 물건을 사는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진 습관이었다. 중학생 때 키플링 가방이 또래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했다. 같이 다니던 친구들 서너 명이 같은 디자인에 색만 조금 다른, 하나같이 고릴라가 달려있는 가방을 메고 다니기 시작했다. 유행에 뒤처지기는 싫었던 열다섯 살 소녀눈 그 길로 지마켓에서 키플링 st(스타일)이라고 검색해 정품 가방 가격의 오분의 일 정도 되는 가방을 샀다. 1년 정도 문제없이 잘 메고 다녔는데, 당시 친구 하나가 네 고릴라는 모양이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시치미를 떼었지만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동네 가게 유리창에 비친 달랑거리는 고릴라를 보고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방을 앞으로 고쳐맸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릴라 얼굴에 입이 없었다. 나도 덩달아 할 말을 잃었다.

성인이 돼서도 그 습관에서 좀처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3,000원 쿠폰을 주는데 비회원으로 구매했다가 뒤늦게 알아채고는 개인 정보와 3,000원을 맞교환했던 기억. 사고 싶은 것은 일단 중고나라에 검색해 보는 습관, 난각번호처럼 내 피부에 새겨진 가난의 흔적이었다.


타닥타닥- 기름 소리와 함께 익어가는 계란 두 알을 보며 생각했다. 가난이라는 단어를 내 삶과 연결 짓게 될 때면 '서울에 살면서, 비싼 학비 내는 특목고를 나오고, 사립대에 다니고, 해외여행도 주기적으로 갔으면서 가난은 무슨 가난이냐고, 배부른 소리 말라'는 말이 들리는 것만 같다고.


1번 계란은 듣던 대로 계란 특유의 비린내가 안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프라이 두 개를 다 먹어치우고 나서도 좀처럼 허기가 가시질 않았다.


곰팡이 피는 벽과 작은 셋방 살이 정도는 해야 가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누가 정해준 기준이라는 게 없는 상대적 개념이라면, 일단 제일 저렴한 것부터 살피고, 온갖 쿠폰과 혜택을 기를 써서 끌어모으고, 적용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 가슴이 철렁한 기억들에, 나는, 가난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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