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아는 법

by 싱지원


8-9년도 더 된 일이다. 대학교 동기가 지역 지상파에 합격했다는 글을 봤다. 불합격자에게 문자를 주는 식의 친절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합격 소식으로 내 불합격을 알게 되는 일만큼 잔인한 일도 없었다.


그와 나는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옆자리에 앉아 필담을 하며 자주 이야기를 나눴고 종종 팀 프로젝트도 했고, 취업 정보를 공유하는, 그러니까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 그의 합격 소식이라니, 온갖 호들갑을 떨며 축하를 해줘야 마땅한데, '소식 들었어. 축하해' 무미건조하게 문자를 남겼다. 건넨 문자와는 다르게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찌질한 내 모습에 속이 상해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듯했다.


전국 팔도를 누비며 시험을 보고 다닐 때였다. 어느 날은 제주로, 어느 날은 안동으로, 또 어느 날은 전주로. 시험을 보러 다닐 때마다 계속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터미널에서 방송국까지 모여서 함께 택시를 탄다든지,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란히 앉아 가면서 그렇게 경쟁자들과도 조금씩 친분이 생겼다. 그들이 하나 둘 합격 소식을 전해올 때마다 구질구질한 모습들이 자주 고개를 내밀었다.


그 방송국은 처우가 좋지 않다며 친구를 걱정하는 척하거나, 아예 소식 자체를 못 들은 척하는 날도 있었다. 그 시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계속되는 불합격이 아니라 어쩌면 멋지지 않은 스스로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국을 유랑하는 버스를 함께 타고 다니다가, 일찍이 목적지를 만나 버스에서 내리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나도 버스에서 내리게 됐다. 정착지는 의외의 곳이었지만 꿈꾸던 일을 하게 됐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쁨을 주었다.


심지어는 세 걸음에 한 번 절하면서 출근하고 싶다고, 돈 안 줘도 오히려 돈 내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예쁜 헤어메크업을 하고, 방송국에서 지원해 주는 예쁜 옷을 입는 것들, 모두가 좋았다.


이대로 이야기가 끝을 맺으면 참 좋겠지만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능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동료가 생겼고, 유튜브로 소위 대박 난 후배가 있었다. 다행히 그들에겐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고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곧 나올 본인의 책 표지를 정해 달라는 동료의 글이 나의 찌질한 모습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 하나가 내게 그가 낸 책을 선물했다. 사인본이라면서, 내 생각이 났다나 뭐라나.


책 표지는 내가 제일 별로라고 생각했던 3번이었다. 표지를 넘기니 위로를 건넨다는 뉘앙스의 말과 함께 저자의 사인이 자랑스레 자리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 책은 책장 구석에 두고 한 번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베스트셀러가 됐단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성숙해진 건지, 찌질하고, 멋지지 않은 내 모습마저 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과거 어두운 방에 홀로 누워 훌쩍였다면 이제는 솔직하게 말한다. 부럽다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동료의 두 번째 책을 내 손으로 구매해 참 재밌게도 읽었다. 책장 구석에 둔 그의 첫 책도 연이어 읽어 내렸다.


아마 이 글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면 나는 또 다른 버스에 올라탔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어딘가에서 샘내고 질투하고 있을 텐데, 그것이 때론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또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보면 묘하게 배가 아프고, '내 취향은 좀 아니던데?'라며 깎아내리고 싶고, 때로는 모른척하게 될 때, 그것이 바로 내가 진짜 하고싶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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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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