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림미 Nov 16. 2023

아이에게 미안했던 기억들을 생각나게 하는 그림책.

초록 거북을 읽고

릴리아 작가의 <초록 거북> 그림책에는 아빠 거북과 아기 거북이 나온다. 아이를 키울 때 흔하게 생기는 일들이 그림책 속에 담겨 있다. 그림책 속 아빠 거북과 아기 거북의 모습이 예전 내가 아이를 키울 때의 모습이었다. <초록 거북>을 보며 그때 일들이 떠올랐다. 

  귀한 아이가 우리 집에 왔다. 나를 향해 웃는 아이 모습을 보며 불안한 세상 속에서 가장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 아이를 위해서 그동안 보지 않았던 책을 펼친다. 분유를 타는 물의 온도, 이유식을 먹이는 시기, 아이에게 읽어줘야 하는 그림책 목록등을 알아본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알아보느라 아이가 원하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는 책을 보며 한글 공부를 하는 것보다 엄마의 그림책 읽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교구를 가지고 모양에 대해 공부하는 거 말고 아빠와 블록으로 로봇 만드는 시간을 좋아했다. 차를 타고 멀리 나가 박물관에 가는 대신 집 앞 놀이터에서 공을 굴리며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알려고 하기보다는 이 연령대의 아이들의 평균 발달 사항을 보며 비교하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잘하는 게 있으면 웃어주고, 그렇지 못하면 다그쳤다. 아이가 많은 것을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림책 속 아빠 거북이처럼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게 많았다. 아이는 그림책 속 아기 거북처럼 지루해하기도 하고 나와 놀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내 바람대로 되지 않을 때는 내 마음과 다르게 소리부터 지르게 됐다.


"너 정말 이렇게 할 거야? 엄마가 이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이게 다 뭐야. 가지고 놀았으면 정리해야지."

"이거 지난번에 알려줬잖아. 너 친구들은 다들 잘하던데 너 정말 왜 그래?"


가장 아픈 말을 골라 아이에게 퍼부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를 혼내는 이유들은 정말 별거 아니었다. 내 욕심에, 내가 정해놓은 틀 안에 아이를 가둬놓기 위해 아이에게 상처를 줬다. 그러고 나면 집안 분위기는 금세 차가워진다. 집에 있는 누구도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행동은 피하고 나름대로  그렇게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 

아직 "미안해요."라는 말을 모르는 아기 거북이지만, 아빠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아기 거북은 아빠의 입속에
토마토 한 알을 쏙 넣어 주었어요.

  이 차가운 분위기에서 손을 먼저 내미는 건 엄마가 아닌 아닌 아이였다. 슬며시 나한테 와서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준다. 나의 기분을 살핀다. 그런 아이를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때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나를 들여다봤어야 했다.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보고 정리를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그때가 그립다가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나의 성숙하지 못한 행동들 때문일 거다. 

  이제는 훌쩍 커서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가 나한테 삐질 때가 자주 있다. 호떡을 먹으면서 자신을 밀었다는 이유로(나는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엄마 미워"라고 하고 내가 얘기하면 "흥" 하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린다. 이젠 그런 아이의 모습도 사랑스럽다.


  아이가 자란 거처럼 나도 한 뼘 자랐다. 화가 날 때는 아이에게 바로 얘기하기보다 한 템포 쉬고 말하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난 뒤 내가 먼저 아이에게 다가간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에 짧은 메모를 붙여 아이의 책상에 슬며시 올려놓기도 한다. 아이의 지금 모습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림책을 통해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마주 하며 아이에게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은 짜장면 먹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