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십 년이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다. 주위에 타는 사람이 없었고, 내가 운전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 내가 인도에 와서 오토바이를 타다니!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마치 인생처럼.
어제 어렵사리 요가원에 도착하고 나서,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야 할 것 같아 요가원직원에게 마트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저 구글맵에 나와있는 여러 마트들 중 어디가 나은지 알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한 인도인 청년의 오토바이에 몸을 싣게 되었다. 요가원 매니저가 막 나가려던 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경계심 많고 겁 많은 내가 이렇게 낯선 사람 뒤에 타다니.. 상황에 쏠려 나는 어느샌가 오토바이 뒤에 타있었고, 아주 좁은 골목골목과 내리막을 세차게 내려가 마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비탈길을 브레이크 잡지 않고 달린다.. 내리막에러는 오토바이 시동을 끈다.. 와우..
오늘 점심에도 같은 마트에 들렀다.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면 참 좋겠지만, 자꾸만 필요한 게 생겼다. 장을 보고 나서 점심 식사를 하다 미국인 친구 Odaly를 사귀게 되었고,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어제 오고 갔던 기억을 되짚어가며 돌아갔는데 길을 잃었다. 막다른 길을 만나 약간 당황한 채로 이리저리 골목을 빠져나가니 운명처럼 눈앞에 숙소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허름했던 숙소가 동화 속 궁전처럼 보였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갠지스 강 락슈만줄라 브릿지 - 비틀즈 아쉬람
저녁에 새로 사귄 친구와 옆동네로 툭툭을 타고 가서 강가(갠지스강) 비틀스아쉬람에서 열리는 행사를 구경했다. 메일 아침 저녁으로 큰 행사가 열리는데, 강가에 감사인사를 올리는 의식이라고 했다. 엄청난 인파가 모여서 경건한 자세로 기도하고, 같은 기도를 외우는데 그 사이에서 온몸의 전율을 느꼈다. 어머니의 강으로 불리는 갠지스강에 대한 감사, 그 순수한 마음이 한 곳에 모이니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이렇게 벗어놔도 아무도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숙소를 두 번이나 잘 찾아갔으니 자신감이 조금 붙었고, 지도를 보지 않고 가 보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샐리 없었다. 평생 살던 동네에서도 길을 잃는 길치가 갑자기 각성할 리 없는데, 자만했다. 그렇게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지나가던 인도인 커플에게 길을 물었다.
남자는 자신들도 여행객이라고 말했다. 잘 모르는 것 같아 다른 이에게 물어보겠다고 했지만, 남자는 거절했다. (?) 나의 도움 요청 철회가 철회당했다. 자신의 지도를 켜서 검색을 하고, 지나가는 할아버지와 청년과 다양한 인도인들에게 힌디어로 물었다. 나의 아쉬람을 찾아주는 게 어떤 퀘스트로 여겨진 듯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길을 물었다. 그가 활동(?)할 동안 가만히 서있는 게 뻘쭘해서 빨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샌가 또 낯선 인도인의 등 뒤에 바짝 붙어 앉아있었다. 두 번째 오토바이 라이딩이었다.
첫 번째는 친구 또는 직장 동료의 부탁이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정말 생판 남이었다. 자신의 캐리어를 내팽게쳐둔 채 적극적으로 나서서 내 아쉬람을 찾아 준 인도인 여행객과 낯선 동양인 여성을 등 뒤에 태우고 안전 귀가 시켜준 인도인 청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에서 낯선 사람의 오토바이에 타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낯선 사람들을 잔뜩 경계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이들은 모두 친구인 것 같았다. 이렇게 자상하고 따뜻한 곳이라니, 인도에 대한 인식이 한순간 전복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분명한 역할이었는데, 나는 도움을 받는 역할이기만 했는지 궁금하다.그들에게 도움을 받음으로써 뿌듯함이나 보람을 주는 역할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