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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직유 Apr 10. 2023

요가를 배우러 온 건지, 영어를 배우러 온 건지...

너무 높은 언어의 장벽

너무 자만했다. 스스로를 너무 믿어버렸다. 영어권 나라로 여행을 다닐 때를 생각하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코웃음을 날린다.


우리 한국인들은 초중고 학창 시절 약 10여 년간을 영어 듣기 평가를 하며 영어에 귀를 길들였더랬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귀가 미국식 영어에 최적화되어 트여있다는 것..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영어발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는데, 나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나는 총 7과목의 수업을 듣는다. 아사나(요가 동작)를 배우는 하타요가와 아쉬탕가 수업, 차크라를 깨우는 쿤달리니 요가, 해부학 수업, 요가 철학, 프라나야마 수업, 명상수업이다. 원래 TTC과정은 6과목인데 쿤달리니 요가를 추가로 등록했다.


이 모든 수업들을 인도인 선생님이 영어로 진행한다. 지져스. 하타요가와 아쉬탕가요가는 그나마 낫다. 한국에서 수련을 해왔던 동작들이라 산스크리트어 아사나 이름도 알고, 동작도 곧잘 따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타요가 선생님이 한국인을 가르쳤던 적이 있던 건지, 아니면 한국인 친구가 있는 건지 한국어 단어를 몇 개를 사용하신다. 웬쭥~ 오룬쭥~ 춴춴히~~ 가끔 왼쪽과 오른쪽을 바꿔 말해 더 큰 혼란을 주기도하지만, 늘 한국어를 들을 때마다 온몸과 마음이 활짝 웃는다.


프라나야마 수업과 명상수업도 괜찮다. 선생님이 아주 천천히 말하는 편이고, 프렉티스 위주의 수업이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Inhale 들숨과 Exhale 날숨이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나머지 세 과목이 문제다. 요가 해부학과 요가 철학, 쿤달리니 요가. 요가 해부학은 한국어로 배울 때도 헷갈렸는데 영어로 배우려니 뇌 주름에 근심이 깊어진다. 그래도 해부학은 그나마 낫다. 인도에 오기 한 달 전에 속성으로 후루룩 배워서 아주 기본적인 개념은 숙지한 상태기 때문이다.


요가 철학과 쿤달리니 요가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드는 수업이다. 눈칫밥 30년, 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눈치로 알아듣는다. 반반의 확률로 알아듣고, 남은 반은 눈치로 알아듣는다. 처음에는 못 알아듣는 부분을 질문했지만, 질문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 때문에 수업 진행에 차질이 생기고, 같은 설명을 두 번 세 번 설명하게 되니  못 알아들어도 미소를 지을 수밖에..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선생님의 말을 중얼중얼 쉐도잉 하며 들어보지만 과도하게 집중해서 어깨만 잔뜩 말려 올라갈 뿐이다. 머리 위에 물음표가 열개쯤 달려있지만,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반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 또한 내려놓음의 수련인 것이다. 다 이해하고 알아듣고 내 것으로 소화시키려는 것 또한 욕심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요가 철학은 인도의 철학이다. 모든 용어들이 산스크리트어로 되어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이 영어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 산스크리트어 단어의 개념이 영어와 힌디어로 설명하기에도 모호해서 학생들이 질문을 가장 많이 하는 수업이 요가 철학과 쿤달리니 요가 수업이다. 수업시간에 온통 영어와 힌디어가 난무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본격적인 수업은 정규 수업이 끝나고 나서 시작된다. 바로 쉬는 시간과 식사시간의 외국인 친구들과 하는 스몰톡.  역대급 고난도다. 인도, 폴란드, 이스라엘, 러시아, 스페인, 미국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외국인들과 가지각색의 악센트와 발음의 영어로 대화하려니 뇌에 근심이 더욱더 깊어진다.


한국말로 되게 웃긴 드립이 생각나도, 영어로 구현이 되질 않으니 심장이 먹먹하다. 도대체 이 자세가 참 시원하다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나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웃픈 일이다. 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전혀 못 알아들었지만 어허~ 오케이~ 그레잇~ (찡긋) 하고 반응한 적이 108번쯤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나 말이 느린 친구들과는 대화가 그나마 수월하다. 서로를 기다려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일방적인 배려가 아니라서 마음이 편하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친절히 설명해 주는 친구들 덕에 이 영어수업..  아니 요가 수업을 간신히 따라가고 있다. 다음 주쯤엔 귀가 좀 더 트이고, 영어가 늘까? 뇌가 고통스러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근심이 깊어지는 만큼 주름도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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