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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머뭇거리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받은 사랑은, 늘 넘쳤기 때문이다. 부족해서 채워주는 게 아니라, 비어 있을 틈조차 없이 부어 넣는 사랑이었다.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감정의 침수였다. 숨이 막힐 만큼 쏟아붓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흐려질 정도로 가득 찼다.
고요한 사랑, 적당한 거리의 사랑을 나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넘치는 것이 항상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하지만 이 사실이 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모른다. 이런 내가 사랑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잊고 있던 불안감이 뇌리를 가득 채우며 관자놀이부터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멍청했다. 정말 멍청했다.
사랑을 확인하는 것에 집착했고, 그저 내가 배운 사랑이 아닌 것을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리석었다. 그 사랑이라는 걸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배운 나는 사랑을 모른다. 아이를 증명 도구로만 생각하고 그 이상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게 여실히 드러났다.
도대체 사랑이 뭘까.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고통스러운건가? 왜 이렇게도 충족되지 않을까. 낳으면 끝일 줄 알았는데, 보호만 해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는 사랑이 아니라, 구조만 생각했다.
나를 키운 사람은 종종 나에게 말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태어난 건 처음이야! 엄마.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그럼 내가 널 잘못 키웠다는 거니? 나한테 뭘 바라는 거야?”
한자리 나이였을 때 그녀를 무시했다.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내가 쓰레기 같았다. 자책의 10대였다. 성인이 되어 손을 떠나려 발버둥 쳤을 때는 원망했다.
아…그런데 결국…. 생각의 도피처가 된 게 저 말이라니…. 자기혐오가 올라오며 내가 변할 수 없음을 자꾸만 상기 시켜주는 것 같았다. 제대로 알지 않으면 또 동일하게 가둬지고, 백지는 더럽혀질 것이다. 돌파구가 필요하다.
돌파구를 찾아내고 만약 키우는 과정에서 남편과 논쟁하게 된다면, 나는 그를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애당초 서로의 보호자로 얽힌 관계에 커다란 책임감이 부재했다.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한 답이 내려지면 이후를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사랑은 나를 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를 반복한다. 작은 손과 발을 버둥거리며 물고 빨고를 반복한다. 이상할 정도로 풍기는 포근한 향에 얼굴을 비비며 생각을 잠재우려 애쓴다.
사랑을 믿지 않던 내가, 사랑 자체를 낳고도 여전히 사랑을 의심한다. 그런데 너는 아무 의심 없이 나를 바라본다. 사랑이란, 어쩌면 확신이 아니라 질문으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