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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경 Jul 05. 2023

1장 - 애견미용과 PTSD

핸들링 트라우마는 어떻게 반려견의 삶을 파괴하는가

반려견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


 ‘PTSD 올 것 같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온라인에서 유행했던 표현입니다.

좋지 않은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이 떠오를 때 사용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PTSD' 는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의 앞글자를 따서 줄인 말입니다.

우리가 농담처럼 말했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실 생명을 위협 당하는 수준의 외상을 경험한 후 반복적으로 외상과 관련한 기억이 떠오르거나, 자기 파괴적 행동, 공격성 등의 증상을 보이는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입니다.

'PTSD'를 유발할 수 있는 외상 (Trauma) 에는, 사고, 폭행, 자연재해, 학대, 방임, 의료 처치, 만성스트레스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두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외상으로 인한 PTSD는 반려견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의료 처치와, 만성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의 외상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핸들링 트라우마가 반려견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의료나 미용 등 핸들링 과정에서 반려견이 생명이 위협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수준의 공포나 불안감, 스트레스를 반복해서 경험한 반려견의 삶의 질은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저희 센터에는 이런 저런 이유에서 미용을 받지 못하게 된 반려견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많이 방문합니다. 한 번은 열 다섯살 노령의 반려견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반려견 나이로 열 다섯은, 사람 나이로 80세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어쩐 일로 교육 센터를 방문했는지 보호자님께 여쭈었습니다.


보호자님께서는 반려견이 미용할 때 물고 발버둥 치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한 살 무렵부터 열 두살까지 10년 넘게 마취 미용을 받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심장병이 찾아왔습니다.

간과 신장의 대사 기능도 약해졌습니다. 더 이상 마취를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나이가 많고 몸까지 아픈 반려견을 받아주는 미용실도 없었습니다.

3년 가까이 미용을 제대로 받지 못한 반려견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먼지, 음식, 분비물 등 여러가지 오염물질이 털과 뒤엉켜 피부에 꽉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보호자님은 이런 아이도 교육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교육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과 관련한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오랫동안 경험한 탓에 교육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과, 이미 심장병을 앓고 있는 반려견이 매번 차를 타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교육센터를 방문해야 하는 것이 너무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고 공격성을 보이는 상태에서 미용을 진행하기에도 리스크가 너무 컸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은 반려견의 심박수와 호흡, 혈압은 모두 급상승하게 될테고, 이는 쇼크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니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보호자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이 되어도 좋으니, 가는 날까지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사망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을테니 미용을 조금이라도 해주시면 안될까요?”


원칙대로라면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미용을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사정이 너무 안타까워, 반려견의 호흡과 심박을 체크하면서 미용을 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하기로 했습니다.

털을 미는 동안 반려견은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도저히 할 수 없는 부분은 남겨놓고, 심각하게 떡이 진 털 덩어리들을 떼어내는 정도로 미용을 마무리 했습니다.

보호자님은 부들부들 떠는 반려견을 끌어안고 '아이에게 마취가 아니라 교육을 받게 했어야 하는데 너무나 후회된다'며 연신 반려견을 쓰다듬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미용은 어떤 미용일까?

 
 저희 센터를 방문하는 반려인 중 열에 아홉은, 반려견의 건강을 위해 발버둥치고 물더라도 어떻게든 미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앞선 사례에서처럼, 반려견이 미용이나 진료 과정에서 경험한 트라우마로 인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남는다면, 공격성이나 회피행동이 강화되는 행동 문제로 인하여 앞으로의 관리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만성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는 심혈관계 질환이나, 호르몬 질환 등 심각한 신체적 질병을 야기하기도 하지요.


우리가 건강을 위해 해주고자 하는 미용이 오히려 반려견의 신체와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세계보건기구 (WHO) 에서는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건강을 정의합니다.


우리가 반려동물에게 미용을 하고자 하는 목적이 정말로 ‘반려견의 건강한 삶’ 을 위해서라면, 당장 눈앞을 가리는 털, 지저분해 보이는 겉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지금 하려고 하는 이 미용이 반려견의 정신건강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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