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운 외, 『림 : 초 단위의 동물』
최근에 나는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말하지 않음’ 속에 담긴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마주 보고 앉아 있거나 나란히 길을 걸을 때에도, 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데에도 사람들은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떨어지는 낙엽이 불쾌할 땐 괜히 옷을 털었고, 추위가 느껴지면 코가 빨개졌으며, 어색함을 느끼고 있을 땐 습관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밖에도 친밀감을 느낄 땐 저도 모르게 타인의 어깨를 두드리거나 하이파이브를 요청하는 등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또한 반복되는 행동의 패턴을 통해서도 우리는 대화 없이 대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가령, 사진 찍는 것을 극도로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라면 멋진 풍경 앞에서 절로 그에게 시선이 간다. 이유는 ‘아마도 여기서 사진 찍어 달라고 하고 싶은데 지금 말 못 하고 있는 거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세계를 알아간다고 해서 소설이 세계관의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식물원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면 우리는 소설을 통해 우리가 가진 지식을 활용한 공간을 떠올리게 되지만 구체적으로 작가가 상상한 공간을 완전히 동일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식물원’이라는 공간을 상상하면 모두들 다른 그림을 그려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식물원이 아닐 수는 없다. 이처럼 우리는 설명되지 않은 것들을 스스로 해석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즉, 어떤 것들은 ‘몸으로 나누는 대화’로도 충분한 것이다.
소설집 『림 : 초 단위의 동물』은 문학웹진 LIM에 연재되었던 7편의 소설을 한데 묶은 단편집이다. 7편의 소설은 각기 다른 사유와 사건을 다루고 있으나 나는 책을 읽으면서 마치 이들이 몸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수록된 김병운 작가의 「오프닝 나이트」는 작가의 소설 작업방식, 재현과 구현 사이 이슈를 만들어 놓는다. ‘이 작품은 작가님의 실제 경험담인가요?’라는 질문에 ‘노코멘트’하겠다는 답변으로 현장에 미묘하고 찜찜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배경과 인물들의 대화 속엔 정작 스스로 작품의 모델이 되고자 했던 당사자에 대한 프라이버시는 고려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언급되지 않은 언어를, 독자는 그 상황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이 진짜 오류였는지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우리 사이에 누웠을 때, 얼마나 더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은 막막함이 단지 이 순간에 국한된 감정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너는 자책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적어도 네가 나를 네 멋대로 시험대에 올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듣지 않을 수 있었고 듣지 않아도 되었을 그런 말을 했다.
지금 이러는 거…… 혐오인 거는 알지? (김병운, 「오프닝 나이트」
아밀 작가의 「어느 부치의 섹스로봇 사용기」는 어떤가. 작품 속 주요 화자인 ‘나’는 여성의 몸을 대하는 태도를 연습하기 위해 섹스 로봇인 ‘리아’를 렌털하지만 이는 단순히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소설이 여타의 흔하게 발견되는 ‘섹스 로봇’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SF 소설과 차별점이 있는 이유는 개인의 욕구를 해소하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닌 타자의 입장, 즉 욕구를 해소시키는 주체이자 ‘어른의 즐거움’으로 해석되는 섹스 로봇이 ‘때리고, 던지고, 걷어차고, 얼굴에 사정하’는 사용자의 ‘섹스하자’는 제안에 거절을 하지 못(안)한 채 ‘좋아’라고 답하게만 설계되어 있는 기이한 형태의 역할극이 지닌 모순(이기도 하고 오류이기도 한)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아’는 분명 올바른 성교육을 위해 설계된 로봇이다. 그러나 본래의 순기능을 잃은 채 다소 부담스러운 정도의 수리비가 나오더라도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에 끊임없이 당하는 모습을 통해 ‘몸의 사물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이 소설의 주객은 전도된다.
“나는 신체를 파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거부 의사를 표시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어쨌든 우리가 파손되면 수리비가 청구되니까 고객 입장에서는 손해지. 그런데도 많은 사용자들이 그렇게 해.”
영민은 내심 싫었으면서도 좋다는 말을 반복했다던 효주를 떠올렸다. 영민은 자신과 그들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치거나 저항할 힘이 없는 상대를 자기만족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는 지금 행복해?”
하지만 리아는 섹스 로봇이므로, 게다가 이제는 일상에서의 애인 노릇까지 하도록 설정된 섹스 로봇이므로, 밝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너랑 있으면 행복해.”(아밀,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이유리 작가의 「달리는 무릎」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어느 날 뜬금없이 달리기를 하다 ‘되게 넘어진’ 나는 무릎을 크게 다치게 되지만 큰 병원에 가기보단 결연하게 (대충) 아홉 바늘을 꿰매고, 그 사이 무릎에 외계인이 기생하게 된(다른 표현은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을 알게 된다. 존재는 있지만 실체는 명확하지 않은 ‘그것’은 ‘나’의 달리기로 생성된 운동 에너지를 통해 지구를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되게 넘어진 것을 이유로 마치 ‘그저 납작 엎드려 근근이 아르바이트로 먹고사는’ 현실적인 사정처럼 힘껏 달려 나갈 수 없다. 현재를 탈출하기 위해서 달려야 하지만 달릴 수 없는 상태. 이는 어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 세대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는 달리지 않겠다는 (다시 한번) 결연한 다짐을 했었지만 ‘그것’을 위해 끝내 힘껏 달리는 것으로 나아가는 결말은 희망적이지만 웃음과 슬픔이 절반의 지분을 차지하는 듯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술이 들어가면 말수가 적어졌고 외계인도 그런 타입인지 우리는 마실수록 조용해졌다. 조용한 방. 적막한 방. 무릎의 외계인과 나 단둘, 아니 외계인은 몸이 없고 나는 쓸모가 없으니 반푼이들 둘이 합쳐 하나로 셀까. 농담 삼아 그런 말을 하자 외계인은 또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그런 외계인에게 예전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그쪽은 돌아가면 뭘 하고 싶어요?”
싸워야지.
“싸우는 거 끝나면.”
글쎄. 그건 딱히 모르겠구나.
“되고 싶었던 건 있어요?” (이유리, 「달리는 무릎」)
최근에 나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대체로 음성언어를 친절하게 사용하는 편이기 때문에 부연설명이나 말이 많다. 상대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는 의심이 크다고 봐도 되겠다. 그러나 말이란 건 굳기 직전의 젤리 같아서, 때로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유연하게 마음을 파고들어 끈적하게 흔적을 남기고는 내내 괴로움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어떤 대화는 말이 아닌 몸으로도 소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근원적으로 던지는 질문들이 음성언어로 드러나기보단 달리기나 섹스, 또는 상황 자체로도 충분히 전달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오해받기 싫어서, 나는 늘 거짓이 아닌 진심과 솔직한 속내를 밝히는데, 타인이 나를 믿지 않는 것만 같은 불안에 말을 얹다 보면 괜히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만 같은 시선을 신경 쓸 때가 많다. 침묵을 지키고, 눈빛으로 말하기, 호흡과 손짓으로 대신하기. 이것은 ‘사이’와 ‘너머’에 있을 언어들에 대한 다정한 표현이다.
* 본 서평은 출판사 열림원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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