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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Nov 17. 2023

사내정치 어떻게 부숴요?

김나이, 『자기만의 트랙』

회사에서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일이 그렇게 중요할까?


오랫동안 안고 있는 물음이다. 애써 서로 양보하는 척 취향에도 맞지 않은 점심 메뉴를 고르고, 물컵에 물을 채우네 마네로 눈치를 보고, 수저 밑에 휴지를 깔고, 별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에 호들갑을 떨고,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꾸역꾸역 마시고 나면 남는 것은 그 자리에 끼지 않은 동료에 대한 농담을 가장한 뒷담, 상담으로 치장한 결국은 험담.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니까. 내가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학창 시절 무리 지어 다니던 여자애들 특유의 그 ‘짓’거리들이 싫어서,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 치졸하고 치사하게 아무 잘못도 없는 (특히 나이와 연차가 낮을수록) 팀원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총 경력 6년 차, 네 번째 회사. 그리고 한 회사에 다닌 지 이제 4년 차. 내가 더 이상 회사를 옮기지 않는 이유 역시 단순하다. 어느 집단이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이 랜덤으로 포장된 크리스마스 럭키 박스 같아서, 꽤 흡족한 상품(팀원)이 있는 반면 쓰레기 처리반이 된 것 같은 최악의 상품(팀원)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는 건 조직 생활을 하는 데 있어 실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 회사에 들어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은 능력 없고 말 잘 듣는 팀원인 것만 같다. 사수의 귀에 달콤한 말을 속삭일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커피 심부름을 해낼 수 있는 두 귀와 손이면 충분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런 환경이다.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고, 팀을 이끌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곳. 일을 잘 해내면 해낼수록 더 모질게 짓밟고 괴롭히는 곳. 어떻게 해도, 수년간 위아래로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바뀌어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게 실망을 준다. 그러니까 더 이상 무엇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회사. 그런데 문제는 무엇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 짓밟히면서, 무능한 팀원으로 불리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하지 못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거라는 거다. 처음엔 내 스스로를 자책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회사에, 사수에게 실망하기보단 온종일 서점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강연을 다니는 것으로 내가 지닌 부족함을 채우려 했다. 팀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만들고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점을 도출하려 했다. 그렇게 나는 입사 3개월 차에 팀 내부적으로 몇 년 넘게 고질적으로 안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고, 작년에는 임시 팀장이 되어 팀을 이끌기도 했다. 알고 봤더니 이전 팀장은 그 문제를 일부러 개선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팀원의 업무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우려했고, 타인을 무능하게 몰아가는 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킨 것이었다. 그런데 순진한 내가 가뭄 든 땅에 물꼬를 텄으니, 돌아온 건 한숨과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답변이었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나보다 예쁨 받는 동료가 성장하기를 더 바랐던 것 같다. 나는 이 회사에 내 능력을 입증해서는 안 됐다. 


 가끔 생각한다. 사람들이 인간이 아니라 기계라면 얼마나 좋을까. 왜 사람들은 회사에서 일을 하려 하지 않고 자꾸만 입을 놀리려 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한가?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건가? 왜 이렇게, 사람들이 비양심적이야. 왜 이렇게 나쁘게 굴어.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너도 회사에서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느냐’하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는 얼마 전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연봉을 올렸고, 승진도 했다. 친구는 내게 말했다. ‘그거 너 나가라는 거야. 너처럼 고고하게 뻗대는 팀원보다는 적당히 일 못하면서 비위 맞추는 수족이 필요한 거거든.’ 친구의 말에 나는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었다. 다들 어떻게 하면 자기 분야에서 능력 있는 인재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마당에, 나는 ‘일’이 아닌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어딜 가나 이런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내 ‘커리어’가 아니라 멘탈을 바사삭 부서트리는 ‘조직 워리어’야. 이제 나는 회사에 열심인 팀원보다는 퇴근 후 자기 계발을 하는 데 시간을 더 쏟는 팀원이 되었다. 결국 “이 회사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없고, 앞으로 나는 내 인생 열심히 살려고.”(p.26)


김나이 작가의 『자기만의 트랙』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인터뷰에 열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봐야 나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오로지 책임감 때문에 출근길에 올라야 할 때, 정해진 일을 해낸다기보다는 언제라도 사표 내고 짐 쌀 수 있다는 마음에 더 무게 중심이 쏠려 있는’(p.27) 그런 상태를 누군가 알아준 것 같은 기분. 그러니까 지금 내 포지션은 ‘Quiet Quitting(조용한 퇴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낭만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던져버리고 취업 전 꿈꾸며 준비했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상태. 어딜 가든 인간군상들은 비슷하니까 이직할 바엔 더 이상 ‘회사’라는 집단에 소속되고 싶지 않고 크게 성공하지 않더라도 1인 기업이라도 세워 투명하게 내 실력과 능력으로 평가받거나 무너져버리는 것이 더 행복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 친구의 말대로 내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회사는 나를 더 열심히 짓밟을 테니까. 회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근본적인 욕망이 전체 회사의 성장이 아닌, 개인의 평온함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걸 깨달아갈수록 나는 더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다. 내가 만들었던 가이드와 자료들을 내 손으로 무너뜨렸고, 업무 처리를 대충 하기 시작했다. 회사보다는 회사 밖의 일에 관심을 쏟았다. 그런데 신기한 점 한 가지. 오히려 내가 회사에서 무능한 팀원이 되어갈수록 이상하리만치 내면의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모두가 원했던 대로 동료의 지시에 모두가 움직이고, 동료가 휴가를 낼 때마다 불안한 척 연기하며 비위를 맞춰 주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 같은 회의실에서 누가 봐도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두고 별다른 의견을 내비치지 않고 윗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니 모든 게 한결 편해졌다.(그 기분은 때로 내게 우울감과 열패감, 그리고 유쾌하지 않은 좌절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답답함을 못 참고 올바른 방향으로 의견을 내더라도 내 의견은 무시당하면서, 똑같은 의견을 동료가 낼 때는 수용이 되는 기이한 현상도 여러 번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기까지, 내가 상사들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데는 점심때마다 그들과 함께 밥과 욕을 나눠 먹었던 동료의 은밀한 ‘이간질’이 있었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원했던 일은 아니었으나 나는 회사에서의 내가 역할을 맡는 일을, 그리고 이 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일이 해일처럼 몰아칠 때에도 나는 누구도 정리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그 거센 물결 속에서 홀로 진두지휘를 하며 엉킨 매듭을 풀고 해결해 가는 과정을 즐거워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더라도 나는 일을 즐겼던 것 같다.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일중독자라면 나를 이해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다) 도파민이 분비되듯 나는 내가 해내어야 하는 일이 많을수록 자꾸만 웃음이 나왔고, 표정이 밝아졌고, 일을 하면 할수록 에너지가 났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디서든 리더 역할을 맡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고 열심히 전략을 세웠던 만큼 늘 좋은 성과를 냈다. 그래서인지 리더가 되는 일은 늘 자신이 있었다. 내 결정과 판단이 틀리지 않다는 데 어떤 확신이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독불장군처럼 고집을 부리거나 떼를 쓰는 캐릭터도 아니었다.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그건 내게 다음으로 향하는 더 높은 계단이었다. 팀원 중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낸 이가 있다면 적극 수용했고, 결과적으로 효율성을 중시하며 함께 발전해 나가는 걸 좋아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부조리한 이슈로 인해 팀장 대행 업무를 맡았을 때 차라리 더 속 편하게 일했던 것 같다. 불필요한 절차와 관례를 모두 생략하고 팀원 개인의 역량과 특장점에 맞게 업무를 분배하고 가감하며 조직을 이끌어갔다. 그러면서도 일에 대한 고민과 개인에 대한 성장 역시 멈추지 않고 관련 서적을 끊임없이 찾아 읽고, 레퍼런스를 수집했으며, 정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누적해 갔다. 그렇게 팀 내 업무 프로세스가 안정화되고, 임원의 인정을 받았던 날, 나는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동료’와 ‘팀장’ 콤비의 비아냥 거림을 면전에서 처음으로 받았다. 시작은 ‘힘들지 않아? 헤르미온느 같아. 아니 대답하는 거 보면 로봇 같다니까. 혹시 어디 배터리 숨겨둔 거 아니야?’였고, 나중엔 ‘민정봇, 이거 더 할 수 있지? 일 하는 거 좋아하잖아. 민정봇은 여기서 임원까지 해 먹을 거 같아’하는 조소였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중요한 회의자료나 이슈를 공유해주지 않고 일부러 실수를 하게끔 유도하기도 했고,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트집을 잡아 엄청난 잘못을 한 양 몰아세우기도 했다. 사람들이 참 못됐지. 참 나쁘지. 그리고 ‘죄 짓고는 살지 말자, 비양심적으로는 살지 말자’는 신념 때문에 늘 당하고만 있는 내가 바보 같지. 


  책을 읽는 동안 <‘물 만난 고기’는 자신의 환경을 찾아간다> 편에서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나와 잘 맞는 성향의 조직은 어떠한지, 나는 어떤 종류의 일을 잘 해낼 수 있는지’ 따져 보는 것. 이 책이 흥미로웠던 점은 직업에 대한 고민을 단순히 ‘일’의 퀄리티에 대해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내정치로 고통받고, 함께 일하는 동료와는 어떠한 대화도 나눌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역시 업무의 한 부분으로 충분히 고민할 지점이라고 인정해 주는 부분에서 나는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역시나) 흔하게 발생되는 회사생활의 고충이자 엽기적인 사내 문화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나’는 어떻게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해 가면 좋을지, 이직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퇴사의 타이밍을 노려야 하는 것인지 또는 회사를 바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성장 가능성이 없는 회사, 일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회사, 실적이 될 만한 중요 프로젝트를 배당해주지 않는 회사, 나를 가만히 짓누르고 있는 회사에 정체되어 있는 것 역시 올바른 선택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니 이제는 또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다. 회사와 관계없이 준비하고 있는 일(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다)과 회사 일인데 두 일에 대한 중요도와 태도는 조금 다르다. 더 이상 어느 회사에도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로의 미래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퍼스널 브랜딩에 온 신경을 쏟고 있고, 이로 인해 누구도 내 것을 가로챌 수 없는 1인 기업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재미(성장 또한 재미에 포함되므로)’과 ‘돈’을 중요시한다면 회사에서는 ‘비전’과 ‘돈’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회사에 열심히고 싶지 않다. 그런 이유로 아직은 이직을 원하지도 않지만, 현재 도전 중인 일이 불투명해진다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현재의 회사에 남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경력을 보태 다른 회사의 팀장으로 이직을 해내자는 결심을 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내 미래를 조금씩 분명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내게는 언제나 플랜 B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서글프고, 한편으로 내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정말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팀원인 것인지 의심하곤 한다. 내 스스로를 질책하는 날이면 쉽게 잠은 오지 않고, 그런 날이면 역시나 사람들이 싫어진다. 이럴 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문제는 일에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비전에 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문제는 그게 아닌데. 어디에도 말할 수 없고 어디에나 전시된 기록들이, 문득문득 억울한 마음들이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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