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 『알바의 역행』
몇 년 전, 영화관에서 한 광고를 보다 침을 꼴깍 삼켰던 기억이 있다. 나이키였다. 약 15초 분량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나이키는 특정 상품을 포커싱 하거나 모델로 하여금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저 ‘너의 아이덴티티를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훅 던졌다. 우리 브랜드를 이용하는 네가 어떤 목적으로 쇼핑을 하든, 또 어떤 스타일의 상품을 고르든 그 자체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어 다른 카테고리의 기업과 브랜드 등에서도 ‘취향 존중‘과 같은 키워드로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려는 메시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취향 맞춤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팔로팔로미’, ‘손민수’라는 키워드가 대세였다. 그야말로 대 인플루언서의 시대였던 것이다. 인플루언서는 말 그대로 ‘선망의 대상’이자 개인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친근한 이미지 혹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포지셔닝을 유지하며 팔로워들은 주로 제품력보다는 그들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관계로 ‘나의 취향’이 아닌 ‘남의 취향’을 구매한다. 이는 수동적이면서도 꽤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에서는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꾸려나가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는데 있어 중요한 건 ‘분위기’를 갖는 일이지 실제 자아를 찾거나 그것을 어필하는 건 타인의 호감을 사기에 생각보다 효과적이진 않다. 그러니 사회적 가면을 벗어버리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고, 실존하는 한 인간의 민낯은 늘 그렇듯 아름답지 않아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받는 건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로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이 아닌 타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말 그대로 인공의 가치에 투자하게 되는 것이다.
김명 작가의 『알바의 역행』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쓸모가 되기 위해 변질된 아이덴티티의 기능을 되짚어보는 작품이다. 미래사회, 인간의 노동력이 쓸모를 잃어가는 시대에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인공신체’로 개조해버린다. 소위 ‘파워암, 파워레그’라고 불리는 이것은 인간 본연이 낼 수 있는 힘의 단계에서 한참 진화된 노동력을 보여준다. 인간 본연의 노동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인간의 자리에 고도로 발전된 기계가 들어서면서 점차 ‘인간성’자체가 훼손되어 버린다.
한편 가족을 살리기 위해 열여섯에 청소년 노동을 시작한 ‘알바’는 메디바이오닉스라는 회사에서 ‘무자격 임시직’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이 역시 어렵게 구한 일자리인데다 신체를 개조하지 않은 알바는 인간 중에서도 가장 낮은 보상을 받게 된다. 인간에게 인간으로서의 역량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범위에서 한참 높은 이상치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으로부터 한참이나 진보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인간성은 그에 반비례하게 퇴행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이 소설이 보여주는 메시지엔 지금 우리 가까이에 있는 청소년 노동자에 비춰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노동에 대한 이해와 정신적인 성숙이 성인에 비해 덜 여물어 있는 청소년에게 요구하는 부조리하고 획일화된 시선을 말이다.
메디바이오닉스가 보여주는 키워드는 결국 작가가 제목에서 강렬하게 언급한 바 있는‘역행’이다. 이곳에선 인공신체, 인공장기를 생산하는데, 이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인간 본연의 생체시계가 흐르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갈망한다.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훼손된 신체를 회복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불필요하게, 단순히 생계(생존)을 위해 신체를 ‘변주’하는 것은, 또 피부는 물론이요, 팔과 다리, 장기 등을 손쉽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것은 한편으로 뒤틀린 미적 기준을 양산하고 인간을 향한 생명권이 위태하게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흥미롭게 느껴졌던 지점은 여기였다. 알바는 과학기술의 진보에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기만 한 ‘메디바이오닉스’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인간 본연의 기능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테러 집단 ‘레트로’사이에서 어떤 가치를 존중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곧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보다는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한다.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고 기성세대의 갈등에 휘둘리지 않은 채 전혀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미래 세대에서 인간이 추구해나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최근에 나는 내가 가진 취향과 방향성이 진정으로 내 것이 맞는지를 고민했다. 퍼스널 브랜딩을 공부하다 보면 결국 나의 매력에 대해서도 탐구하게 되는데, 이때 어떤 점이 장점이고, 어떤 점이 약점인지를 파악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를 이해하는 기준이 진정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하기에 효율적인 요소를 스스로 학습하여 형성된 자아인지 조금 혼란스럽다. 내가 구사하는 단어, 문장, 그리고 감정의 깊이가 과연 나의 본연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나? 글을 오래 쓰다 보면 때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를 엇비슷하게 따라하거나 닮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아이덴티티가 없는 것 같아 이대로 괜찮을까 하고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기대하는 것은 나의 민낯, 완벽하거나 실수하지 않는 로봇형 인간의 모습보다는 때로는 실수하며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 자체를 사랑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만이 시대와 세대에 ‘역행’하지 않을 수 있는, 비로소 인간다운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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