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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Jan 05. 2024

나라는 스타트업을 키우는 일  

정경화, 『유난한 도전』


나는 시간을 거꾸로 먹고 사는 인간인 모양이다. 십 대에는 몸 안에 능구렁이가 들었는지 사십 대 같다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요즘엔 질풍노도의 끝을 달린다는 열다섯 청소년보다도 짓궂어진 것 같아. 감사하게도 자라면서 특별히 방황할만한 사건이나 환경을 만나지 못해 나는 아직 사춘기를 겪어본 적이 없다. 그게 문제인가, 아니면 지금껏 너무 평범하게, 부모님 말을 순순히 잘 듣고 커서 그런가. 요즘 나는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껏 나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을 알면 알수록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를 아는 일과 나를 견딜 수 있는 일은 조금 다른 문제니까. 그러니까 자꾸만 힘이 든다. 이제 와서,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내가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어릴 때부터 나는 ‘현명한’ 이미지를 갖고 싶었다. 똑똑하거나 다재다능한 것 말고, 부던하게 나아가고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해도 좋았다.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다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로부터 나의 ‘실수’와 ‘실패’에 그럴듯한 변명을 붙이더라도 이해받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손톱이 자라는 속도만큼이라도 좋으니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믿음’을 얻고 싶었다. 불가능성의 세계를 언젠가, 불가분의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는 요술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 늘 무엇인가 조용히 해내고 있는 사람.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좀체 믿을 수 있는 사람.


 ‘스타트업’은 내가 기피하는 회사의 조건 중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 요소다. 첫째로 연봉이 넉넉하지 못할 것이며, 두 번째로는 업무분장에 대한 갈등을 극복할 수 없다. 셋째로는 (개인적으로) 신뢰가 잘 가지 않는다. 스타트업을 창업한 사람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자신의 회사를 성장시키려 노력하는지 안다. 이들의 노력이 활짝 핀 꽃봉오리처럼 톡 터지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썩은 씨앗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전례 없는’이라는 수식어는 내게 늘 두려움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나는 늘 표본을 따라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인생의 롤모델이 늘 존재했고, 그를 철저히 분석하고 뜯어보며 지향점을 찾았다. 내게는 언제나 플랜B가 있었고,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일엔 쉽게 뛰어들지 못했다. 그런 건 좀 위험하잖아. 그러니까 무엇이든 깊어지는 관계가 되는 걸 부담스럽게 여겼다. 단 하나뿐이라는 건 너무 낭만적이기만 하니까. 나는 늘 내게 냉정하고 매몰찼다. 나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나를 믿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이것이 내가 ’창업‘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경화의 『유난한 도전』은 말 그대로 토스 기업의 성장스토리이자, ‘전례 없는’일을 해낸 성공담을 긴장감 있게 풀어낸 책이다. 토스가 발굴해 낸 아이디어는 우연한 기회에 편의성을 위해 아주 사소한 조각들이 만들어낸 나비효과이기도 하지만 이 ‘전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책에는 다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수많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용기가 녹아 있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선 일상 속 불편함이 먼저 존재했을 것이고, 이것을 귀찮게 생각하거나 지나치지 않게끔 해결하려는 다소 과한 관심이 있었을 것이며, 위험부담을 안고도 부딪혀보려는 용기가 있었다.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운명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운명과 기회는 함께 오는 것이어서 ‘운명’을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 인생을 건 ‘기회’를 잡아야 한다.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린 뒤라면 그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변주되었거나 변질된 기회가 찾아오더라도 그것은 어제의 것과 다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일의 역사에 대해 생각했다. 토스가 만일 눈치싸움을 해대며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같은 대기업이 먼저 사례를 만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지금의 모습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보다 낮은 연봉에 월급이 밀릴지도 모를 위험부담. 때때로 광고비가 부족해 직원 자신의 지갑을 탈탈 털어가는 부담을 안고 싶지 않았다면? 지금에 와서야 이를 ‘도전’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지만 당시 상황에서 나라면 이것을 ‘현명한 선택’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리 판단에 능하고 영악하리만치 계산적인 나라면 토스를 다니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동안 이런 선택으로 인해 내가 멍청하게 놓쳐버렸던 기회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언제나 내가 브랜드가 되는 일에 대해 꿈꿔왔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삶. 나는 내가 쓰는 글이 좋고,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좋고, 내게 ‘현명한’과 ‘재밌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좋다. 내가 건넨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고, 함께 고민하거나 사유의 폭을 더 깊이 확장할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이 좋다. 내가 큐레이션하고 추천한 책을 사람들이 읽고 좋았다는 평을 들을 땐 행복하기까지 해. 그리고 그것을 다시 글로 풀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나라는 사람의 마음을 채운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되지 않지. 냉정하게 생각하면 실패의 확률이 더 높을 뿐이지. 그래서 이것은 언제나 내게 ’유난한‘ 도전이다. ‘재미’와 ‘의미’, ‘성장’과 같은 키워드를 담고 있는 일이지만 내게는 늘 가장 먼저 놓치게 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자꾸만 삐뚤어지고 싶어. 내가 생각하기에 ‘선’을 넘는 일들을 해내고 싶어져. 안정적이지 못하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절반 이상의 수치를 차지하더라도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여전히 내겐 ‘돈’의 가치가 인생에서 최우선 순위에 있다. 그래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돈’과 ‘재미’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일.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가지고 있었던 고충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요즘에 나는 인플루언서라고도, 사업가라고도 부르긴 애매한, 뭐라고 지칭하기 어려운 그런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이야길 나눌 수 있는 영향력 있는 텔러가 되고 싶다.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다고 해도 좋다. 잠시 지나가는 방랑의 계절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나라는 스타트업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예측 가능한 실패들을 겪어야만 하는, 때로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나만의 고충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기회는 언제나 운명처럼 찾아오겠지만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선 양손에 들려 있던 것 중 한 가지를 내어 놓아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것이 지금 나의 이야기, 이곳이 내가 서 있는 자리이자 시린 겨울나무 아래 남몰래 꿈틀대고 있던 뿌리가 건네는 진심 어린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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